정이나(부산외대)
베네수엘라의 다양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미션(mission)이다. 1999년 차베스 집권 후 추진 되기 시작한 교육, 의료, 주거 문제를 비롯한 실업, 치안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사회 정책은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2005년 유네스코가 베네수엘라를 문맹퇴치국가로 선언할 수 있도록 하게 한 “미션로빈스(Misión Robinson)”이나, 더 나아가 중.고등교육을 무상 확대하고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하기 위한 미션리바스(Misión Ribas)와 미션수크레(Misión Sucre)등 미션 사회프로그램의 그 종류와 범위는 수없이 다양하다.
그리고 문득 이처럼 수많은 사회 프로그램을 포괄하는 정책들이 왜 하필이면 “미션”이라 불리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션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사회 프로그램에 대해, 그리고 그 같은 사회정책들이 객관적으로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베네수엘라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본이 아닌 인간 중심의 정책이 험난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으나, 불가능 하지는 않다라는 현실의 가능성에 대해 현재 주한베네수엘라 대사관 대사대리 야디라 이달고(Yadira Idalgo)와의 대화를 통해 잠시 들어보고자 한다: “사회복지 정책이 베네수엘라에서 미션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주요한 사회적 권리를 사회가 민중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시급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같은 사회적 의무에 대한 진지한 ‘책임감’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1).
주한베네수엘라 대사관 대사대리-야디라 이달고(Yadira Hidalgo de Ortiz)
지난 2014년 12월 주한베네수엘라 대사관 대사대리 야디라 이달고씨를 만나 베네수엘라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는 언제나 우리의 시각과 관점, 혹은 가치 기준에 따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지나치게 용감하리만큼 우리의 조야한 지식에 기대어 그 사회를 재단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적어도 한국에 있는 베네수엘라 사람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보는 것이 진정한 페어플레이가 아니겠는가 라는 ‘얄궂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베네수엘라 대사관에서 오전 10시30분, 대사 직무실에서 야디라씨를 만났다. 애초부터 인터뷰라는 딱딱한 형식을 벗어난 자유로운 대화 형식의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나를 맞아준 야디라씨의 태도는 우리가 흔히 중남미 ‘스타일’로 이해하는 편안하고 의전에 크게 구애됨이 없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이 결코 중남미의 고위 관료나 엘리트층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informal 함 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즉, 아직은 고위 관료적인 의례적이고 의전적인 태도를 적어도 그녀에게는 아직 발견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대사면 고위 관료직이 아니던가?! 물론, 대학교수를 하기도 했던 그녀의 모습에서는 사회적인 이슈나 시사적인 논쟁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자신의 논리를 구사하는 능력은 그녀의 베네수엘라를 이해하는데 내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면담에 앞서 나름대로 몇 가지 질문의 방향을 준비했을 뿐 질문지에 답을 적어가는 듯한 딱딱한 형식은 피하기로 하고 면담을 시작했다.
2007년 베네수엘라 사회복지부 부차관을 지내기도 했던 야디라는 2002년 현재 석유국영회사 PDVSA 의 파업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난 첨예한 정치적 갈등부터 최근 베네수엘라의 사회.경제적 위기 국면에 대해 그녀의 재치있는 말솜씨와 논리의 진지함으로 ‘실속’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덕분에 베네수엘라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위치하고자 하는 정치적 입지 내지는 역할 등에 대한 거시적 질문에서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전통적으로 집에서 요리하는 아야까(Hayaca)2) 는 저쪽(allá)과 이쪽(acá)3)의 음식들을 모아서 함께 만든 것이라 하여 지은 것이라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다. 실은 개인적으로 아야까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베네수엘라에 머무는 동안 친구들에게서 듣게 된 아야까의 사연은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묻어 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원주민 노예들이 백인들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기원이라는 것이었고,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의 기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선, 베네수엘라 사회를 정치적이나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결코 지금의 베네수엘라의 진면목을 보기란 어려울 것이다. 정치와 이념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와 진보를 재단하는 이론적 패러다임의 역할에 머무는 한 그 어떤 사회적 진실도 왜곡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야디라씨와의 면담은 말 그대로 담백한 대화였는데 그 사회의 이야기를 구전으로 듣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한 대화가 이루어 지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나의 면담 목적과는 무관한 질문 하나를 했다. 왜 베네수엘라는 주한베네수엘라 대사관에 왜 대사가 아닌 대사 대리를 임명하느냐는 것이었는데, 평소 혹시 정치.이념적 차이로 인한 외교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온 터라 질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요. 마두로 대통령이 당시 나를 이곳(한국)으로 보낼 때 우선 지금 나는(마두로대통령)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 일단은 한국에 있는 대사관의 대사자리가 공석이라니 어서 가서 일을 하라 하더군요”. 그리고, 그녀는 당시 마두로 대통령은 아마도 나를 대사로 임명하는 형식적인 절차보다 당장 눈앞에 산적해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거 같다. 라는 것으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갑자기 내가 너무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 같았다. 대사가 아닌 대사대리라는 타이틀이 왜 그리 신경이 쓰였던 것이었을까? 어차피 그녀의 역할은 다를 것이 없을 텐데 말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유가하락으로 베네수엘라가 받게 될 타격을 미리부터 진단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터라, 유가하락이 베네수엘라 국가 예산 운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질문을 해보았다. 그녀는 현재 유가하락 추세를 감안하여 1배럴당 60달러로4) 산정하여 2015년 예산 계획을 세웠으며 유가하락으로 인한 사회 정책들이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다소 긍정적인 답변과 함께 2002년 그들이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야디라씨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한 전문이다.
