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07 16:23:25 | 조회수 : 3,417 |
국가 : 파라과이 | ||
안태환 (前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파라과이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로아 바스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필자가 2000년도에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로아 바스토스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생각난다. 인 정 많은 노인과 같은 따스한 미소와 파라과이의 민중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로아 바스토스는 1917년에 태어나 2005년에 작고했다. 그는 브라질인 아버지와 과라니 원 주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어린 시절 이투르베라는 작은 마을에 서 가난하고 헐벗은 동네 아이들과 가깝게 지냈다. 이들 동네 아이들은 과라니어만 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이 같은 어린 시절의 체험이 향후 어른이 되었을때 그를 작가로 만든 내적 동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 독재와 싸우고 파라과이의 현실을 문학적, 미학적으로 표현한 작가였다. 그리하여 그의 대표작인 [사람의 아들](1960), [나 최고](1974) 모두 외 국인 아르헨티나에서 망명 중에 쓴 것이다. 그는 1989년에 노벨상 다음으로 스페인어 권에 서 권위가 있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권력’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그는 겉으로는 아무 힘이 없어 보이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민중의 공동체적 힘을 믿은 작가이다. 파라과이의 경우, 권력층 에 의해 차별받는 민중은 과라니어를 쓰는 원주민들이었다. 하지만 로아 바스토스는 평면적 인 미학 이론에 기초한 단순한 리얼리즘 작가들처럼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사진 찍듯이 그 대로 그려내는 작가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 소설과 역사의 관계는 어떠한가? 소설과 다른 문학 장 르 특히 에세이와는 어떤 관계인가? 역사와 문학의 진실과 허구는 누가 어떻게 판정하고 해 석하는 가? 라틴아메리카의 붐 소설이 어느 정도 독창적 에너지를 강하게 뿜어내고 난 뒤에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에 대한 투쟁과 맞물려 민주주의의 비전과 열망은 라틴아메리카 현대 대중문화와 어떤 접점이 있을 수 있나? 등과 같은 아주 깊고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리고 매우 창의적인 방법으로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을 만들어낸 메타 문학적 작가이다. 이 런 맥락에서 현대 파라과이가 가장 자랑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현대 중국에서 노신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의 현실적 삶에서 그를 괴롭힌 독재자는 알프레도 쉬트로젠너 장군이다. 이 독재자는 1954년에서 1989년까지 장기 독재를 하면서 민주주의 파괴와 함께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 을 일으켰다. 로아 바스토스는 정확하게 이 독재가 끝나고 신정부가 들어선 1989년에야 조 국으로 영구 귀국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인 [나 최고]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독재 자를 기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대신에 쉬트로젠너와는 통치 맥락이 매우 다르고 역사 적 함축도 매우 다른 19세기의 독재자인 프란시아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일직선적인 서술을 하지 않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조작이고 허구인지 모를 장치들 예를 들 어, 작가 개인에 의한 권위주의적 글쓰기의 창작이 아니라 복수의 서로 다른 시각에 의한 조작(?) 가능성을 삽입하고 특히 다수의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집단창작 또는 ‘증 언 문학 또는 구어 문화’의 가능성을 표현한 것으로 현대 문학 비평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 게 된다. 이런 독특하고 탈권위적인 소설 미학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훌리오 코르타사르에 비교되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소설 미학의 혁명을 실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몇 가지 흥미로운 로아 바스토스의 소설 미학의 혁명적 실험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이미 1960년에 발표된 [사람의 아들]에서 일반적인 리얼리즘 소설의 전지적 화자의 설정 대신에 작품 뒷부분에 편집자의 편지의 ‘일부’를 삽입하고 있다. 여기서 작품 전체의 주장에 거리를 두고 또 다른 시각의 해석이 가능함을 암시하고 있으며 특히 이 편지가 ‘일부’라는 이야기 는 알려지지 않은 편지의 내용은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방식으로 소위 훌리오 코르타 사르의 열린 소설과 비슷하게 소설의 내용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매우 새롭고 리얼리즘의 논리 자체를 다시 재해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아들]의 경우, 중산층이고 지식인인 주인공 미겔 베라가 영웅적 주인공이 아니라 애매하고 배신자가 아닌가 하는 것을 암시만 하고 확정된 언술을 피하고 있다. 이에 비해 힘없는 민중을 상징하는 다른 인물 크리스토발 하라의 경우, 현실에서 패 배하고 말지만 역사의 진보는 이런 패배자의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다수의 민중에 의 해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노골적인 화자의 언술은 없고 다만 이미지를 통해 독자 가 짐작할 뿐이다. 선악의 이분법적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실험은 소위 근대성의 철학과 인식론이 본격화된 17세기 이래로, ‘말하기’에 비해 항상 우위에 있어왔던 ‘글쓰기’의 차원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특히 라틴아메 리카의 역사, 문화, 사회적 맥락에서 ‘말하기’는 원주민을 포함한 광범한 대중의 구어문화 와 연결된다. 