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도(전북대교수, 전콜롬비아대사)
2015년은 라틴아메리카에 어떤 해가 될까? 국내적, 지역적 요인 등 다양한 설명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를 두고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다. 작년 12월에 향후 라틴아메리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12월 17일 미국과 쿠바 양국 대통령이 외교관계 정상화를 선언했으며, 12월 22일에는 카리브해 연안의 뿐따 고르다에서 중국자본에 의한 니카라과운하 건설 착공식이 거행됐다. 그리고 2015년이 시작되자마자 중국은 북경에서 제 1회 중국-라틴아메리카 포럼 장관급회의가 개최됐다.
미국과 쿠바의 외교관계 정상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지난 53년간 지속됐던 ‘냉전’이 종식되었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대(對) 쿠바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며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즉각 쿠바와의 외교관계 정상화 협상을 개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2015.1.7. 쿠바정부는 미국이 언급했던 53명의 정치범중 30여명을 석방했다.
1823년 먼로 독트린 이후 미국의 대라틴아메리카 정책은 이 지역에 타대륙 세력의 침투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공고히하는 것이었다. 제 2차대전 이후 냉전기간 동안에는 공산주의 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쿠바에 대한 철저한 봉쇄였다.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소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그동안 미국은 쿠바를 철저히 봉쇄해왔으며, 1990년 소련 해체 이후에도 92년 ‘쿠바 민주화법’, 96년 ‘쿠바 자유화 및 민주화 연대법’(헬름스-버튼 법) 등을 통해 쿠바에 대한 압박을 강화시켜왔다. 그런 미국이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한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2010.9.11. [이코노미스트]지는 라틴아메리카가 미국과 유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며, 특집 제목을 “라틴아메리카의 부상, 라틴아메리카는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의 ‘뒷마당’으로 간주되었던 라틴아메리카가 21세기 들어서면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정치적으로 연합해 미국의 주도권에 도전하면서 ‘주인이 없는 마당’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의 도전
그러한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주요한 파트너였던 중국이 서서히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면서 이제 미국의 걱정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2000년 중국과 라틴아메리카간 교역은 10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2,570억 달러로 무려 25배가 급증했다. 중국은 2009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브라질의 최대 경제협력 파트너가 됐다. 브라질의 전체 수출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는데, 이는 미국보다 2배 많은 것이다. 또 중국은 베네수엘라에서 매일 52만 배럴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2번째 석유 수입국이다. 지난 7월 시진핑 주석은 베네수엘라 방문시 석유 수입을 1백만 배럴로 늘리기로 합의했으며, 4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작년 12월22일 뿐따 고르다에서 태평양의 브리또까지 278㎞ 구간에 걸쳐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한 니카라과운하가 착공되었다. 완공되면 미국의 영향력하에 있는 파나마운하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니카라과운하는 중국 통신장비제조업체인 신웨이(信威)공사를 경영하는 사업가 왕징(王靖)이 설립한 홍콩 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이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왕징 회장은 50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건설비용을 조달할 방안 등을 공개하지 않아 그가 중국 정부가 앞세운 인물일 뿐 실질적인 사업 주체는 중국 정부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중국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은 니카라과운하에 대해 투명성을 촉구하고 있다.
또 2015.1.8.-9. 북경에서 제 1회 중국-라틴아메리카 포럼 장관급회의가 열렸다. 개막식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라파엘 꼬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친치야 미란다 코스타리카 대통령 등 정상이 참석했으며,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33개 회원국중 30개 국가에서 40여명의 외교장관과 장관급 각료가 참석하였다. 포럼은 작년 7월 브라질 방문시 시진핑 주석의 제안에 의해 탄생되었다.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개막연설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과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양자무역 규모를 5천억 달러로 확대시키고, 투자규모를 2천500억 달러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응전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통적인 간섭정책을 포기하고 ‘선린정책’을 펼쳤다. 1934년 미국의 쿠바간섭을 승인한 플랫 수정안(Platt)을 철폐하고, 아이티에서 미국 해병대를 철수시켰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와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실시한 우호정책으로 경제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를 미국의 자본 수출시장·무역시장으로서 확보하고 유럽 세력의 진출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제 그동안 명확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자의 모습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 지역에서 중국의 도전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새로운 세력의 도전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걸음이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다. 80년 전 루즈벨트의 선린정책과 묘하게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