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장/과테말라 검찰청자문관)
과테말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나라라고 평가를 받는다. 마야문명의 중심지에 위치 하여 Corazon Maya 라는 닉네임과 더불어 천혜의 자연환경과 자원을 그리고 중미지역 관문으로서 성장잠재력이 큰 나라라는 화려한 이미지 이면에는 극심한 소득격차에 따른 심각한 치안 불안으로 “중미지역의 범죄의 수도” “실패한 국가”(failed nation)라는 오명을 쓴 초라한 이미지의 양면을 갖고 있다.
과테말라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약 11만 Km2의 면적과, 인구 1400여만명, 1인당 국민소득 약 3천5백여 불(2012) 수준의 중미지역 국가로 멕시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벨리제 등 경제악화와 치안불안을 겪고 있는 나라들과 접경하고 있다. 경제 규모의 면에서는 2013년도 국가예산이 86억여불, 경제성장율은 3.4%, 해외동포송금액 52억여 불, 외국인 직접 투자 12.6억여 불에 불과하며 산업구조의 면에서는 전통적 농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취약한 제조업부문 때문에 대부분의 자본재,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후진국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테말라의 최대 아킬레스 건인 치안불안은 36년간 내전 과정에서 형성되었지만, 1996년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 오히려 살인사건을 포함한 각종 강력범죄가 급격히 증가해 왔다. 그 결과 국가적으로 높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 (연간 24억불 : GDP의 7.3% 추정)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치안불안이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먼저 과테말라의 총범죄 및 살인사건발생 최근 추이를 분석해 보자.
과테말라의 2005-2012년간 일일평균 살인사건은 약15건으로 한국 약 3건, 일본 약 4건 대비 월등히 높은 수준이며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2012) 경우 한국 2.18건 일본 1.1건 그리고 세계 평균 6.9건 대비 과테말라는 46건으로 세계 최악의 치안불안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특히 발생 사건의 83.5%가 총기에 의한 것으로 희생자의 대부분(57.7%)은 11세-30세 사이의 청소년층이다. 게다가 강력범죄의 경우조차 발생건수는 높은 반면 검거율은 평균 6.8%(살인의 경우 2%정도)에 불과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식이 팽배하여 검찰, 경찰 등 법집행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주민지역사회 중심으로 자구행위가 다발하고, 민간 경비업의 성행 (약12 만 여명 활동 중)과 더불어 군의 치안활동 개입이 강화되고 있어 이에 따른 인권침해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나마 과테말라의 범죄증가의 원인을 범죄환경, 행정당국의 부패만연 그리고 정치 경제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과테말라의 범죄환경
먼저 범죄환경 측면에서 보면 우선 과테말라가 미국과 유럽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마약의 은밀한 운송루트 (연간 약 400톤 규모로 미국에 공급되는 마약의 75% 수준 약 100억불 상당)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멕시코 최대 마피아조직인 Los Zetas, Michoacaan Family, Mendozas, Lorenzanas 등이 과테 말라 국경으로 침투하여 마약루트를 장악하기 위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이 마약 조직간 싸움에서 희생된 조직원이 과테말라 전체 살인사건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 교정당국이 1990년대 중반이후 과테말라 출신 범죄청소년들을 본국으로 송환 조치하였는데 이들이 귀국 후 범죄단체를 조직, 활동한 것이 범죄증가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과테말라 양대 갱조직인 MARA, Barrio18의 조직원 수는 약 8만여명(430여 조직)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최근 멕시코 마약범죄조직과 연계활동이 강화되면서 치안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36년에 걸친 내전으로 과테말라는 중미지역 국가 중 개인이 총기를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데 2010년 2월말 기준 274,177정의 총기가 등록되어 있으며 이 외에 약 150만정의 불법 총기가 추가로 유통되고 있다는 UN 발표도 있었다. 