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4-03-22 16:31:54 조회수 : 1,505
국가 : 멕시코 언어 : 한국어
원문링크 : http://www.emerics.org/lac/column_interview/column.do?action=detail&brdctsno=133792
원문요약 : KIEP 신흥정보 EMERICs 종합정보 중남미에 실린 컬럼
구분 : 문화
출처 : 신흥지역정보 EMERICs 종합지식포털
발행일 : 2014.03.21


박호진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한류의 전 세계적인 확산은 학술적인 연구는 물론 대중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우리가 접하고 있는 소식이다. 중남미학 연구자로서 필자는 한류에 관한 연구는 한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 분야라 생각되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적이 없고, 국내의 중남미학 연구자들이 쓴 관련 논문을 몇 편 읽어 본 기억이 있을 뿐이다. 다만 필자가 연구하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가 불교에 대해 일찌감치 관심을 보여 -적어도 1920년대부터 - 이에 대한 박사논문을 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과에서 쓴 적이 있는데, 이는 어떤 면에서 아이로니컬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보르헤스는 동양을 동경하여 불교를 연구하고, 보르헤스의 세계적인 문학성에 매료된 필자는 멕시코로 건너가 보르헤스를 연구하였는데, 어떻게 보면 필자는 자기 자신의 문화의 가치를 알기 위해 해외로 건너간 셈이라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위대한 작가 보르헤스는 전 세계를 돌고 돌아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얼굴이라고 간파한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필자가 멕시코에 유학한 것이 무의미하다거나 보르헤스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써의 동양에 대한 동경이 무의미 하다고 할 수 없다. 타국을 방문하고, 여행하고, 동경하고, 여행함으로써 우리는 외국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그들의 문화 또한 이해 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며, 이러한 여정과 연구가 오늘날 세계화시대의 화두인 문화 상호간의 소통(Intercultural Comunication)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에 숭산 스님 및 기타 선사들에 의해 한국 불교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졌지만 중남미에서 한국 불교의 존재여부는 금시초문이기 쉽다. 필자는 불과 몇 년 전에야 아르헨티나에 한마음 선원이 있으며, 스페인어로 번역된 대행 스님의 저서가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우리 한국인이 아닌 중남미 인에 의한 한국 불교에 대한 연구가 있음을 확인하고 적잖이 놀랐다. 즉 중남미 인들이 중남미 문화의 일부로써, 중남미내의 소수종교로써의 한국불교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학위를 취득할 때인 2008년에도 멕시코 시티에는 한인 교민을 위한 절이 있었고, 한국 스님이 아닌 외국인이 개인 법당을 마련하여 선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교세의 미미함으로 대단하거나 학술적인 연구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 한국불교에 대한 논문이 나올 정도라면 멕시코의 한국불교의 상황도 연구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2014년 2월1일 멕시코 시티행 비행기를 탔다. 멕시코 시티에 도착하여 멕시코 시내 중심에 있는 관음사를 찾아가 주재하고 계시는 성현 비구 스님을 뵙고 또 멕시코 불교 신도회 김재현 회장을 만났다. 그러나 두 분이 언급하는 멕시코 교민 신도 숫자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많아야 20명, 적을 때는 10명 정도가 일요 법회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멕시코 교민을 만 여 명 정도로 추산 한다면, 교민 수 비례 한인 불자 숫자는 0.02%에 못 미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성현 스님은 외국인이 주재하는 법당에 더 많은 멕시코 신자가 있을 것이라고 멕시코 시티에 있는 두 개의 한국 불교 법당을 소개하였다. 첫 번째 법당은 멕시코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따힌”거리에 있는 법당으로 법당의 주지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멕시코 사람이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 사람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처음으로 숭산 선사의 제자를 만나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하며 멕시코에 개인 법당을 연 것은 2005년이라고 하였다. 수요법회에 신도들이 좀 있을 것이라 하여 법회에 참석하였으나 참석한 신도 수는 주지역할을 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인 파볼(Pavol)을 비롯하여 다섯에 불과하였다. 마지막으로 파볼의 법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한인 법당을 찾아갔는데 그 법당의 주지는 멕시코 인이었고 도안이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한국의 사무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출가하였다고 한다. 역시 수요법회에서 그를 인터뷰하였는데 수요 법회에 참석한 신도 수는 10명을 넘지 않아 사실상은 학문적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이들 소수 불자들의 예불 드리는 태도의 엄중함, 그리고 한국어를 소리 나는 데로 스페인어로 적어 놓고 외는 염불  발성의 정확도와 한국식 염불 장단박자의 정확한 모방은 필자를 놀라게 하였다. 필자가 가톨릭교도인지라 학자로서의 학문적 객관성을 유지하며 바라보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낯선 감정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비록 TV를 통해 외국 스님들이 영어로 염불을 외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미국보다 -지리적으로야 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직통항로의 부재로 아프리카만큼 우리에게 멀리 떨어진 외지라고 느껴지는 멕시코 시티에서“관세음 보살”,“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줄줄이 외는 멕시코 인들을 볼 때 그 묘한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흡사 그 느낌은 멕시코 밀림의 마야족이 주기도문을 마야어로 외울 때의 느낌처럼 때로는 너무 낯설어서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감동적이기도 한 상반적인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아마 필자가 불교도였다면 그 느낌은 두려움보다 강렬한 기쁨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도안스님의 수요법회 참가인원으로는 멕시코의 한국 불교를 연구하기 어려워 스님의 권고대로 일요예불에 다시 참석하였다. 아침 10시에 예불이 시작되었는데 10시 반 쯤 되자 30여명의 신도가 모였고 오후가 되자 참선법을 배우려는 멕시코인 10여명이 더 와 당일 참가인원은 사오십 명에 이르렀다. 도안스님의 법당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이 인원으로도 법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국내에서나 또는 미국에서 신도 50여명이 모이는 종교모임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중남미 교민 사회에서 신도 50여명이 모이는 종교 모임은 꽤 규모가 큰 셈이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지만 필자가 1990년대에 멕시코 한인 성당에 다닐 때만 해도 주일 예배에 신자가 50여명이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중남미 한인 교민사회에 많이 퍼져있는 기독교의 경우도 작은 교회들이 난립하면서 신도들이 50여명에 이르는 교회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한인 불교 법회는 아니지만, 멕시코 인들이 한국 불교를 전도하는 법당에 50여명이 모였다는 것은 중남미 한국 불교 포교사가 아닌 한국 문화의 유포라는 한국학적인 관점에서 볼지라도 의미가 있다.

