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21-05-18 20:47:38 조회수 : 1,104
관련링크 :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87

라틴아메리카 냉전의 유산과 불평등   


냉전의 산물로 탄생한 반공주의와 군부독재는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구소련 붕괴이후 냉전이라는 역학 구도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패러다임이 상존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각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파와 우파 혹은 반미와 친미 세력 간의 대립은 바로 냉전 시기의 반공주의와 그 단초로 형성된 군부독재정권의 결과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냉전은 라틴아메리카의 고질적인 문제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과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운동 등은 원주민과 농민들의 가난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이 가난한 것은 생계를 이어갈 토지가 없기 때문이다. 몇몇 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토지 문제를 식민 시기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하고, 또 일부는 근대국가건설 이후에 진행된 토지 개혁에서 그 해답을 찾기도 한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의 토지 소유 불평등의 요인은 각 국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파라과이 사례를 보면 냉전으로 인한 군부독재정부의 집권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이 활발했던 아르헨티나와 그 주변국들을 예의주시하였다. 미국은 이 지역의 ‘안보’를 위해 파라과이를 낙점했는데, 지리적으로 파라과이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반공주의 거점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파라과이에 반공주의를 이식코자 스트로에스네르가 집권하기 한 해 전부터 그를 워싱턴으로 불러들여 정권 창출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쿠데타를 통해 1954년에 집권한 스트로에스네르는 이듬해에 반공법을 통과시켰다. 미국도 스트로에스네르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그가 대통령이 된 해부터 수년간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하였다. 남미에 반공주의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스트로에스네르 정부의 성공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든든한 배경을 둔 덕분에 스트로에스네르는 35년간 군부독재체제를 공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파라과이에는 공안 사범을 색출하고 고문할 기술자가 없어서 캄포스 알룸(Campos Alum) 박사를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그는 워싱턴에서 반체제인사에 관한 정보수집과 고문 기술 과정을 이수한 후 파라과이 최고의 고문 기술자로 이름을 날렸다. 파라과이 정부는 그와 더불어 미국 정부에 다른 전문가를 요청하였다. 이에 미국 정부는 파라과이 대공수사국의 설립을 지원할 인물로 로버트 티에리(Robert Thierry) 중령을 임명하였다. 그는 정보기관 감독관과 군 정보기관 조사관을 역임했으며, 6.25전쟁에도 참여한 군사전략 분야 전문가였다.
 
스트로에스네르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공수사국을 통한 정치적 탄압뿐만 아니라 측근들의 세력을 다지기 위해 불법적으로 토지를 분배하였다. 군부는 토지개혁을 빌미로 1963년 농지법을 개정하고 그것을 전담할 기구인 농촌후생협회(Instituto de Bienestar Rural)를 설립하였다. 이를 통해 군부와 친정부 인사들은 마음껏 토지를 불하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2008년에 출간된 ‘진실과 정의 위원회(Comisión de Verdad y Justicia)’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로에스네르 정부를 시작으로 군부가 집권한 반세기(1954~2003) 동안 불법적으로 불하된 토지 규모는 전체 국토의 19.3%에 해당되며, 전체 농지로 따지면 32.7%에 육박한다. 파라과이 농지의 약 3분의 1이 불법적으로 분배된 토지임을 감안한다면, 토지 분배 불균형으로 인한 농민과 원주민의 빈곤이 군부정권의 토지정책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트로에스네르는 집권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반공법을 실행하기 위한 기관으로써 대공수사국(La Dirección Nacional de Asuntos Técnicos)을 설치하였다. 대공수사국은 공안수사를 위해 반정부인사 및 좌경세력을 체포하여 감금하고 고문했던 곳이다. 세간에는 ‘라 테크니카(La Técnica)’라는 줄임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법적인 토지 불하와 관련된 사람들은 총 3,336명이며, 이 명단에는 스트로에스네르를 비롯한 로드리게스 대통령과 영부인, 파라과이로 망명 온 니카라과의 독재자인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부당하게 불하된 토지를 친인척과 주변인의 명의로 ‘세탁’ 한 후 자신들의 자산으로 편입시켰다. 당시 토지를 불법적으로 불하받은 정부 인사와 친인척들은 대농장 지주이면서 다수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여당인 콜로라도당의 실세이거나 국회의원으로서 기득권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파라과이에서 빈번한 농민 분쟁은 군부정권 때 불법적으로 불하된 토지에서 농민과 원주민이 쫓겨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토지를 잃은 농민과 원주민들은 혁명군이라는 이름으로 게릴라에 가담하거나 주변 도시, 수도, 혹은 인근 국가인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빈곤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때로는 농민이나 원주민들이 농민운동조직과 연대하여 시위를 하거나 무력 투쟁도 불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번번이 공권력에 의해 묵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농민과 원주민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파라과이의 토지소유 관련 지니계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최하위에 속한다. 이같은 토지 분배의 불균형은 농민 분쟁과 혁명군으로 불리는 게릴라를 양산함으로써 크고 작은 사회적 갈등 및 빈곤을 야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파라과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토지 분배의 불균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반공주의를 배경으로 군부정권이 자행했던 불법적인 토지 불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처럼 냉전의 상처는 불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깊게 패여 있다.

구경모 부산외국어대학교·중남미지역원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학사와 석·박사(사회인류학 및 민속학 전공)를 마쳤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남미 남부지역의 이민과 종족, 민족주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이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과이라공화국, 또 하나의 파라과이: 유럽계 이민자와 과이레뇨의 종족성」, 「파라과이 민족국가 형성에 있어 과라니어의 역할」, 「아르헨티나 거주 파라과이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통합의 한계」, 「남미공동시장과 역내국가의 종속과 갈등: 브라질계 대두농과 파라과이 소농의 사례」,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 경향과 분석틀에 관한 고찰」, 「파라과이 군부독재정권의 토지정책과 농민운동의 역사적 요인」 등 다수가 있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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