“2002년 석유파업 당시 석유 국가 예산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죠. 당연히 석유 생산 뿐 아니라 공장 전체가 가동이 중지된 채 몇 개월이 흘렀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겨냈고 해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고 흠을 내는 소수의 몇몇 그룹들도 존재했죠. 어디에서나 다른 의견을 가지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제게 한국의 젊은이들이 참 인상적입니다. 저는 한번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막말’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적어도 내 앞에서는 말이죠, 웃음). 제가 안타까운 점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국내.외 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몇몇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에 대해 아주 공개적으로 ‘막말’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볼 때입니다…. 차베스 대통령이 추진하려 했던 여러 사회적 미션들은 집권할 당시의 사회구조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교육과 관련 해서 문맹퇴치를 위한 미션들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도저히 당시 교육 구조에서는 실현 가능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미션로빈슨 이었죠. 그런데 바로 그 즈음 석유파업으로 인해 국가재정은 큰 타격을 입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대학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고, 그래서 학생들과 이 프로그램에 깊이 동참하고 있었죠. 학생들과 함께 수요를 조사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방문했는데 우린 그때 종이 한 장을 5조각으로 나누어(물자부족으로 인해) 앞.뒷면에 주민들의 이름,주소 등을 기입해야 했죠. 그런데 당시 더 황당한 일을 발견하게 되었죠. 함께 동참하던 학생이 제게 달려와 하는 말이 “교수님, 여기 주민들이 자신들의 ID 카드(주민등록증)가 없어요!!”. 라고 하는 것이죠. 즉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서 등록되지 않은 주민들이 상당수였던 것이죠. 출생신고를 하기 위한 절차의 까다로움과 돈이 필요 했기 때문에 많은 빈민가의 주민들은 그 조차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었구요. 그래서 미션 로빈슨과 함께 진행된 것이 바로 주민들에게 출생신고를 해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같은 사업은 2002년 석유파업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텅텅 비어있던 그 순간에 바로 저희는 필요했던 다양한 사회미션들을 추진했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죠… ”
개인적으로 빈민가의 많은 주민들이 까다로운 등록절차와 비용으로 인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국가의 혜택은 고사하고 심지어 선거권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베네수엘라를 방문했던 당시 큰 충격이었지만, 그 프로그램이 문맹퇴치 사업의 과정에서 현장 활동가들에 의해 발견되고 이후 조속한 해결책이 바로 만들어 졌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 뇌리를 스치며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사회복지가 결코 경제주의적인 접근, 즉 수입과 지출의 ‘합리성’에 근거하여 회피되고 보류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회 복지란 결코 탁상공론으로는 이룰 수 없는, 다시 말해 사회복지이든 혜택이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현장을 떠나서는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베네수엘라의 사회는 바로 이 같은 점에서 사회혁명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민중의 사회적 권리는 조야한 경제주의적 논리에 입각하여 보류되고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볼 때 한번쯤 되돌아 보게 되는 대목일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회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료되는 부분은 바로 그 동안 편견의 틀에 갇혀 미쳐 깨닫지 못하게 되는 사실을 대면하게 해주는 힘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상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갖는 한 결코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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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의 의견임.
2) 베네수엘라의 아야까는 우리나라의 만두와 비슷한 음식으로 3가지 육류(돼지고기,소고기,닭고기)와 야채를 섞어서 옥수수가루로 반죽을 하여 도톰하게 만들어 빗어서 바나나 잎과 비슷한 열대나무 잎에 쌓아 찜을 해서 먹는 음식으로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이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3) 대화 문맥상 저쪽은 스페인이고 이쪽은 아메리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4) 당시 면담이 이루어 지던 시기 석유는 배럴당 약 68달러였으며, 아직 8달러의 여유는 여전히 그들에게 충분히 긍정적인 상황인 듯한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