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임두빈 | 작성일 : 2024-12-08 12:41:03 | 조회수 : 100 | ||||||||||||||||||||||||||||
국가 : 브라질 | 언어 : 한국어 | |||||||||||||||||||||||||||||
원문링크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0662518 | ||||||||||||||||||||||||||||||
출처 : 종교와 불평등 / 알렙 출판사 | ||||||||||||||||||||||||||||||
발행일 : 2022 | ||||||||||||||||||||||||||||||
알렙 출판사에서 2022년 출판된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연구총서 [종교와 불평등]에 수록된 임두빈 교수의 글이다.
들어가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입된 유럽 문명의 종교는 북미와 중남미에서 다른 경로를 통해 유입됐다. 브라질의 경우도 가장 중요한 종교는 포르투갈인들이 식민지 개척의 명분으로 내세운 가톨릭이다. 종교는 그 지역 사람들의 현실세계와 현실 너머세계를 잇는 세계관을 표방하기에 신앙의 차원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문화를 형성하고 대표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비록 브라질로 유입된 가톨릭이 로마가톨릭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이익창출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논리와 명분으로 작동하게 됐다. 이처럼 가톨릭은 포르투갈 왕실의 해외식민지 정책 실현에 보조를 맞추는 포괄적 동반자적 입장을 갖고 브라질에 정교일치의 권력으로 작동했다. 최영수(2000)는 브라질에서 종교의 역사적 진화를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식민지시대(1500-1822)는 1500년 4월 26일 첫 번째 미사를 시작으로 가톨릭이 유일한 종교로 간주됐고 유럽의 종교재판을 피해 도망 온 유대인 개종기도교인들은 비밀리에 유대교의 명맥만 이어갔고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일으킨 개신교 정착 시도는 포르투갈 군대에 의해 추방당했다. 1810년 브라질에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유대교가 아마존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제국시대(1822-1888)에는 브라질 독립을 시작으로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과 실증주의, 심령주의 정령숭배사상의 유입으로 가톨릭의 권위가 과거보다 현저하게 줄어드는 시대적 변화상을 보였다. 개신교는 1823년 루터교회 집단이주를 시작으로 1867년에 감리교, 1882년에 침례교, 1889년에는 장로교의 선교활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공화주의시대(1889-1960)에는 1890년 헌법에 정교분리와 종교와 교육의 분리가 명시되면서 국교 수준의 지위를 가졌던 가톨릭의 특권이 상실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제설혼합주의적인 아프로-브라질 종교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이민자들의 종교들이 유입되는 시기를 맞게 됐다. 침체되던 가톨릭의 위상은 1952년에 브라질주교협의회(CNBB)가 설립되고 가톨릭교회가 주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사회지원정책을 펴나갔다. 그러나 도시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사제의 부족과 더불어 도심 외곽으로 이주자들이 몰리면서 농촌 중심으로 가동하던 가톨릭교회의 보호나 후원에서 벗어난 반면에, 개신교의 오순절파가 도시를 중심으로 세력을 급속도로 확신시켜 1964년에는 복음주의 개신교가 개신교의 74%를 차지하게 됐다. 2. 브라질 정복에 나선 복음주의자들 1520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각지에서 루터의 가르침을 따라 가톨릭교회에 반대해 로마교황청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기독교 종파인 이른바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그중에서 프랑스인 장 칼뱅은 사람이 죽고 나서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 지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신이 정해 놓았다는 예정설을 설파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착한 일이나 나쁜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라며, 검소함과 근면함을 실천한다면 신이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교리를 전파하면서 이제까지 로마가톨릭교회가 가르쳐왔던 ‘‘신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그래서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지만 나쁜 일을 하면 지옥에 간다”라는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칼뱅주의자가 강조한 검소함과 근면함은 당시 수공업자와 상인이 추구하던 직업윤리와 일치했다. 권력과 결탁한 기존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환멸을 느끼던 사람들은 새롭고 참선하며 무엇보다 검소함과 근면함을 강조하는 위그노의 교리에 끌렸다. 이처럼 유럽에서 가톨릭교회는 자신이 갖고 있는 보수주의, 반 근대주의, 중앙 집권형, 엄격한 위계질서 성향이 시대 변화에 따른 신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막스 베버가 강조했듯이 가톨릭 윤리관은 점차 확장되어 가는 자본주의와 좋은 상생을 보여주지 못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해방신학이었다. 반면에, 프로테스탄트는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브라질에서도 약 6세기 전에 일어났던 유럽의 종교개혁이 20세기 들어 목도되어 21세기에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일반 정통 개신교는 지역 문화와 잘 연계되지 않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가톨릭에 비해 너무 수입품의 티가 많이 났다. 따라서 처음에는 가톨릭 측에서 비정상적인 개신교의 약진을 미국으로 대표되는 어떤 외국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비판해왔다. 사실상 브라질에서 약진한 개신교는 다름 아닌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한 오순절파이다. 오순절파의 부흥은 1980-90년대 브라질의 사회변화 및 시장개방으로 인한 충격이 채 흡수되지 않아 실업자의 증가와 소득 감소에 따라 커진 사회적 불만이 정치적 목소리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과거 대농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족 관계와 전통적인 가치관이 급격한 도시화로 파괴되었고 개인의 자아 발전과 진취적 기상을 장려했다. 과거 형벌로 여기던 노동을 신성시했고 돈을 버는 행위가 신의 축복으로 생각하게 됐다.
