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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던 2005 년 겨울 나는
Rosario 라는 나름 예쁜 이름에 이끌려 이곳까지 내려 왔었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
절반 값의 숙박료나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과 깨끗한 거리 등이 마음에 들어서 2006년
크리스마스 휴가 때도 다시 이 도시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멋모르고 왔을 때하고
이때는 또 좀 느낌이 달랐다. 약간 무뚝뚝한 면이 있는 이 도시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디서 왔어요? 중국? 일본?" 이런 질문은커녕 아이스크림 가게 청년은
그저 열심히 아이스크림 떠주기 바쁘고 야채 장사 아저씨는 야채 싸주기 바쁘니 어쩐지
좀 심심해 지는 것이었다. 대신에 바가지를 씌우거나 관광객한테 잔머리 굴려 돈 뜯어내는
게 전혀 없다. 새벽에 택시를 타도 기사가 묵묵히 센타보 단위의 잔돈까지 다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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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가 내세울만한 하나의 관광 거리는
여기가 바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출생지라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체의 생가의 주인이 그 집을 내놓을 생각을 안 해서 그냥
임대 아파트로 쓰고 있단다. 온 라틴 아메리카가 체를 상품화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의아스러운 일로 그래서 그런지 결국 체의 박물관도 그의
고향인 여기 로사리오가 아닌 엉뚱하게 코르도바 시에 지어졌는데 어쨌든 생가는
그렇게 관광객들을 내쫓고 있다 한들 로사리오의 서점이나 관광 상품 가게에는
체에 관한 책이나 체의 문양을 찍은 T 셔츠나 달력 등을 부지런히 팔고
있었다.
한편 이 로사리오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파라나 강이다. 사실
내가 이 도시를 처음 점 찍었던 것도 브라질에서 봤던 파라나 강을 아르헨티나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는데, 겨울의 파라나 강은 추운 강바람 때문에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였지만 여름의 파라나 강은 이 뜨거운 평원의 도시에 한줄기
시원함을 주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로 강에서 수영을 하거나 요트를 타거나
카누를 젓는 등으로 다들 이 뜨거운 평원의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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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사리오에는 여느 라틴아메리카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그 도시를 상징하는 그 도시 출신의 음악인이 있고 그래서 그 도시에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게 당연시 되는 인물이 있는데, 로사리오의 경우는 피토
파에스 Fito Paez가 그런 경우이다. 우리나라에는 메르세데스 소사와 함께 불렀던
노래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가창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기가 막힌 피아노 실력에다 빼어난 선율,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직선적이고 비판적인 가사 등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는 존경을 받는 대표적인
라틴 락 뮤지션이다.
이런 피토 파에스는 고향 로사리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데, 그런 그가
최근에 낸 히트곡이 Eso que llevas ahi 로 이 로사리오의 파라나 강에다
바지선을 띄우고 그 위에서 피아노를 치며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 피토 파에스는 여러
가지 재주도 많아서 로사리오에 사는 세 여자들에 대한 영화 De quien es el
Portaliga? 도 직접 감독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개봉관에서 보았는데, 재치
있게 잘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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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느 로사리노들과 마찬가지로 운동도 하고 시장도
보고 길가에 꽃장수 할아버지가 파는 향기 짙은 하스민도 사서 꽂아놓는 둥 말 그대로
편히 '쉬다' 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로사리오 주변의 작은 마을 베나도 투에르토에
다녀왔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저녁에 음악회를 갈 생각이었는데 낮에 좀 일찍 나가보니
로사리오의 최 중심가인 코르도바 거리마저 이른바 '명절' 이라고 완전 문전 철시를
해버린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그 거리를 끝까지 걸어서 국기 기념 공원을 지나 파라나
강가에 도착해 유람선을 탔다.
로사리오 사람들이나 여기 친척들 만나러 온 외지인들도 딱히 갈 데가 없으니 배 안에는
가족 단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나는 아들의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로사리오에
관광 온 친절한 가족들 틈에 끼어서 이것저것 조언까지 들으며 잘 구경을 했다. 그래서
배에서 내리면서 음악회 장소인 비야 오르텐시아 Villa Hortensia 로 가려는데
도시의 북쪽에 있는 그곳에 어떻게 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냐고 한번 운을 떼 봤더니
자기들은 외지인들인지라 길을 잘 모른다며 다른 사람들한테 다시 묻는다.
그러자 아까부터 다소 뚱한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던 한 쌍의 남녀가
여전히 뚱한 태도로 말하길 ' 우리 지금 그 근처에 있는 엄마 집에 가니까 우리 차
같이 타고 가면 된다' 는 것이었다. 나는 아까부터 '쟤네들 왜 기분 나쁘게 쳐다보지?'
