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07 16:22:40 조회수 : 3,006
국가 : 브라질


 

김재순 (연합뉴스 특파원)

  

  

'중남미 좌파의 아이콘' 브라질 룰라

  3월 중순의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내일'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궁금증으로 시작한 가사는 "내 운명은 신이 원하는 대로 정해질 것"이라는 브라질 국민 특유의 낙천적 심리 묘사로 끝을 맺는다. 진행자는 대형 부패 스캔들과 대통령 탄핵 공방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 계속되는 상황이 하루빨리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브라질 최대 방송사인 글로보TV의 중견 여기자는 "요즘처럼 한꺼번에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브라질 전체가 혼돈에 빠진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사상 최악의 경제 침체를 둘러싼 논란과 2년째 계속되는 사법 당국의 부패 스캔들 수사, 부패 의혹에 휩싸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에 대한 처벌 움직임, 정치권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 시도, 연립정권 붕괴 조짐, 잇단 친-반정부 시위 등을 말한 것이다.

  

노동자당 정권 위기가 불러낸 룰라

  브라질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한꺼번에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조성된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에 빠져 있다. 위기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 상파울루 시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의 대중교통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그 해 6월에 시작된 시위는 부패 척결과 공공서비스 개선, 복지와 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번졌다.

  월드컵 축구 열기 속에 2014년을 넘긴 브라질은 2015년부터 본격적인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1930년대 초반 이후 처음으로 경제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하는 침체 속에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빨려 들어갔다.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과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공방, 연립정권 내 정당간 불협화음 등이 배경이 됐다. 브라질 하원은 호세프 대통령 탄핵 문제를 다룰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에서 탄핵 추진에 합의가 이뤄지면 의회 표결에 부쳐지고, 상·하원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탄핵 안이 통과된다.

  이런 상황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국영에너지회사 고위직 인사 개입과 이와 관련된 뇌물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연방경찰에 강제 구인돼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지역 검찰은 룰라 구금을 시도하기도 했다. 룰라에 대한 사법 처리 위협과 호세프 대통령 탄핵 움직임은 올해로 14년째를 맞은 노동자당(PT) 정권의 존립 기반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노동자당 정권의 위기는 지난 2010년 말 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좌파의 아이콘'으로 일컬어지는 룰라 전 대통령을 현실 정치로 불러내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는 브라질이 안은 문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그를 국정에 참여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룰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10년 말 대통령 퇴임 후 5년 만에 정치 무대의 중심에 선 것이다.

  

2016년에 되돌아보는 '룰라 신화'

  룰라의 정치 역정은 중남미 좌파의 부침과도 흐름을 같이한다. 이른바 중남미 '좌파 대세론'은 1990년대 말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의 집권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경제·사회적 성과를 바탕으로 '핑크 타이드(pink tide, 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라는 꽃을 피운 것은 룰라였다.

  룰라는 북동부 지역 빈민가에서 태어나 금속공장 선반공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이끌다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신화를 만든 인물이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집권했고, 퇴임 당시 지지율은 80%를 넘었다.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 호세프가 2010년과 2014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브라질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 말기 노동계는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사람을 찾았다. 노동운동을 통해 전국적 인물로 성장하고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던 룰라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인물이었다. 룰라는 정당이라는 공식 정치기구를 통한 사회 변혁을 꾀했고, 전국을 누비며 지지자들을 끌어 모은 끝에 1980년 2월 10일 노동자당 창당에 성공했다.

  '노동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정당'을 표방한 노동자당의 등장은 국민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소수 엘리트 만의 무대로 여겨졌던 정치권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룰라는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노동자당의 결속력을 다졌다. 불필요한 이념 논쟁보다는 살아있는 행동을 촉구하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를 끊임없이 모색했다.