브라질에서의 개신교 확산을 언급하면서 먼저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벨케이드 외(2020)는 복음주의 개신교를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루터교와 같은 전통적인 개신교와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개신교는 지난 4세기에 걸쳐 나이지리아부터 브라질, 한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보수 세력을 형성하여 정치, 사회, 경제를 망라하는 모든 사회분야에 영향력을 넓혀왔다.
<그림1> 브라질 기독교 신자 수 변화추이(1940-2031)
출처: 브라질국립지리통계청(IBGE)
20세기 초까지 남미 인구의 94%가 가톨릭신자였고 개신교 신자의 비율은 1%에 그쳤다. 그러나 1991년부터 2010년까지 가톨릭 신자가 연평균 1%씩 감소한 반면에, 개신교 신자는 0.7%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1970년 브라질에서는 거의 국민의 92%에 달했던 가톨릭 신자가 2010년에는 64%대로 줄어들었다. 2022년에는 가톨릭 신자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있으며, 이런 추세로 간다면 2023년에 가톨릭 신자가 38.6%, 개신교가 39.8%로 역전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역전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1990년대 시장개방의 충격이 제대로 흡수되지 못해 실업자 증가와 소득 감소에 따른 사회적 불만이 커졌으며, 이런 심리가 각종 선거에 반영되면서 개신교 세력이 확대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2018년 대선을 계기로 복음주의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실제로 2018년 대선에서 총 1,100만 명에 달하는,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의 70%가 보우소나루(Bolsonaro)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브라질은 아주 독특한 케이스로써 그 큰 나라에서 오랫동안 고착됐던 종교적 판도가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뿌리 깊게 바뀐 경우는 드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대도시 시내에서 개신교 교회 이름과 기도문이 광고처럼 넘쳐나고 있다.
오순절주의는 1910년대 미국에서 태동했다. 이때부터 이 교단의 선교사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오순절주의의 핵심 교리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 핵심 교리란 ‘두 번째 세례’를 통한 개인적인 개종에 의한 부활 또는 새로운 삶의 시작, 성경이 중심을 차지하는 일상생활, 그리고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믿음이다. 1960년대 ‘제2의 물결’을 거친 ‘오순절주의’는 20년 후 미국에서 또다시 새로운 부흥기를 경험한다.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신오순절주의’다. 이 ‘신오순절주의’는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악과 악마와의 싸움을 의무로 여긴다. 또한 신의 상징과 계시에 각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기적, 질병의 치료, ‘예언’, ‘방언’은 공개적인 포교를 추구하는 이 교단의 주축이다(벨케이드 외, 2020).
