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10 09:37:58 | 조회수 : 1,747 |
국가 : 과테말라 | ||
최영민(마산창원노동자풍물패연합)
치치카스테낭고는 과테말라 수도에서 북서부 방향으로 약 145km 떨어진 곳에, 22개의 주(州)가운데 하나인 키체주(州) 남부, 해발 1,965m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마야인의 후손이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는 곳이라고 해서 솔깃한 마음으로 가보기로 결심했다.
[사진 1] 치치카스테낭고의 도심 주거지 전경
이곳 치치카스테낭고에서는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대규모 전통 수공예품을 파는 가장 큰 마야 원주민 전통시장 열린다. 과테말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라면 이곳을 들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입소문도 제법 나있는 곳이다. 나 또한 과테말라가 처음이기도 하고 시장 구경, 사람 구경, 그리고 기념품도 사고 싶은 마음에 목요일 아침 새벽 후배가 수소문 하여 예약을 해둔 여행사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친절하게도 나를 집 앞까지 모셔(?)오는 바람에 나는 후배의 배웅을 받으며 여행길에 올랐다. 혼자 하는 여행인데다가 언어 소통은 아주 간단한 거 빼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무조건 “몸으로 말해요”라는 바디 랭귀지라는 강력한 무기와 ‘눈치’와 ‘감’만을 믿고 오른 홀로 나서기였다. 그러고 보면 이 후배 녀석은 나의 생존 능력을 너무 과도(?)하게 믿는 거 같기도 하다. 내가 집 밖에 산책을 잠시 나가는 것도 불안에 하던 녀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나를 타지로 혼자 보내버린 것이다!! 집 밖 가벼운 산책에도 불안전한 치안 상태로 전전긍긍해 하던 녀석의 모습을 기억해 볼 때 이 같은 하드 트레이닝을 선택한 후배의 엉뚱함이란 가히 연구 대상이다. 여하튼 과테말라 시티를 출발한 승합차는 안티구아에서 여행객을 꽉 채우고 3시간 정도 후에 치치카스테낭고에 도착했다.
[사진 2] 치치카스테낭고 성당 La Iglesia de la Capilla del Calvario del Señor Sepultado
눈치껏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니 서로 마주보며 위치한 두 개의 소박한 하얀 성당들 사이의 공간에 시장이 열려져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하다 둘러보다 시장 앞 성당 계단 군데군데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곳에 올라가면 시장을 내려다 볼 수 있겠다 싶어서 냉큼 올라가 보니 그 성당 이름이 산또 또마스성당(Iglesia de Santo Tomás)이란다.
[사진 3] 산토 토마스 성당 전경
[사진 4] 산토 토마스 성당에서 바라본 시장풍경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꽃 무더기들, 성당 앞에 뭔가 태워 솟아나는 흰 연기, 또 한편에선 연기 나는 깡통을 흔들고 있는 원주민... 이해가 안 되서 드는 생각 "저 꽃은 누가 사나, 뭐에 쓸라꼬? 왜 성당 앞에서 뭘 태우고 그려? 저 아재는 뭐하는 짓 인겨? 쥐불놀이 하는가?" 속 시원하게 물어볼 수 없으니 사람 사는 세상에선 손짓 발짓으로 웬만하면 다 통한다는 내 소신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쓸모없음을 ‘처절히’ 확인해야 했다. (나중에야 그곳이 마야 신전이 있었던 곳이고 신에게 바치기 위한 꽃을 파는 것이고, 제물을 태워 신에게 올린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사진 5] 산토 토마스 성당 앞에서 꽃을 파는 모습
[사진 6] 산토 토마스 성당 앞에서 제를 올리는 모습
성당 계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어둑한 성당 안에서도 제단에 촛불을 켜고 무릎 꿇어 간절히 기도하는 원주민들을 보며, 우리 촛불 밝히고 음식차려 제를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카톨릭과 원주민 전통의식이 같이 섞여 있는 것이겠지. 침략세력의 탄압에 전통의식을 지키고 유지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구나...” 라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려본다. 마야인의 전통의식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나는 다시 시장골목으로 향했다. 원주민들이 이고 지고 와서 펼친 시장통은 한마디로 만물상, 음식에, 곡물, 가축, 채소, 과일, 공예품, 수예품, 그림, 농기구에 생활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거기다가 알록달록 화려한 색동의 전통의상을 입고 온 원주민과 여행객이 모여 북적북적. 전통의상을 입은 꼬마소녀들이나 아가씨들을 보면 “참 곱네” 소리가 절로 난다.
[사진 7] 치치카스테낭고 시장 풍경
우리나라 오일장을 떠올리게 하는 골목들을 돌아보고 다채롭고 강렬한 색감을 자랑하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화려한 색실로 직접 짰다는 스카프, 옷, 가방, 모자 등등 예쁜 수예품, 공예품들이 눈길을 끌고, 관심을 보이는 여행객에게 호객행위로 시끌벅적. 시장 난전이 가족 생계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어린 소년 소녀 꼬마 행상들도 제법 많다. 맑은 눈을 하고 물건을 파는 꼬마행상들하곤 가격흥정하기가 어렵지만, 대부분 물건을 고르면서 가격흥정은 자동으로 이뤄진다.(결과는 각자의 능력!!) 시장이 파할 무렵 마주친 원주민행상 아지매가 들이댄 장식 식탁보에 아무 생각없이 얼마냐 물었을 뿐인데, 끈질기게 따라온 정성으로 반값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싸게 사고도 즐겁지 않은 이 감정. 서로의 생활과 생계를 이어주는 원주민 시장이 맞겠지만 여행객에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상품 판매시장이 되어간다는 느낌, 그들의 터전과 문화를 대를 이어 지키고 살아온 원주민들이 스쳐지나가는 이들에게 전통이라는 이름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활, 상품으로의 전통? 웬지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든다.
[사진 8] 치치카스테낭고 시장 풍경
한차례 시장을 둘러보고 길거리 식당에서 팥죽처럼 보이는 것과 또르띠아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고, 북적이는 시장을 벗어나 조용한 영혼의 공간인 마을 묘지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사진 9] 치치카스테낭고 시장 밖 마을 전경
[사진 10] 치치카스테낭고 묘지공원(Cementerio de Chichicastenango)
시장을 나와 언덕 아래로 길을 따라 찾아가다 제법 멀지 싶은 감에 지나가는 뚝뚝이를 잡아탔다. 아~!! 그런데 걸어와도 충분했던 짧은 거리!! 순간 요금 깎았다고 좋아하던 내 눈치와 감을 후회할 도리 밖에 없다. 마을 언덕 아래 위치한 마을묘지는 다양한 모양으로 밝고 환하게 색칠되어 죽은 자 영혼의 또 다른 집 인 것 같다는 생각, 여기서도 꽃과 음식을 태우는 의식이 이루어지고 가족 소풍 왔나 싶은 분위기에 우리가 보통 느끼는 삭막하고 으스스한 공동묘지의 느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할 수 있는 묘지공원이었다. 복잡한 시장통보단 이곳이 더 편안함을 느끼니 내 취향이 독특한 것인가? 스쳐지나가는 여행객 일뿐인 내가 이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삶을 알겠냐마는 공존이라는 말이 머리에 떠돈다. 자신들의 전통의식과 가톨릭, 전통적인 생활과 생계를 위해 전통을 파는 상품시장, 삶과 죽음이 같이 공존하는 곳... 긴 세월 속에 살아남기 위해 점차 퇴색되고 변질되었더라도 자신들의 문화와 공동체 삶을 지켜온 이들의 삶이 존중되고 사람 사는 세상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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