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 작성일 : 2014-07-23 11:33:31 | 조회수 : 1,386 |
국가 : 에콰도르 | 언어 : 한국어 | |
원문링크 : http://www.emerics.org/lac/column_interview/column.do?action=detail&brdctsno=143212 | ||
구분 : 정치 | ||
출처 : emerics | ||
발행일 : 2014-07-21 | ||
일반적으로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를 묶어 자본주의에 대해 급진적 변혁을 시도하는 급진좌파 국가들로 분류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소개하려고 한다. 코레아 대통령은 2006년에 집권했다. 그가 내건 정치적 구호는 시민을 위하고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혁명”이다. 차베스 혁명의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것 보다 훨씬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준다. 그러나 그 핵심 이데올로기는 에콰도르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부패한 지배계급 즉, 과두그룹(Oligarquia)을 반대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가 집권할 시기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가 그 취약함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였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성향과 반신자유주의 성향의 정책들이 집행되었다. 예를 들어, 만타 미군기지의 폐쇄, 미국대사관의 무관 추방, 석유 다국적 기업 쉐브론과의 갈등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이런 반미적인 정책들은 같은 시기 옆 나라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의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본격화하는 국면과 맞물려 더욱 코레아 정부를 좌파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코레아 정부의 정책들은 결코 ‘21세기 사회주의’적이지 않고 국가 발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성장 일변도만을 질주하는 우파정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에콰도르 역사상 수 십 년 만에 최고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부패가 줄어들었고, 소득 재분배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빈곤율을 저하시켰고 중산층을 두텁게 했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코레아 정부는 2008년 헌법을 새롭게 개정하여 원주민 고유의 “좋은 삶”철학을 헌법에 명기하였다. 지나친 성장일변도 정책으로 인한 빈부갈등, 자연생태계 파괴를 거부한 것이다. 이 같은 패러다임 변화의 예를 에콰도르 동부 아마존 강 부근의 “야수니(Yasuni) 국립공원”석유 개발 유보 프로젝트 정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엄청난 양의 석유 부존이 확인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바이오 다양성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이 지역의 생물다양성 보존, 이산화탄소 감소 및 원주민 거주 지역의 보존을 위해 코레아 정부는 2007년 석유채취를 중단하는 대신 약 50% 정도 발생하는 예상수익의 손실 부분을 국내외의 자발적인 펀드로 충당하려고 UN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런 정책방향은 UN의 “새천년 개발목표”와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2008년부터 이 프로젝트가 착수되었으나 유엔의 협조가 실질적으로 잘 진전되지 않자, 코레아 정부는 직접적으로 외국 자본의 기부를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도 큰 진전이 없자 코레아 정부는 2011년말 까지 자금이 충분히 모아지지 않을 경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야수니 일부 지역의 석유시추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목표 금액이 모아지고 2012년에 기부를 철회했던 독일이 참여하게 되었으며 코레아 정부는 국내외의 활발한 홍보활동을 통해 프로젝트 시행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 프로젝트는 실패하여 2013년 8월 코레아 정부는 상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환경오염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철학 하에 석유시추 사업을 실시하려고 하고 있다. 즉 대규모의 개발을 피하고 있으며 야수니 국립공원 지역 면적의 약 0.1%의 지역에서만 석유시추를 추진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약 30년 동안 매년 6억 불의 수입을 얻을 것이고 에콰도르 정부는 여기서 나오는 사업 수익으로 원주민에게 상수도를 설치하여 주민 복지를 지원하는 사회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상적인 생태주의를 내세우며 주민 삶의 질 확보와 사회정의를 위해 국제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현 단계에서는 유럽의 진보적인 국가들도 이런 이상적 프로젝트에의 협력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코레아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에콰도르는 산유국으로서 베네수엘라만큼은 아니지만 전체 국가 수입의 40%를 석유가 차지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코레아 정부는 현재 단기적으로는 국가발전과 경제발전을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생태환경의 적극적 보존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정치적 방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데올로기적으로 에콰도르의 2008년에 개정된 새로운 헌법은 성장주의 또는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에 대해 새롭고 대안적인 비전과 체제 즉, “복수국민국가”와 “좋은 삶”(수막 카우사이) 철학을 내장하고 있어 라틴아메리카와 전 세계의 진보적 또는 좌파적 학자들에게 코레아의 정치적 비전을 ‘좌파’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코레아 정부의 정책적 역점은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같이 좋은 의미의 포퓰리즘으로 해석한다하더라도 포퓰리즘적 경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정치적 수단을 통한 민족주의, 국가주의로 해석되는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진보진영 학자들 중 최고의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보아벤투라 데 소우사 산토스에 의하면 코레아 정부의 비전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 또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통한 생태사회의 실천 등이다. 