이와 동시에 신오순절주의자들은 믿음으로 경제적 부를 이룩할 수 있다는 ‘번영 신학’을 설파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예전의 가톨릭 교리와는 다르게 경제적 부는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건강한 영적 상태의 상징이자, 가난은 ‘신이 내린 벌’이 된다. 그리고 신도들은 교회에 주기적인 기부를 독려 받는다. 번영 신학은 기부를 하면 악에서 멀어지고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신오순절주의의 비약적인 성장은 곳곳에서 터져 나온 재정 및 도덕성과 관련된 대형 스캔들로 얼룩졌다. 복음주의자들의 예배는 음악적 자산을 풍부하게 이용하며, 홍보와 대중 매체 설립은 거리 포교나 소셜미디어 상에서 핵심적인 포교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들은 또 극단적인 보수주의 성향을 유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성향을 바탕으로 브라질의 정치적 담화 속에는 종교적 인용구가 빈번하게 드러난다. 신오순절주의는 사형제도에 찬성하고 낙태를 완강하게 반대하며, 전통적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및 다른 성소수자 집단에 호의적인 법제를 거부하는 진보성에 적대적인 성향을 공통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세속주의와 정교분리원칙에 반대하며 신과 가족을 중시하는 중세시대로의 복귀를 희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개신교 신학자 Valdemar Figuereido가 설명하는 바처럼, 신앙차원을 넘어 이런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정치를 끌어들인다. “사람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적인 맥락에서의 보수와 진보를 논하지 않는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정부의 구호가 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재검토된다.”
브라질처럼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서 천주교가 위계질서의 현상유지를 위해 요구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설득력을 잃어갔다. 현재를 희생하고 내세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가톨릭의 가르침보다, 지금 바로 여기서 성공하라고 가르치는 신오순절주의 교회의 번영신학 설교가 사람들에게 더 와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방식을 통해 불평등과 같은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예전 같으면 인내하거나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또는 ‘제이칭뉴’라는 편법으로 임시방편적 해결을 꾀했었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고질적인 사회 문제에도 초자연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목사의 힘을 빌려 제거한다. 국가, 대통령, 국회의원, 학자들 같은 엘리트 계층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신오순절주의 교회는 기적을 통해 이룬다. 이런 모습을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교회가 소유한 공중파TV, 인쇄매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가는 치러야 한다. 신자들은 복을 받고 자신의 문제점을 제거하는 보장을 받으려면 매달 소득의 10%에 해당하는 십일조(Dizimo)를 교회와 목사에게 바쳐야 한다. 특히 브라질 정부의 무능함과 정치인들의 부패 정도를 익히 알고 있는 신자들은, 정부 부재와 전통적인 가족 관계가 파괴된 상황에서 자신이 일자리를 잃거나 아플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헌금한다. 정부 개입과 직계가족 없이도 기댈 수 있는 일종의 협동조합 같은 생태계가 복음주의 교회를 중심으로 성립된 것이다. 더군다나 룰라 집권 시기 적극적인 분배정책을 통해 극빈층에서 벗어나 중산층으로 편입된 신중산층의 교회편입과 충성도는 매우 높아졌다. 부자는 천국을 못 간다는 가톨릭의 가르침에서 물질적인 성공이야말로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징후라는 가르침으로 바뀌면서 복음주의 교회는 브라질 사람들의 세계관을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3. 브라질 정치변화의 신 전환기와 정치 도구로서의 종교
역사적으로 종교가 지배와 억압을 자행하거나 그런 목적에 이용된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는 아브라함에게서 갈라진 세계 3대 유일신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에 기록된 거의 모든 전쟁에 연루되었다. 가톨릭교의 십자 군 운동과 신세계 정복, 이슬람교의 정복포교 등은 본래의 영적 메시지에 역행하는 사건들이다. 냉전 시대만 해도 미국은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도구로서, 소련은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목적으로 종교를 활용했다. 냉전 종식 후, 20세기 이데올로기의 붕괴는 국제무대에 '종교의 금의환향'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로마가톨릭으로 시작한 브라질은 현재, 믿음으로 경제적 부를 이룰 수 있다는 번영신학을 내세운 (신)오순절주의를 중심으로 종교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류는 왜 이렇듯 유난히 종교에 심취하는가? 