여기서 구어문화란 구전소설이나 구전 노래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중 의 집단적 의식(무의식)속에 담겨있는 공동체적 연대를 가리키는 것이고 스페인어 외에 과 라니어 등의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에 담긴 가치관과 세계관이 강조되는 것이다. 특히 전지 적 화자에 의해 전달되는 소설의 내용이 ‘글쓰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판과 회의 또는 거 리두기 등의 문제제기와 토론이 불가능함을 거부하고 이를 전복시킨다. 이를 통해 공식적 인 역사에 의해 가려져 있거나 침묵 또는 왜곡을 강요당한 진실이 수많은 대중의 집단적 증 언 또는 진술에 의해 깨어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1812년을 중시하고 있다. 이 해에 호 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박사(일명 프란시아 박사)가 파라과이의 대통령이 된 다. 이 역사적 실존 인물은 로아 바스토스의 소설 [나 최고]의 주인공이다. 그는 파라과이 를 철저히 외국과 고립시키면서 1840년 사망할 때까지 독재체제를 유지한다. 소위 말하는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또는 정당민주주의 모델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외국과의 경제 통상은 대통령에 인정받은 극소수의 브라질 상인만이 가능했고 외국의 사치품 수입은 통제되었고 마테차와 담배의 수출이 억제되면서 내수시장이 번영하여 국민의 소비수준이 높고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했다. 그리고 특히 소수의 백인 귀족계급을 억누르고 민중의 지지를 확보했다. 대농장 소유자들로 이루어진 소수의 과두계급은 프란시아 통치기간 동안 희생자가 된 것이 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 라틴아메리카 정치 사회적 모델과는 매우 거리가 먼 독특한 체제였다. 이에 대해 유럽(강대국)중심적이고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적 세력은 거부감이 강한 체제였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소설 미학의 혁신이 가지는 의미는 바 로 독재정권의 반민주주의를 깨트리고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도 대중의 공동체적 연대를 함축하는 구어문화의 복구가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셋째 이런 새로운 소설 실험을 위해 작가 또는 화자 외에 편집자의 위치를 새롭게 올려놓고 있다. 1974년의 [나 최고]의 경우, 소설인지 역사서인지, 에세이인지, 학술논문인지 또 는 일기인지 또는 단순한 팜플렛인지 애매모호하고 복합적인 장르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파라과이의 독특한 역사, 사회적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역사 적 진실의 탐구에 대한 “파라과이 팜플렛”이라고 불리는 소책자들이 약 50만권이 생산되어 도서관 등에 유통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파라과이는 19세기 후반의 약 5년에 걸친 '삼 국동맹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모든 것이 피폐해졌다. 특히 이 전쟁에서 파라과이 남성 대부 분이 죽고 말았다.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다시 파라과이가 재건되면서 ’여성‘의 공로가 절대 적이었다고 할 수 도 있다. 위의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과두 지배계급과 브라질의 금융자본 계급과 영국의 제국주의가 폐쇄적이지만 민중 지향적이고 자생적이고 활력 있는 파라과이 당시 체제를 파괴한 것이다. 이 전쟁에서 패전을 겪으면서 파라과이는 영국자본, 아르헨티나 자본에 종속되는 후진국 형 국가가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파라과이의 공식 역사는 이런 자기 배반적인 역사의 흐름을 왜곡하고 비밀에 붙여진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로아 바스토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19세기의 실존인물인 독재자 프란시아 박 사에 대해 공식 역사가 숨기고 왜곡한 그의 정치적 성과에 대해서 재해석을 시도한다. 이런 방식의 역사와 소설의 재해석과 재구성은 특히 권력자 개인의 엘리트적 성과를 중시하는 대 신에 집단적 대중에 의한 새로운 유토피아가 이미 과거에 있었고 이를 미래에 다시 복구해 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소설 [나 최고]안에서 프란시아 박사가 남겨놓았다는 허구의 글쓰기의 종류도 “받아 쓰기, 회람, 개인 노트, 비밀 노트, 낱장, 편집자 주, 부록, 종이 구석에 쓴 메모” 등의 다양 한 성격을 보여주며 소설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재구성을 보여준다. 이 같은 이중적 애매 성과 글쓰기의 복잡한 혼종성이 두드러진 이유는 스페인어와 과라니어의 이중구조 속에서 식민주의자의 언어인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고 침묵시키기 위해 과라니어가 가지는 구체적인 표현력과 공동체주의적 가치관의 힘을 빼앗아 왔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파라과이에서 소 설쓰기는 쉽게 말해 전자의 글쓰기와 후자의 말하기가 소설쓰기 안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음 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전자에 비해 후자의 우위를 통해 새로운 소설쓰기 즉 새로운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것이다. 넷째, 서구중심의 합리주의-개인주의적 리얼리즘 소설미학의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고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라틴아메리카의 대중문화의 성과를 소설에 흡수하는 과정에서 구어문화적-공동체주의적 미학의 복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튼 2016년 현재의 파라과이 의 정치적 지형은 이런 로아 바스토스가 보여준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유토피아 (구어문화적 -공동체주의적 사회적 연대의 복원)의 꿈과는 다시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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