하며 언짢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글라스를 벗으니 남자는 꽤 잘 생긴 젊은이 상이고
나보다도 약간 나이가 많은 연상의 여자는 멕시코에서 교환 연수 직원으로 몇 달 살고
왔다고 해서 덕분에 잘생긴 운전수는 내버려 두고 여자들끼리 '키 작고 동글동글한 귀여운
멕시코 남자들' 에 관한 수다로 꽃을 피우다 비야 오르텐시아에 다다랐다.
비야 오르텐시아는 1890 년에 건축된 오래된 귀족 저택으로 ' Hortensia'
는 여주인의 성인데 이 곳의 앞 뜰에선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리엘 라미레스의 '
미사 크리오야 Misa Criolla (1964)' 가 연주된다. 토착의 미사 라는
뜻의 Misa Criolla 는 무슨 국경일이나 행사 등이 있으면 어김없이 연주되는
아르헨티나의 국민 미사곡이나 마찬가지로 안데스 민속 음악의 선율과 리듬이 바탕이 되고
있고 가사도 라틴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불리며 반주 또한 께나, 삼포나 같은 안데스
악기들로 한다. 그런데 이 국민 미사곡의 작곡가 아리엘 라미레스가 바로 이 산타 페
주 출신이기 때문에 로사리오에선 벌써 11 년째 시 차원에서 크리스마스 기념 행사로
무료 연주회를 이 비야 오르텐시아에서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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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오르텐시아엔 사람이 바글바글하여 늦게 온 사람들은
입장을 아예 포기하고 간이 의자를 들고 와 공연장 밖의 공원에 앉아 음악만 듣는데
일찍 도착해 줄을 선 덕에 앞줄에 앉게 된 내 옆에는 각자 따로 온 두 아줌마가 앉더니
둘이 서로 친한 사람들 마냥 신나게 떠들기 시작한다. 대충 얘기를 들어본즉슨 어제
크리스마스 만찬 끝내고 오늘 오후쯤 딸이니 아들이니 가족들 다 떠나 보내고 귀찮은
(?) 남편도 TV 나 보라고 집에 내버려 둔 채 이제 저녁에 나만의 크리스마스 시간을
즐기자고 그렇게 혼자 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둘 중 한 명이 우연히 친구를 만나 다른 자리로 옮겨 가는 바람에 혼자
남은 옆 아줌마는 이제 입이 심심하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그 아줌마를 위해
자원 봉사라도 하듯 떠듬떠듬 몇 마디 물어봤더니 한마디 질문을 하면 열 마디 스무
마디가 나온다. 무슨 가이드 마냥 이 비야 오르텐시아와 이 음악회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더니 자기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1 년을 정리하는 하나의 개인적인 행사로서
이 음악회를 꼭 찾아온다고 했다. 그것은 비단 이 아줌마뿐만이 아니어서 앞에 앉은
할머니도 매년 이 음악회에 오셨는지 올해의 악기 편성이 작년과 어떻게 다른지 옆의
손자 뻘 되는 청년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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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물론 이 곡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곡자의
고향에 와서 이렇게 크리스마스에 함께 듣는다는 게 내 딴에 또 너무나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고 직접 보는 연주와 귀로 듣는 CD 의 차이도
실감했다. CD 로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연주를 보니 반주를 안데스
악기 단 몇 개로 하는데도 합창단의 반주로 모자람이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합창단의 연주 전에 본 미사곡에서 솔리스트를 할 가수Luis Baretti
가 목도 풀 겸 아르헨티나 깐시온의 전설 아타우아파 유팡기의 곡들을 불러주었는데
사람들이 다 따라 흥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또 연주자들이 다 건물로 들어가
입장을 준비하고 있을 때는 레온 히에코의 명곡 ' Solo le pido
a Dios ' 음반을 틀어주었는데 그걸 틀어주니 또 모두가 다 따라 부른다,
나도 당연히 한 마음으로 따라 불렀고... 내가 바른 삶을 살아가길 신께
요청한다는 그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부를 때, 나와 그 자리의 모든 로사리오
시민들 사이엔 아무런 벽도 없었고 그대로 '한마음' 이 될 수 있었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여기서는 우리나라 설 명절이나 마찬가지라 나 같은 이방인으로서는
조금 마음이 언짢아 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때면 파티니 망년회니 해서
시끄러운 멕시코시티를 떠나 꼭 여행을 가는데 여행지에서도 다들 가족과 함께인
현지인들을 보면서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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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로사리오에서 이 음악회를 함께 하면서 마지막에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촛불을 켜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을 개사한 '평화의 밤'이란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올 한 해를 보낼 때, 그리고 옆자리의 아줌마와 따뜻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때 이렇게 행복했던 크리스마스가 정말 얼마만인가 싶었다. 지금도 아리엘
라미레스의 Misa Criolla 를 들을 때면 이방인을 행복하게 해준 로사리오의
사람들이 생각나고, 언젠가는 다시 가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요동친다. Gracias
a los rosar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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