중세를 넘어 근대 이후 이성주의가 안착된 다음부터 맹목적으로 종교를 맹신하는 경향은 나아졌지만 인간 삶 자체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현상이다. 종교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근대였다면 현대는 인간이 맞닥뜨리는 어떤 불확실성을 맹목적인 신앙으로 대변했던 중세와는 다르게 하나의 집합적 무의식으로 받아들인다. “Brazil take off.” 2009년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표지에 브라질을 상징하는 예수상이 로켓 추진을 달고 하늘로 이륙하는 이미지와 함께 실린 머리기사다. 그리고 2013년에는 예수상이 동력을 잃고 추락하는 모습과 함께 “Has Brazil blown it?”이 표지를 장식했다. 가장 최근 2019년에는 브라질의 상황을 암시하듯이 머리기사로 “Deathwatch for the Amazon”이 등장했다. 2009년은 룰라(Lula)대통령의 집권2기 말, 2013년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16년에 탄핵 된 호세피(Rousseff)대통령 집권 1기 후반이었다. 그리고 2019년은 보우소나루(Bolsonaro)현직 대통령이 취임한 원년이다. 모두 브라질 신 전환기의 중요한 변곡점에 해당된다. 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미래’를 보고 위와 아래 계급을 아우르는 화해와 합의의 정치를 했다면(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야합을 했다면), 군부 출신인 보우소나루는 정치 전략으로 막말을 이용한 도발을 이용해서 기존의 사회시스템을 ‘증오’와 ‘분열’을 통해 파괴하고(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파시즘적 성향으로) 새로운 가치를 중세를 좌표로 하는 ‘과거’에서 찾으려 한다. 일반적으로 좌파 인사인 룰라를 진보주의자 그리고 극우 발언을 일삼는 보우소나루를 보수주의자로 구분한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협치란 명분으로 기득권과 타협한 룰라가 보수주의자로, 새로운 변화를 위해 기성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보우소나루를 진보주의자로 부를 수 있다. 아니면 서로 방향과 철학은 다르지만 변화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에서 두 사람 모두 진보주의자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적 세계관은 이중개념에 불과하고 프레임에 갇힐 때 고정되는 것이다(레이코프 2012). 그렇다면 식민시대, 구공화국, 신국가와 군부 독재를 거쳐 재민주화를 이루고 기아퇴치(Fome Zero)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으며 선진국의 꿈을 키웠던 브라질에게 왜 이런 정치지형의 변화가 생겼는지, 보우소나루가 택한 ‘브라질의 길’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2018년 대선에 이어 2022년 대선 역시 ‘브라질의 약화된 민주주의’가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정치담화 분석을 통해 그 안에 드러나는 중심 가치를 파악하고 ‘브라질의 신 전환기 정치지형 변화에 있어 종교의 금의환향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브라질의 사회 불평등 논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일반 언어학적 접근과는 달리 비판적 담화분석은 언어를 사회적 경험을 전달하는 도구적 기능에 그치지 않고 특정 맥락 안에서 사람의 행위에 해당하는 사회적 실천의 하나로 본다. 그리고 사회적 부정(social wrong)의 근원과 원인, 이에 대한 저항 방식과 극복할 가능성을 분석함으로써 이러한 사회적 부정을 드러내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Wodak & Meyer, 2021: 169). 방법론적으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의 특성 분석을 통해 접근해 본다. “정치적 담화에 대한 언어적 분석은 특정 국가가 처한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 문화 및 역사적인 특수성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이원표 2015, 29).” 어떤 한 사람이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 단어 하나에도 자신의 이념이나 가치판단이 생물처럼 동반된다. “글쓰기나 말하기에서 나타나는 차이, 즉 단어사용 스타일의 차이는 가장 흔하게 쓰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짧은 단어들과 관련 있다(Pennebaker, 2016: 9-10).” 우리가 관심을 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언어사용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1)제38대 대통령 취임사; 2)유엔총회 개막식 연설문의 주요 키워드를 빅데이터 분석방법으로 추출하고; 3)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한 언어자료를 분석에 활용했다.
가) 브라질 38대 대통령 취임사
고빈도 단어 중심의 내용분석(content analysis)을 위해 대통령궁에서 제공하는 연설문을 번역하여 워드스미스 8.0를 통해 분석에 큰 영향이 없는 조사, 형용사 등의 불용어를 제거하는 전처리 작업을 수행한 뒤, 단어 빈도분석을 진행했다. 군사정권(1964-1985년)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군 출신 대통령 취임사에서 추출된 단어를 분류한 결과, 주요 키워드는 <표 1>과 같이 ‘브라질’, ‘민족’, ‘하나님’, ‘가족’, ‘경제’, ‘무기’, ‘치안’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요약됐다. 국명인 ‘브라질(Brasil)’과 관련 파생어들이 모두 37회 등장하여 가장 높은 출현빈도를 보였다.