  룰라는 1982년 선거에서 상파울루 주지사에 도전해 실패했으나 114만 표를 얻어 정치인으로의 변신 가능성을 확인했다.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처음 시행된 1986년 의회선거에 출마한 룰라는 전국 최다인 65만 표를 얻으며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화려하게 현실 정치에 데뷔한 기세를 몰아 대권에 도전했으나 1989년과 1994년, 1998년 대선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빈민층·노동자 출신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과격한 이미지의 정치인에게 대선의 벽은 아직 높았다.

  세 차례의 대선 도전 실패 이후 룰라는 스스로 변했다. 2002년 대선에 다시 출마한 룰라는 은행 국유화, 외채 동결, 토지 개혁, 거대 언론에 대한 통제 등 급진적이고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던 공약을 내던졌다. '평화와 사랑의 룰라'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쿠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를 연상시키는 덥수룩한 수염을 짧게 다듬었고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아내와 함께 대중 앞에 섰다. 달라진 룰라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유권자들은 그에게서 마음씨 좋은 산타클로스를 떠올렸다.

  룰라는 섬유업계 재벌이자 우파 성향의 주제 알렌 카르를 부통령 후보로 영입했다. 재계와 금융시장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필승카드였다. 노동자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에서 '변절자'라는 비판이 쏟아졌으나 "선반공과 기업인이 나라를 함께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로 잠재웠고, 룰라의 선택은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며 대선 승리라는 결실을 맺었다.

  브라질의 사회학자 프란시스쿠 올리베이라는 룰라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을 두고 '제4의 혁명'이라고 했다. 1880년대 노예제도 철폐와 군주제 폐지, 1930년대 국가산업화 정책에 이어 브라질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네 번째 혁명적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노동자당 정권의 등장 배경과 경제·사회적 성과

  중남미 지역은 1990년대 들어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와 함께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규제 완화, 시장 개방,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공기업 민영화 등이 추진됐다. 중남미 국가들은 외국인 투자 확대와 경제의 고도 성장, 고질적인 인플레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나친 시장 개방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수입 급증으로 무역수지는 갈수록 악화했다. 외국자본을 대규모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높은 이자 때문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차베스가 정권을 잡았고, 신자유주의를 가장 충실하게 따르던 아르헨티나는 2001년 국가부도를 맞아 대통령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브라질도 예외는 아니었다.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는 재무장관 시절인 1994년에 도입한 헤알 플랜(Real Plan)으로 인플레를 잡으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이는 1994년과 1998년 대선 승리의 배경이 됐다. 헤알 플랜은 연간 누적 인플레율이 5천%를 넘는 비상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미국 달러화와의 교환 비율을 1:1로 묶는 고정환율제를 바탕으로 헤알을 새 통화로 도입한 방안이었다. 헤알 플랜은 인플레 억제, 시장 개방 확대, 고금리 등 3가지를 핵심 내용으로 했다.

  카르도주 대통령은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경제 실적을 이뤄냈다. 인플레율을 한 자릿수로 낮추고 경제 성장률을 4%대로 높였다. 그러나 시장 개방 확대는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무역수지 악화와 외채 급증을 초래하면서 브라질은 결국 1999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카르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 실패는 좌파의 발언권을 강화해 주었고, 룰라의 대선 승리는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

  대통령 룰라는 운이 좋았다. 세계자본시장은 이념을 떠나 과감하게 중도실용주의 정책을 택한 룰라에 환호했다. "룰라가 대통령이 되면 브라질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것"이라던 헤지펀드 투자가 조지 소로스의 저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중국 경제의 비상과 세계 경제의 호황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은 브라질에 호재였다.

  브라질 경제는 2003년부터 눈에 띄는 성장세를 계속했다.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인상, 소득재분배, 저소득층 지원 등을 통해 빈곤층을 대거 중산층으로 편입시키면서 브라질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빈부격차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 '룰라 효과'는 대략 10년간 계속됐다. 2013년까지 경제는 그런대로 성장세를 유지했고, 노동자당 정권이 이룬 사회적 성과도 여전히 유효했다.

