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혁 코트라 아바나무역관장
(아바나=연합뉴스) 이종호 객원기자 =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사업한다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망은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관광분야는 지금부터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와는 국교도 수립돼 있지 않은 쿠바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곳이 지난 2005년 9월 정식 개관한 코트라(KOTRA) 아바나무역관이다. 이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한국 기업들의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정혁(徐廷赫·35) 관장은 언젠가 쿠바에 시장경제가 본격 도입될 날에 대비해 부지런히 선점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세기 전반부에는 미국의 텃밭과도 같았던 쿠바이지만 1959년 혁명 이후 상호 적대관계로 돌아섰고, 이후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가 수십 년간 이어지면서 쿠바는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물론 한동안은 구소련이 '형님' 역할을 해줬지만 1990년대 러시아의 국력과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면서 쿠바의 고민도 커졌다. 이웃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에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말도 안 되는' 낮은 가격으로 쿠바에 석유를 공급해주는 덕분에 한숨 돌렸지만 최근 차베스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쿠바에 대한 경제지원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쿠바는 그동안 베네수엘라에 3만여 명의 의사와 교사를 보내 차베스의 지원에 화답하는 한편 상당한 해외송금 수입을 챙기기도 했다.
"러시아의 빈자리를 파고든 것이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비단 쿠바뿐 아니라 카리브 전역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경제적인 목적 외에도 새로운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미국의 코앞에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속셈이겠죠."
쿠바 전역을 돌아다니는 관광버스 대부분이 중국제 위퉁(宇通) 버스라는 사실만 보아도 중국의 입김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위퉁 버스의 조립공장은 아바나 외곽에 있다.
쿠바에서는 모든 대금 결제를 1년간 외상으로 하고 있고 거래 상대가 민간인이 아니라 정부다. 따라서 자본주의 관행에 익숙해진 기업인들에게는 사업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 현재 쿠바 전력의 30%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극히 예외적이지만 중소 규모 기업은 한두 곳에 불과하다.
물론 현대차와 기아차,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이미 상당한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고 인지도도 높다. 하지만 이와 함께 식량, 생필품 등 현찰 거래가 가능한 품목과 중저가 시장은 소기업들도 얼마든지 파고들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바나 서쪽 45km에 위치한 마리엘 신항만 건설공사는 이미 브라질이 쿠바 정부에 6억 달러 차관을 제안하면서 독점해버린 상태. 그러나 배후에 들어설 마리엘 공단의 시설과 설비 납품에는 한국 기업들의 진출 여지가 충분하다. 쿠바 당국도 최근 아바나무역관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요청해온 상태다.
서 관장이 특히 눈여겨보는 분야는 관광. 중남미와 북미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인데다 과거 스페인이 신대륙 식민지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붙들어두려 발버둥쳤을 만큼 풍부한 역사유적과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자랑하고 있고, 쿠바인들의 낙천적이고 친절한 성격과 쾌적한 기후 등 모든 면에서 관광지로서 최고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쿠바의 체제가 본격 개방되면 지금까지 바하마 등 인접한 작은 섬들을 찾던 관광객들이 대거 이쪽으로 몰려올 겁니다. 지금 도미니카공화국이 누리는 중계무역항의 역할도 단번에 아바나로 환원될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식민지 시대 중남미 각지에서 채광한 금을 스페인으로 보내기 전에 모아서 보관창고 역할을 하던 곳이 바로 아바나 아닙니까."
쿠바를 찾는 외국인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 기준 250만 명 수준, 관광수입은 연간 25억 달러가량이다. 쿠바 정부는 이미 세계적인 휴양지로 이름난 바라데로 외에도 최근에는 카요 산타마리아, 카요 코코 지역에 대규모 리조트를 짓고 있다.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렵던 민박 등 소규모 숙박시설도 늘어나고 있다.
쿠바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올해의 경우 4천 명 선에 이를 것으로 아바나무역관은 전망하고 있다. 대개는 멕시코, 페루 등 인접국들과 패키지로 엮는 여행상품이다.
서 관장은 한국외대 스페인어학과 출신으로 2001년 코트라에 입사, 그간 페루와 칠레 등 주로 중남미권에서 근무해왔다. 현재 세계 곳곳에 파견된 코트라 무역관장들 가운데 최연소 관장이기도 하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6/10 08:31 송고
출처: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2/06/10/0607000000AKR201206100102000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