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42:43 조회수 : 1,660
국가 : 멕시코


 

정혜주(부산외국어대 중남미지역원)

  

   마야문명은 문자가 체계적으로 발달한 몇몇 안되는 고대문명 중의 하나이다. 그에 따라 마야문명은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이사빠(Izapa, Chiapas)에 남겨진 돌에 새겨진 그림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유적지에 남겨진 비문들, 그리고 채색토기에 남겨진 이야기들, 그리고 마침내 책으로 제작한 고문서들을 남겼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이러한 기록들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 조상과 비석들을 파괴하고 고문서를 불에 태웠다. 그러나 마야사람들은 기록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로 배운 알파벳을 이용하여 그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남겼다. 유까딴에서는 『칠람발람(El libro de los libros de Chilam Balam)』, 깍치껠(Kaqchikel)사람들에게는 『솔랄라의 기억(La Memoria de Solalá́)』, 그리고 끼체(K'iche)사람들에게는 그 유명한 『뽀뽈부(Popol Vuh)』가 있다.

   과테말라의 치치까스떼난고(Chichicastenango)는 뽀뽈부가 발견된 곳이다. 7월의 어느 일요일 새벽, 현지 교민 김홍찬씨의 차에 올라 희미하게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뽀뽈부'를 생각하며 달렸다. 그러나 1시간쯤 달려서 도착한 곳은 이심체(Iximche, Chimaltenango)였다. "아차, 여기가 마지막 마야왕국 중의 하나가 있었던 곳이구나."

   이심체 유적의 입구에서 뜻밖의 기록을 만났다. 상형문자가 씌인 비석이 서 있었던 것이다. 비석의 내용은 창조의 날부터 깍치껠 왕국 마지막 왕의 죽음, 그리고 식민지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른 역사를 간략히 기록한 것이었다. 기록된 마지막 날짜는 2012년 12월 21일이었다. 마야달력의 가장 긴 주기인 13박뚠이 끝나는 날이자 새로운 박뚠이 시작하는 날이다! 즉 마야 상형문자로 쓰인 마지막 기록이지만, 마야문자를 되살리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이심체의 입구, 왼쪽에 2012년 12월 21일에 세워진 비석이 보인다.

   길 양쪽으로 펼펴지던 옥수수밭이 사라진 사이에 구름을 걸고 우뚝 솟은 산들이 나타나더니 문득 광활하게 펼쳐지는 물이 보인다.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아띠뜰란(Atitlan) 호수이다. 아띠뜰란의 주위에서도 깍치껠 마야의 역사가 수없이 세워지고 스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사람들은 뜻밖에도 스페인사람들이 들어온 이후의 역사를 남겼다. 『솔랄라의 기억』은 나라를 잃어버린 마야사람들의 시각으로 식민지마야의 역사를 담은,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기록이다. 아띨뜰란 호수는 회색의 하늘아래 물결이 높이 출렁이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에 마침내 『뽀뽈부』의 마을, 치치까스떼난고에 닿았다. 마야세계가 창조되었던 때부터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책이 발견된 마을답게 산또 또마스(Santo Tomá́s) 성당 앞에서는 불을 지피고 향을 피우며 기도를 하는 마야사람들이 가득했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또 다른 작은 성당 앞에도 불과 향을 피우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중앙의 광장에는 천막을 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화려한 채색의 마야 직물로 만든 옷, 가방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치첸이쯔아 또는 띠깔 등의 화려한 유적으로 알고 있었던 마야문화는 아니지만, 그들이 스페인의 후예라고는 더욱 말할 수 없는 어색한 조합을 이루고 있는 문화였다.

치치까스떼난고의 시장, 현란하게 수가 놓인 직물들과 화려한 색깔의 가방들.

  이 어색한 조합은 이곳의 가장 중요한 성지 빠스꾸알 아바흐(Pascual Abaj)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바흐(Abaj)'는 마야어로 '돌'이라는 뜻이다, 빠스꾸알은 스페인어 이름이고. 이름에서부터 어색한 어우러짐이 느껴졌다. 십자가와 마야의 유물들이 뒤섞여 적당히 놓여 있는 초라한 박물관에는 정체불명의 신, 막시몬(Maximon)이 술 병과 콜라 깡통, 그리고 돈을 앞에 놓고 있었고, 그 옆에는 불을 들고 있는 마야사람이 조각된 자그마한 비석이 있다. 박물관을 나와 오솔길을 한참 올라가니 산 위쪽에서 연기가 퍼지고 있는 사이로 십자가들이 보였다. 가운데에 불을 지피는 둥근 제단이 있고, 네 방향에 작은 십자가의 제단이 각각 세워져 있다. 그 중에 하나, 동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작은 석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빠스꾸알 아바흐였다. 기도를 드리는 향불이 앞에 있고 주위와 석상이 검게 그을린 것으로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의례를 했던 모양이다. 이는 마야, 더 크게는 메소아메리카문명의 네 방위 의례의 모습이다. 네 방위를 다스리는 자, 그가 마야사람들이 살도록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신들의 중심인 마야의 왕이며, 최초의 마야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 네 방위의 신들이 십자가로 상징되고 있는 것이다.

사방으로 놓여있는 제단(위)과 빠스꾸알 아바흐(아래)

   어두워지는 산을 내려와 치치까스떼난고에 들어서니 거리 한쪽의 교회에서 크게 음악이 울리고 있다. 그리고 "성경그룹, 경계에 선 세대(Club Biblico, Generacion Fronteras)"라는 모임을 마친 청년들이 교회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산또 또마스성당 계단에서 마야사람이 불을 붙이고 있다.
향을 손에 들고 타오르는 불을 보며 기도하고 있는 마야 여인들(아래)

 

Quick Menu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