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는 게 없는' 주유소 보조하는 실정
"막대한 매장량, 4선 연임 차베스 배짱외교의 배경"
(카라카스=연합뉴스) 양정우 특파원 = 9일(현지시간) 세계 최고 석유 부국으로 꼽히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한 주유소.
배기량 3천800㏄짜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가 기름을 넣으려고 멈춰 섰다.
이 차는 기름이 완전히 바닥났던 탓에 주유 호스를 기름통에 꼽자마자 휘발유를 59ℓ나 들이 삼키며 통을 꽉 채웠다.
주유가 끝나자 운전자는 아무런 부담이 없는 듯 직원에게 돈을 건넨다. 주유소 직원에게 얼마를 줬을까.
ℓ당 휘발유값이 2천원을 왔다갔다하는 한국에서는 12만원 정도를 내야 했겠지만 이 운전자가 직원에게 건넨 기름값은 5.8볼리바르(Bolivar).
ℓ당 휘발유값이 고작 0.097볼리바르에 불과한 탓이다.
볼리바르 공식환율은 1달러당 4.3볼리바르로, 원화로 치면 베네수엘라의 ℓ당 휘발유값은 20∼30원 정도로 계산된다.
운전자가 낸 돈도 원화로 1천300원 수준으로 카라카스에 있는 암달러상들이 1달러를 10볼리바르 정도에 환전해주는 점을 고려하면 운전자가 주유소에 낸 돈은 500원∼600원에 불과한 셈이다.
SUV 앞에 있던 한 오토바이 주인은 4.5ℓ의 휘발유를 넣고선 직원에게 1볼리바르조차도 안되는 60센티모(0.6볼리바르)를 냈다.
암달러 시장 환율로 치면 원화로 100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생수 한 병이 공식환율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1천600원 정도 되는 만큼, 기름값이 싸도 너무 싸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주유소 직원은 기자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휘발유값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반대로 한국의 기름값을 물어보고서는 혀를 내둘렀다.
비싸도 정말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베네수엘라를 처음 찾는 한국 사람들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기름값을 보고 놀라는 일이 허다하다는 게 현지 동포들의 얘기다.
베네수엘라는 또 하나의 석유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매장량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나라다.
코트라(KOTRA) 카라카스 무역관에 따르면 베네수엘라가 향후 채굴 가능한 석유 매장량은 2천965억 배럴로 전 세계 매장량의 24.8%를 보유하고 있다.
하루 평균 236만배럴을 생산해 미국과 중국으로 각각 100만, 40만 배럴씩을 수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연간 외환소득의 95%(900억달러 상당)를 이 같은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나머지 일일 석유 생산분 중 80만배럴은 국내 수요에 쓰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을 관장하는 국영석유회사(PDSVA)는 개인에게 주유소를 위탁해 운영하고 있지만 기름을 많이 팔아도 남는 게 거의 없는 탓에 주유소마다 나랏돈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실정이다.
베네수엘라에는 확인된 석유 매장량을 포함해 전역에 약 1조3천억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것이라는 비공식 추정치가 나온 바 있다.
이는 베네수엘라가 석유만 외국에 팔아도 수 백년은 족히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다. 7일 대통령 선거에서 4선 연임을 기록한 우고 차베스(58)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배짱 외교'를 할 수 있는 배경으로 막대한 석유매장량을 꼽는 이들도 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10/10 09:3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