코레아 정부는 위 비전을 장기적 목표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현실의 최대 정치 목표는 소득재분배 정책의 시행을 통한 빈곤 퇴치와 시민의 중산층화를 통한 에콰도르의 근대화 또는 성장주의 정책을 통한 국가발전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정치적 괴리의 출현은 불가피하게 당위적이고 설득력 있는 생태사회의 미래 비전과 일반 시민 또는 대중의 현실적 욕망에 기대는 현실 정치 지형의 전개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마디로 평가하면 현재 코레아 정부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 좌파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는 약간 가혹하게 평가한다면 라틴아메리카 정부가 보여줄 수 있는 신자유주의 퇴조에 대한 포스트신자유주의적 대응으로 호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내각 구성에 있어 시간이 갈수록 우파에 가까운 기업 친화적 엘리트를 장관에 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코레아 정부의 “시민혁명”정치적 구호는 퇴색하고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우세한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정치 지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아벤투라 데 소우사 산토스는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코레아 정부의 애매한 정치적 실천은 에콰도르 시민들의 변혁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잃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2014년 2월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가동맹”(Alianza Pais) 운동은 의석을 많이 잃었다. 정부 지지와 관련하여 에콰도르의 정치 지형분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적 행위자가 원주민 운동세력이다.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단체인 CONAIE는 1986년에 설립되었다.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과 다른 나라(예를 들어, 멕시코)의 그것과 비교하면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전자는 원주민들이 스페인어를 열심히 배워 ‘시민’이 되고 이를 통해 메스티소화 또는 비원주민화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원주민들은 정부가 원주민의 고유한 제도, 교육, 문화를 인정하기를 요구하였다. 이런 점이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이 민주주의적 지향점을 분명히 가지고 단순한 정체성 지키기에 머물지 않고 에콰도르의 진보정치를 견인할 수 있게 만든 힘이었다. 그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 바로 1990년 6월의 거리행진, 고속도로 점거, 상수도 파괴와 같은 대규모 원주민의 물리적 봉기였다. 전국적으로 수 만 명이 가담했으며 핵심적 요구는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토지분배였다. 정치적 헤게모니가 커진 CONAIE는 1996년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회운동세력과 연대하여 “파차쿠틱”당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98년의 대선에서 국회의석 76석으로 제 4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02년에 CONAIE는 정치적 동맹을 맺은 구티에레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은 가속되었고 집권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CONAIE 즉 원주민 운동단체가 정치적으로는 힘을 크게 키웠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된 이유 또는 맥락은 1990년대 초반 과테말라의 원주민인 리고베르타 멘추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세계은행은 다양한 원주민 지역단위에서 “빈곤과의 투쟁”을 내세운 개발 프로젝트를 들고 원주민을 찾아가는 상황이 전개 되었었다. 이런 흐름의 중심인 1990년대 중반, 이들 에콰도르 원주민들은 그 ‘개발’의 유혹으로 그들을 시장의 프레임에 포섭되도록 만드는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의 거대한 틀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지방분권화가 적극 이루어져 원주민의 정치적 헤게모니는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 과정의 결과 원주민 운동의 지도자들은 관료화되고 원주민 운동의 풀뿌리 조직은 서서히 약화되어 갔다. 더 중요한 것은 잦은 대통령의 교체 등 극심한 정치적 혼란의 중심에 원주민 운동이 만든 “파차쿠틱”당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에너지가 소진되어 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위기가 지속되면서 원주민 운동 내부에 분열이 일어났다. 이런 정치적 위축은 2006년 대선에서 CONAIE가 코레아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지지하고 패배하는 정치적 패착을 두게 만들었다. 그러나 코레아 정부는 CONAIE 원주민들의 줄기찬 요구를 받아들여 2008년 “복수국민 건설”을 헌법에까지 구현하게 된다. 이런 선언으로 코레아 정부는 새로운 생태주의와 탈성장주의 철학을 헌법에까지 수용하였지만 실제 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는 새로운 포퓰리즘 정치가 가지는 한계 때문에 개발 패러다임으로 서로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20 세기 초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체험에서 본 것과 같이 좌파가 가지는 개발 또는 성장에 대한 국가주의적 원초적 지향의 흐름을 보인다. 구체적인 예로서, 코레아 정부의 대규모 노천 광산 개발은 결국 원주민 운동세력이 격렬하게 저항하게 만들었고 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코레아 정부와 원주민 운동단체는 시간이 갈수록 대립하고 있다. 결국, 코레아 정부가 이런 정치적 위기를 만나게 된 이유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 또는 그 후계자인 마두로 정부와 달리 자본주의에 대해 중장기적으로라도 극복하려는 정치적 의지 대신 유화적인 방향의 “사회적 자본주의”모델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코레아는 수사적으로 그리고 상당부분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깊이 인식하고 급진적 정치, 경제 개혁을 추진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베네수엘라 집권세력처럼 자본주의 모델을 극복하려는 비전을 갖지 못해 시간이 흐를수록 “좌파”의 모델이 아닌 “중도좌파”의 모델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안태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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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칼럼_20140708]안태환_에콰도르의+코레아+정부는+좌파인가+중도좌파인가.pdf [5건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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