  

변화와 개혁 요구 받는 노동자당 정권

  2014년 말 대선을 고비로 상황이 급변했다. 경제는 2014년 0.1% 성장에 이어 2015년에는 -3.8%로 곤두박질쳤고 경기침체로 산업생산이 감소하면서 일자리가 줄었다. 2000년대 브라질 경제의 번영을 가져온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꺾인데다 호세프 대통령 정부와 노동자당의 정책 실패 때문에 경제 위기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재정 건전성 확보 노력이 미흡하고 감세 조치가 산업생산을 자극하지 못하고 있으며 연금 등에 대한 정부지출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는 점을 정책 실패로 꼽았다. 세계의 주요 언론은 브라질 정부가 구조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고 경제 침체가 계속되면 수천만 명을 빈곤에서 구제한 경제·사회적 성과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브라질 국책연구소의 보고서는 극빈층 비율이 2012년 3.63%에서 2013년에는 4.03%로 늘었다고 전했다. 극빈층 비율이 늘어난 것은 2005년(7.02%)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빈곤 없는 브라질'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이미 실행이 어려워졌다.

  정부 재정난과 치솟는 인플레는 노동자당 정권의 트레이드마크인 사회복지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9개 주요 사회복지 프로그램 가운데 지난해 8개의 예산이 축소됐다. 올해도 예산 축소가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동자당 정권은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집권당에서는 이른 시일 안에 미세한 경기회복 신호라도 나오지 않으면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룰라 정부의 정책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사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연립정권의 최대 파트너인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은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 대비한 정책을 마련했다.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으로 축출되면 브라질민주운동당 대표인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정권을 승계하게 된다. 브라질민주운동당은 보조금 중단과 복지 프로그램 재검토 등을 포함한 사회복지정책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지출을 축소하기 위해 연방기금에 의존하던 서민주택 건설 사업을 조정하고 일부 산업 분야에 대한 면세 혜택을 폐지하는 내용도 구상하고 있다.

  

'구원투수'로 나선 룰라…중남미 정치 지형에도 영향

  노동자당 정권과 호세프 대통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면서 룰라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정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내각을 총괄하는 수석장관이나 대통령 특보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룰라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나온다. 룰라가 특유의 정치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면 2018년 대선 출마 가능성도 커진다. 룰라는 이미 2018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대선 출마를 위해서는 노동자당 정권에 실망한 민심을 되돌려야 한다. 여론은 다소 부정적이다. 2018년 대선 출마를 전제로 한 예상득표율 조사에서 룰라는 22%에 그쳤다. 야권의 유력 후보에 거의 10%포인트 뒤지는 것이다. 사법 당국의 부패 수사를 어떻게 비켜갈 것인지도 문제다. 부패 의혹에 휩싸인 룰라를 향한 시민의 분노는 생각보다 높다. 반정부 시위 현장은 '룰라 퇴진' '룰라를 교도소로'라는 구호도 뒤덮이고 있다.

  룰라의 행보는 중남미 지역의 정치 지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에는 지난해부터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2015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중도우파 야당 후보가 승리하며 12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12월 베네수엘라 총선에선 중도보수 야권이 좌파 집권당에 압승을 거두고 16년 만에 다수당을 차지했다. 2016년에도 우경화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4월 페루 대선에서는 우파 케이코 후지모리 후보의 승리가 유력하고, 10월 브라질 지방선거에선 좌파 진영의 열세가 점쳐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 브라질 좌파 진영에서는 최근 의미 있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좌파 성향의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농민단체, 학생조직들이 참여하는 브라질민중전선(FBP)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룰라의 구상으로 등장한 브라질민중전선은 우루과이와 칠레의 중도좌파연합체인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와 누에바 마요리아(Nueva Mayoria)에 착안한 것이다. 특정 정당이 아니라 중도좌파 세력이 연합체를 형성해 선거를 치르고 집권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2002년 대선 당시처럼 룰라는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올해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면 대통령 탄핵 공세를 누그러뜨리고 국정 주도권을 회복해 집권 연장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전략으로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2018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막기 어려워진다. 더 크게는 중남미 좌파의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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