그림   멕시코 불자들의 참선하는 모습

그림   도안 스님


그리고 숫자보다 필자를 더 감동하게 한 것은 이들 멕시코 인들의 진지한 자세였다. 그 진지함은 국내 불교 법회나 기독교 모임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함을 넘어서고 있었다. 필자가 국내 종교 모임보다 더 진지하다고 한 것은 이들 멕시코 인들이 국내 불교, 기독교, 가톨릭교도들이 가지는 전통의 무게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자 법당을 찾기 때문이다. 즉, 친목도모나 개인의 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풀고자 이 법당에 모인 것이다. 물론 필자가 이들에게 배포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야 이들이 한국 불교 법당을 찾은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있겠지만, 일견하기에 이들이 보여주는 성실함과 진실 됨은 필자가 비록 가톨릭임에도 불구하고 경건함을 느끼게 만들고 필자로 하여금 학자로서 진리탐구라는 근본적인 목표는 잊고 학문적인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는가 하는 자문을 하게 만들었다.

국내 기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해외에서 한국 불교의 전파는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다. 한국문화와 전통의 전파라는 차원에서는 달갑지만, 이단숭배라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부가 국내에서 템플 스테이를 장려할 때 기독교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과 같은 이유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멕시코에는 멕시코 주재 한국 대사관이 설립한 문화원이 있기 전에 교민들이 사재를 털어 만든 두 개의 한인 문화원이 멕시코 시티와 멕시코의 또 다른 교육도시 과달라하라에 있었는데, 이들 설립자 모두가 불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남미에서, 특히 멕시코에서 불교 대비 한인 기독교의 활동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그럼에도 한 줌도 안 되는 한인 불자 중의 일부가 한인 문화원을 열었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지만, 우연이 아닌 다른 논리적 설명을 찾는다면 불교와 한국 전통문화와의 관련성 때문 일 것이다.

멕시코에서 50 여명의 멕시코 신도가 있다는 사실은 멕시코에 수많은 한류 스타 팬클럽이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류 스타라는 것이 사실, 그 주인공들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들이 추는 춤, 노래, 영화가 한국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적 색깔을 덧입혔다 할지라도 그 근원은 서양음악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고, 싸이 외의 모든 한류 스타들의 인기의 근간에는 보편화된 서양문화라는 코드가 깔려 있다. 본질적으로 세계 대중문화에 부는 한류 열풍에는 서구문화의 한국적 재수용과 재해석이라는 명제가 깔려 있는 셈이며, 어떻게 보면 최초의 한류라 볼 수 있는 태권도의 세계화의 경우, 명실상부 한국 고유문화의 수출이나, 그것은 스포츠의 일부로써 외국인들의 정신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종교나 사상의 전파는 그 규모가 아무리 작더라도 타문화내부의 근본을 전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크고 중대하다. 즉, 외국인이 태권도를 배우거나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 그가 불교에 귀의하거나 명절 때 제사를 지내는 것만큼의 중대결단이나 심각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타문화의 사상과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외국인이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모두 불교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기독교의 전파가 서구문화 전파의 핵을 이루었던 것처럼, 중남미에서 한국불교의 전파는 그 규모가 작더라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비공식적인 사회분위기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멕시코를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고,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종교도 하나의 사업으로써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시장 경쟁 체재 내에 들어 있다. 대중이 외면하는 종교는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안 스님의 법당에서 주일 평균 4-50여명의 신도 집회가 이루어지고 또 계속 성장세를 보인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또, 국내에서의 아무런 지원 없이 지역적으로 외지고 위험한 곳이라 생각되는 멕시코 시티에 와 절을 지키고 있는 성현스님, 그리고, 자비로 멕시코 시티의 두 개의 한국 법당 설립을 지원한 김재현 회장, 신도수가 많지 않아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숭산 스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지만으로 새로이 법당을 연 벽안의 평신도 주지 파볼에게 격려를 보내며, 비록 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하더라도, 그리고 필자가 가톨릭이더라 하더라도, 그들이 한류의 근원적 씨앗을 멕시코에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존경을 표시하며, 이에 대한 학술 논문을 쓸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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