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10 09:38:32 | 조회수 : 1,565 |
국가 : 페루 | ||
차경미(중남미지역원)
해발 3400미터에 위치한 잉카제국의 심장 쿠스코! 하늘이 좀 더 가까워서일까? 마치 인사라도 하듯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위로 뭉게구름 떼가 몰려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고산이 주는 압박감도 잠시일 뿐, 기억 저편에 밀어두었던 오래된 추억들이 되살아나 쿠스코의 모든 것이 어제처럼 친숙하다.
쿠스코 중앙광장 성당
20년 만에 다시 찾은 도시는 여전히 중세 유럽의 늠름한 자태로 웅장함을 과시한다. 시내에 들어서자 백인 문명의 우월을 상징이라도 하듯 외형이 화려하게 장식된 건축물들이 시선 안에 가득하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인간과 신의 교감을 통해 공간적 조화를 이루었던 잉카의 모습은 유럽을 모방하여 세워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속에 흔적으로 남아 아픈 과거를 겸손하게 들려준다.
잉카의 후손
거리를 오가는 잉카 후손들의 분주 한 일상은 ‘라틴’과 ‘아메리카’ 공존의 역사를 마치 기록처럼 보여준다. 마추픽추로 가는 관문이자 거리 곳곳에 저장되어 있는 역사만으로도 여행자의 발길은 쿠스코에 머문다. 잉카제국의 중심지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혹독한 파괴의 역사를 감내해야만 했다. 잉카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백인 문명의 우월성이 가시적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정복자들은 더욱 웅장하고 더욱 화려한 건축물을 거리 곳곳에 건설했다. 격자형의 통일감을 유지하고 있는 도로 그리고 법원과 의회 등 사회통제와 권력을 상징하는 건물이 즐비한 광장은 다른 라틴아메리카의 도시와 다를 바 없다. 태양과 자연을 숭배하던 잉카의 도시는 식민권력의 특권 과 부를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재편되어 여전히 지금도 여러 겹의 시간을 품고 있다.
쿠스코의 거리
광장을 벗어나 바쁜 걸음 재촉하며 나는 여행자들로 혼잡한 코리칸차 신전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태양과 대지의 신을 모시던 신전은 파괴와 충돌의 역사적 상흔이 기록처럼 남아있다. 정복자들의 신을 찬양하는 수도원으로 재건된 신전은 새로운 종교관이 반영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둘러 쌓여있다.
수도원으로 재건된 코리칸차 신전
코리칸차 신전 내부 잉카벽돌
토착문화와 관계없는 화려한 석조물에 갇힌 신전 내부에 들어서자 놀랍도록 정교한 잉카 의 벽돌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잉카인의 세계관이 암호로 새겨져 있는 황금 판은 고대인의 심오한 우주관을 감동으로 전해준다. 조상의 세계관을 온전히 복원 할 수도 그리고 이해 할 수도 없는 현대후손들이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강렬하고 섬세한 태양빛의 충돌과 어우러짐을 작품으로 표현하여 신전의 한쪽 벽면을 장식했다. 조상의 유산에 닿으려는 후손들의 노력은 역사란 그저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임을 되새기게 한다.
코리칸차 신전내부에 장식된 잉카인의 세계관
쿠스코를 뒤로하고 잉카레일의 출발역인 우르밤바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러 겹의 시간이 겹쳐있는 마추픽추에 한발 더 다가선다. 길고 고단한 여정이다. 하지만 자연과 신 그리고 인간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 마추픽추로 가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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