아래는 취임사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연구자가 번역한 부분이다. “ (… ) 국민을 단합하고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종교들과 우리의 유대-기독교 전통을 존중하고, 우리의 가치를 수호하면서 젠더 이데올로기를 거부합시다. 브라질은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벗어나 자유 국가의 모습을 되찾을 것입니다.” (… ) 주요 키워드를 살펴보면, ‘국민’은 무엇인가. 포르투갈어 ‘povo’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인민’은 북한 탓에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어에 해당한다. ‘국민’은 개인이 국가에 귀속된 집단주의적 개념을 갖고 있다. 그 둘을 피하기 위해 80년대에는 ‘민중’이라는 무산계급의 명칭을 쓴 바 있다. 포르투갈어로 ‘povo’는 영어의 ‘people’과는 그 의미가 또 다르다. 기본적으로 한 민족의 모든 구성원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지만 사회경제적 구분을 통해 엘리트나 부자의 반대말로 그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우리’는 대통령 담화문에서 보통 화자와 청자를 모두 포함하는 일반적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화자인 대통령과 청자인 국민 사이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국민들의 정부와 한 편이 되도록 하여 국민들을 정부의 일에 동원시키는 합법화 전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유희재 2017). 보우소나루가 사용하는 ‘우리’는 표면적으로 브라질 시민권을 가진 모든 국민을 가리키지만 ‘그들’과 구분하는 배타성을 띤다. 그에게 있어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에 들지 않는 ‘그들’은 더 나은 브라질 건설을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표 2>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
또한 그가 주장하는 브라질의 전통적 ‘가치’는 그간 브라질이 식민지, 구 공화국, 군부독재, 재민주화를 거쳐 온 진보의 길목에서 급격한 유턴을 요구한다. 단순히 좌파정권에서 이전의 전통적인 엘리트 우파 보수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다. ‘유대-기독교 전통’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브라질과 유대 전통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언급할까. 그 바탕에는 브라질 복음주의 개신교의 급부상이 있다. 거대 공중파 방송국까지 보유한 오순절파 기독교 세력은 당시 무명에 불과했던 보우소나루가 정권을 창출하게끔 실질적인 조력자였다. 2018년 대선에서 약 1천 1백만에 달하는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의 70%가 보우소나루 대통령 후보자를 지지했다(Belkaid & Oualalou 2020).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라질의 몸에 맞지 않는 형식주의 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중세 시대와 같은 하나님, 조국을 섬기고 전통적인 남성중심의 가부장 가족체제를 수호할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사용했던 구호 ‘Deus Vult!(하나님께서 (성전을) 원하신다!)’와 ‘Deus é acima de tudo(첫째는 하나님)’를 정권의 모토로 동원한다. 이들에게 현행 민주주의 시스템과 그 안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관심 밖이다. 하나님이 국가의 정점에 있으면 모든 게 완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파괴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와 같은 ‘정치적 올바름’도 투쟁과 제거의 대상이 된다. 또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일정 부분 침해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능력으로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정당성은 우리를 항상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을 끊임없이 증폭시켜야 경찰과 군대의 역할이 강화된다. 나) 브라질 역대 대통령 유엔총회 개막식 연설문 유엔총회 개막식 연설문은 국제무대에서 각국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비전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에 대한 의지를 분석하는 데 활용이 된다. 보우소나루가 참가한 2019년, 2020년, 2021년 연설문을 대상으로 삼았고, 각 연설문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워드클라우드’로 시각화한 자료를 활용했다(BBC New Brasil 2019).