이와 관련 내전 당시에 형성되었던 불법, 비밀치안외곽단체들에 의한 치안불안이 심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과테말라 내에서 활동중인 주요 불법, 비밀 치안외곽단체들로는 Ilegal and Clandestine Security Units, Civil Self-defense Patrols 및 Volunteer Civil Defense Committees 등이 있는데, 이들은 내전 기간에 군의 협조 하에 군사활동을 지원했던 준군사조직들로, 이들이 평화협정 체결 후에도 불법적으로 은밀히 활동하면서 기득권 세력을 침해하는 자들에 대하여 청부살인, 린취(lynching), 납치, 불법감금, 신체공격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지금도 부패한 정치인, 정부고위인사, 검 -경찰, 군정보기관, 사법부인사 등과 조직적으로 긴밀한 공모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범죄환경과 더불어 국가의 행정 기관에 만연된 부패 또한 범죄증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오랜 내전을 거치면서 검-경찰을 포함 법집행기관들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타성이 평화협정이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보복의 두려움으로 인해 이들 행정기관이 적극적인 수사를 기피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범죄단체들도 검-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는 불처벌(impunity) 의식 확산의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경찰관의 부정부패 연루도 범죄 만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과테말라 경찰관의 경우 평균 봉급이 570여 불에 불과해 경찰관 70%가 빈곤층에 속한다. 전 경찰청장 Erwin Sperisen(2008)에 따르면 약 40%의 경찰이 부패에 연루되어 있다고 하며, 심지어 전 부통령 Eduardo Stein은 경찰, 검찰, 교도행정은 조직범죄가 침투된 하나의 망(web)을 이루는 부패구조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대체로 연간 100억 불 규모로 추산되는 과테말라로 유입 마약거래대금 중 약 10억불이 검-경찰 등 공무원 매수자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과테말라 범죄발생 증가 원인
그렇다면 과테말라 범죄발생 증간 원인은 무엇일까? 그 증간 원인을 정치,경제적(plitico-economical) 측면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과테말라는 전체인구의 7% 정도를 차지하는 유럽계 백인들이 사회적 가치들을 독점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상위계층를 형성하고, 전 인구의 56%가 빈곤층으로 하층계급을 형성하는 전형적 피라미드 형 사회구조인데 정치권력이 상층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에게는 치안문제가 핵심 정치의제가 아닌 관계로 지금껏 치안 문제가 다분히 방치되었다는 점이 범죄발생 증가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CIEN(Centro de Investigaciones Economicas Nacionales)의 “Diagnostico de la Politica Economica, Social y de Seguridad 2011-2021(2011.5)" 연구보고에 따르면 “각 정권별로 치안문제가 경제발전을 포함한 여타 국책과제에 밀려 현실적으로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마약을 포함 조직폭력 척결 및 범죄예방을 위한 중,장기 적 정책부재가 오늘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범죄 증가 원인인 경제적 양극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테말라는 기본적으로 농업기반사회인데, “농업인구 1% 미만(주로 백인)이 경작지의 75% 이상을 소유”하는 극단적 경작토지독점화가 이루어졌으며 주로 인디언들이 산간오지 소재 25% 미만의 토지를 경작하거나 백인소유 토지의 소작농으로 생계를 어렵게 유지해 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독점화된 토지소유 시스템 하에서는 농업이윤을 바탕으로 하는 중산층(petit bourgeois) 출현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 2차 산업에 투자될 농업자본축척이 이루어지지 않아 2차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이 사실상 정지되어 있다.
현재 과테말라에는 청소년 취업인구의 1/3 만이 법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에 취업 중이며 2/3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불법고용, 생계 유지형 이중 취업 또는 실업상태에 놓여있는데, 이들이 생계형 범죄를 시작으로 범죄활동으로 꾸준히 유입되면서 거대한 치안불안 상태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치안불안에 머무는 게 아니라, 범죄증가가 국내투자는 물론 해외로부터의 직접투자를 가로 막는 최대 장애 요인으로 작동하면서 치안불안이 투자 및 경제성장율 둔화를 초래하고, 이러한 경제성장 둔화가 다시 치안 불안을 초래하는 악순환(vicious circle)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세계개발도상국들의 평균 경제성장율이 6-7%에 달했지만 과테말라 경우는 3% 전후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 악순환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나마 이 정도의 경제성장도 투자증가에 따른 성장이 아니고 주로 해외거주동포 송금(총수출액의 40% 정도인 50억여불)과 마약밀거래(약 100억 여불)에 따른 소비증대가 이끈 성장이라는 것이 냉정한 과테말라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과테말라의 미래는 치안의 확보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