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적인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탈냉전 이후 세계적으로 국가 간 전쟁을 대신하여 무력을 동반한 내전이 확대되었고, 그 결과 강제실향민도 증가하였다. 실향민은 굳이 강제라는 말을 앞세우지 않아도 자발적인 이주와는 달리 이주 자체가 강제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난민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강제실향민에는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국경을 넘은 비호신청자들과 거주지를 떠나 자국 내에서 떠돌아다니는 국내실향민이 포함된다. 멕시코의 강제실향민의 경우 주로 국경을 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유랑생활을 하는 국내실향민이 주류를 형성한다. 국내실향민은 자국 내에 머물러있지만 언제든지 국경을 넘어 난민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예비 난민이다. 따라서 UN 난민기구는 국내실향민을 난민으로 분류하여 지원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으로서 강제실향민에 대한 논의는 1984년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채택된 난민에 관한 카르타헤나 선언문에서 시작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1970과 1980년대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그리고 과테말라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단기간 대규모의 강제실향민이 발생했다. 전례 없는 난민팽창의 경험은 지역차원의 난민 및 강제실향민에 대한 논의와 협력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아래 지역정상들은 콜롬비아의 카리브 해 연안도시 카르타헤나(Cartagena)에서 개최된 제9차 미주기구 정상회담을 통해 강제실향민을 난민으로 인정한 카르타헤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은 1951년 국제 난민협약에서 정의한 난민적용 범위를 확대하여 내전 및 대규모의 인권침해 피해자까지 난민으로 해석하였다. 강제실향민은 난민으로 규정한 최초의 국제협약으로서 라틴아메리카 지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강제실향민 보호규정으로 활용되고 있다.
카르타헤나 선언문 이후 라틴아메리카지역 각국정부는 강제실향민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1994년 카르타헤나 선언문 채택 10주년을 맞아 지역정상들은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San José)에서 개최된 미주정상회담에서 여성과 아동 실향문제의 심각성을 논의하며 산호세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산호세 선언문은 카르타헤나 선언문처럼 난민에 관한 국제협약에 있어서 널리 알려지고 활용되는 규범은 아니지만 젠더를 중심으로 실향민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국제협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내에서 유입되는 강제실향민과 지역민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폭력 및 국가 간 외교적 마찰이 증가함에 따라 지역정상들은 국경도시로 유입되는 강제실향민 증가에 주목하여 2004년 국경도시연대를 강조한 멕시코 선언과 행동강령을 채택하였다. 국경도시 연대강화는 2002년 단기간 세계 최대 강제실향민을 배출한 콜롬비아의 경험을 계기로 더욱 중요하게 논의되었다. 당시 콜롬비아 정부가 게릴라에 대한 강경책을 중심으로 추진한 국가안보 정책은 다양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게릴라 간 무력충돌 증가로 인한 강제실향민 팽창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거주지를 이탈한 농민들이 콜롬비아와 접경을 형성하고 있는 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그리고 브라질 국경도시로 이동함에 따라 콜롬비아의 위기가 역내국가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다문화주의에 기초한 국경지역연대 강화를 통해 강제실향민에 대한 통합관리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국경지역협력강화는 국제법과 국내법의 충돌로 쉽게 진척되지 못했으나, 각국 정부의 이해대립과 실향민에 대한 반감해소를 위한 지속가능한 대책논의의 계기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강제실향민 문제는 심화되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강제실향민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강제실향민이 단기간 급격하게 팽창하는 동시에 기존에 강제실향민 문제와 무관했던 지역이 새로운 강제실향민 발생지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강제실향민 발생의 주요 원인인 자원개발, 도시화, 취약한 정부 및 자연재해에 더하여 최근 몇 년 동안 콜롬비아 및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지역은 마약범죄조직에 의한 무력폭력이 강제실향민 확산에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미지역은 마약유통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며 범죄조직 활동의 거점이 되고 있다. 경제적 이권이 집중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무력폭력은 무고한 시민의 희생과 농민 토지 강탈의 기회로 활용되었다. 마약자금은 전쟁을 위한 재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부패 그리고 국가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폭력은 자본축척 및 권력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강제실향민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2014년 12월 카르타헤나선언 30주년을 맞아 지역정상들은 그동안 채택된 난민과 실향민 보호에 관한 선언문을 재검토하고 이행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항구적인 난민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 31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강제실향민 및 무국적자의 안정적 정착지원에 대한 실천방안을 중심으로 구성된 브라질 행동강령이 채택되었다.
이와 같이 지난 3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그 어느 대륙보다도 상호연계협력 강화를 통해 항구적인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 UN난민기구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매일 평균 3만7000명의 강제실향민이 발생한다. 동년 말 기준 전 세계 강제실향민은 7080만 명으로 전년대비 230만 명이 증가하였다. 지난 7년 동안 강제실향민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현재 그 규모는 태국이나 터키의 인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초국가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시대에 강제실향민 발생과 유입으로 인한 지역 간 갈등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노력은 갈등완화, 실향민 인권에 대한 인식확산 그리고 자국 귀환과 사회동화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강제실향민의 양적 증가를 동반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노력은 동일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역이나 국가의 위기관리를 위한 실천방안 모색에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차경미 부산외국어대학교·중남미지역원
콜롬비아 국립대에서 역사학 석사, 한국외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저항으로서의 역사 기억으로서의 문화: 아프로-라틴아메리카 공동체 빨렝께>, <콜롬비아 유일의 아프리카계 대통령 환호세 니에토의 지워진 리더십의 역사>, <라틴아메리카 독립과 아프로-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역할> 등이 있다. 저서로는 <라틴아메리카 흑인 만들기>외 다수가 있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