<표 3> 보우소나루 대통령 유엔총회 개막식 연설문 워드클라우드
2019년 연설문에서 추출한 키워드의 출현빈도 순서는 브라질(39), 국가(들)(24), 원주민(23), 세계(12), 자유(10), 권리(9) 2020년은 브라질(27), 세계(12), 정부(7), 평화(7), 환경(6), 자유(6), 국가(6), 민족(5), 협력, 국제, 생산, 보호, 치안(4), 2021년은 브라질(16), 정부(10), 미국(6), 세계(5), 투자, 자유, 역사, 치료 그리고 수십억, 수백만의 순서로 나타났다. 앞서 살펴본 취임사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세 번의 유엔 연설 모두 ‘브라질’이 가장 높은 빈도수를 기록했다. 또 동일한 어휘를 서로 다르게 재맥락화하는 표상전환 전략을 통해 언론이나 일반인이 이해하는 ‘자유’와 보우소나루 지지자가 알아듣는 ‘자유’는 동일하지 않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보우소나루가 말하는 ‘자유’란 국가를 우선시하여 사회적 배려 같은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사용 언어 사람들은 본인이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자신의 다양한 욕구를 투영해 낸다. 대통령의 언어는 더 특별하다. 그래서 각국 지도자들의 연설을 분석해서 리더십 유형, 심리상태 등을 분석해 전쟁 위협 등을 판단하는데 활용한다. 보우소나루는 취임 전에도 막말로 유명해졌지만, 당선 후에도 각종 막말을 통한 도발 정치를 ‘뚜렷한 목적의식’, ‘지속성’, ‘정치적 비 올바름’ 그리고 ‘용맹함’을 통해 이어가고 있다. 2021년 9월 26일 기준으로 연설문에서 1만8천 단어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2만 6천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Dantas 2021). 국내에서 포르투갈어 웹 크롤링이 용이하지 않은 관계로 현지 분석 자료를 활용하기로 했다. 분석 결과, 실제로 ‘민주주의’보다 ‘군대’를 더 많이 언급했다. ‘평화’가 120번 등장한 데 비해, ‘군대’가 362번, ‘다수’, ‘남자’가 ‘소수’와 ‘여성’보다 훨씬 많은 빈도로 등장했다. 국명 ‘브라질’은 취임사와 유엔총회 연설문과 동일하게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브라질은 짧은 역사와 국가가 먼저 수립되고 난 뒤에 민족과 국민의 정체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역사를 겪었다. 1500년 포르투갈에 의한 식민지 시대를 시작으로 제정시대(1822년-1889년), 제1공화국(1889-1930년/1930-1937년), 신국가91930-1945년), 제2공화국(1945-1964년), 군사정권(1964-1985년)을 거쳐 재민주화 과정을 거치고 1988년 신헌법이 제정과 함께 1989년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선거를 통한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했다. 전술했듯이 브라질은 보우소나루의 등장과 함께 군사정권 이후 처음으로 그동안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성과를 무위로 돌릴만한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다. 좌파정부를 몰아낸 반정부 시위 참여자들의 절대다수는 고학력의 백인이었고, 소득도 중산층 이상이었다. 이들이 반부패, 반정부 시위에서 내건 슬로건들은 주로 세금정책에 대한 불만, 정치적 올바름과 좌파의식에 함몰된 공교육을 향한 거부감, 빈곤층 유권자들에 대한 공격, 장난을 빙자한 인종차별, 심지어 군부의 개입까지 촉구했다. 2018년 보우소나루 집권 이래 행정부, 입법부와 사법부 할 것 없이 군부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대거 영입되었다. 브라질 국민을 소득 수준 기준으로 상위10%, 중위 40%, 하위 50%로 나눴을 때, 브라질은 정권을 좌파가 잡던 우파가 잡던 간에 상관없이 총소득의 60% 이상이 상위 10%의 특정 엘리트 계층에게 고정비로 묶여 있다(피케티, 2014). 다시 말해서, 좌/우, 진보/보수 이데올로기를 떠나 브라질 국민의 90%가 나머지 국부의 40%만 나눠 가져야 한다. 브라질의 소득 상위 10%는 누가 정권을 잡던 간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제도가 불공정하게 기능할 수 있게 만드는 힘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 노동자당 집권 13년조차 상위 10%가 차지한 소득 규모에 변동이 없었다. 경제가 악화되면 가장 큰 고통을 분담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계층은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는 백인 계통의 고학력 중하위 계층이 되어버렸다. 빈곤층은 정부가 보호하고 지원함으로써 실질소득이 향상됐지만 중산층인 경우, 위는 항상 상위 10%에 막혀있고, 아래로부터의 계층상승이 목격하면서 이중으로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됐다. 이런 분노가 2018년 대선에서 표출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가족과 신과 자유를 위한 행진’을 모토로 걸었던 1964년 군사쿠데타와 판박이다. 보우소나루 이전에도 ‘보우소나루들’은 존재했다: “다른 진영에 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만약에 우리가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더라면, 우리는 아마 선택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라) 복음주의자들의 TV 미디어 정치 도구화 비정부기구(NGO)인 ANDI와 커뮤니케이션 집단인 인터보즈(Intervozes: 브라질 연방검찰국과 함께 설립한 단체)의 합동 보고서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했던 막말이 브라질에서 시청률 2위를 기록하는 공중파 TV 헤꼬르지(Record)의 몇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재현되어 중계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헤꼬르지 TV는 브라질에서 세 번째로 많은 복음주의 교회이자 전 세계 95개국에 퍼져있는 ‘하나님의 나라 세계교회(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 IURD)’의 창시자 에지르 마쎄두(Edir Macedo)가 소유한 방송국이다. 그는 1977년에 한 장례식장에 ‘세계교회’를 처음 세웠고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재빠르게 라디오 방송에 이어 TV 방송을 갖췄다. 이후 1989년에는 4,500만 달러를 모금해 ‘헤꼬르지 TV(1953년 설립)’를 인수했다. 그는 벌거벗은 여자와 술이 등장하지 않는, 유해하지 않은 공중파 TV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출퇴근 시간대마다 고정으로 성령의 힘을 강조하는 신오순절주의 교회의 예배를 송출했다. 교회 홍보에는 공중파 TV 방송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당시 높았던 문맹률도 사람들을 TV 앞에 끌어 모으는데 적합한 환경이었다. 이처럼 세계교회는 마쎄두의 놀라운 사업수완을 거쳐 헤꼬르지TV와 함께 동반 성장했다. 2018년 Netflix에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영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Nada a perder)’ 를 1, 2편으로 만들기도 했다. 브라질국립지리통계청(2010년)은 신자 수 180만 명으로 집계되지만 자체 집계로는 7백 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브라질 국내에 8,773개, 해외에는 약 127개국에 3,559개의 교회가 건립되어 있다. 세계교회는 헤꼬르지 TV뿐만 아니라 브라질 영토 내 75% 지역에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 64개(헤지 알렐루이아, Rede Aleluia), 출판사(우니프루, Unipro), 음반사(라인 레코즈, Line Records), 인터넷 TV 및 무료신문(폴랴 우니베르사우, Folha Universal)을 소유하고 있다. 교회가 미디어 사업을 통해 확실한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정책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4. 맺음말
이 글은 브라질 사회 불평등의 기원을 정치 도구로서의 종교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살펴보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브라질에 이식된 주요 종교의 패러다임 변화를 살펴본 뒤,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에서 현직 대통령의 언어사용을 분석함으로써 브라질 정치지형 변화에 개입한 종교의 영향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브라질의 재 민주화 이후 겨우 수립됐던 좌파 진보정권을 부패척결의 이름으로 타파하고 ‘새로운 브라질’을 재건한다는 취지로 지지를 받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새로운 브라질은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특정한 종교의 종교관이 지향하는 과거로 회귀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통령의 공식적 발언에 대한 담론분석을 통해 이분화 전략, 배제, 긴박감 조성, 근접화 전략, 위협과 경고, 책임 전가 등의 담화전략으로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정치행위의 합법화를 꾀하면서 민주주의 체제와 절차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기득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없다는 판단한 사람들이 동종선호 성향에 따른 집단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포퓰리즘의 술책으로 다가와 민주주의 탈을 쓴 파시즘이 획책되는 위험성도 엿보았다. “민중은 엘리트가 지배하는 체제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더 우호적일 것으로 기대하면서 책임성이 없는 독재자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쪽을 택할 수 있다”(애스모글루 & 로빈슨 2020).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한 개인의 권위주의적 인격과 일탈로 평가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정체를 숨기고 숨어있던 이름 없는 사상이 ‘보우소나루’란 인물을 만나게 됐고, 그 입을 통해 ‘보우소나리즘(Bolsonarismo)’으로 공식화된 것이다.
보우소나리즘은 국민의 단일성을 배타적인 ‘우리’로 강화시켜, 반동적인 초구가기구로서 기독교 복음주의를 기반으로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국가를 구축하는 시도인 만큼, 보우소나루의 말을 거쳐 군중에게 동조효과를 낳으면서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이제 브라질이 좌우 표퓰리즘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 안에 갇혀버린 것인지, 아니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다시 균형을 집는 것인지, 이번 2022년 10월에 치러질 대선 결과 예측에서 노동자당(PT) 룰라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례를 통해 좌우 진영에 상관없이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잃을 때 그리고 정교분리원칙이 흔들릴 때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고, 그 결과 대중의 인기를 얻은,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위험인물이 얼마든지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지도자로 선출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향후, 현재의 연구가 가진 한계를 넘기 위해서, 즉 브라질 정치지형의 변화와 종교 개입을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보고 규칙성을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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