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다. 사회학을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기술하는 학문'으로 파악하였으며,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였다. 알제리 사회학, 재생산, 구별짓기, 호모 아카데미쿠스, 텔레비전에 대하여, 경제학의 구조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가 제창한 아비투스의 개념은 유명하다.
.서론: 사회자본과 한국사회
.제1장 사회자본과 한국사회
.제1부 사회자본에 관한 초기 이론들
.제2장 자본의 형태
.제3장 인전자본 형성에 있어서의 사회자본
.제4장 번영하는 공동체: 사회자본과 공공생활
.제2부 사회자본 연구의 쟁점들
.제5장 사회자본 개념의 기원과 현대 사회학의 적용
.제6장 사회자본과 민주주의
.제7장 사회자본과 경제발전
사회자본에 대한 좋은 입문서 역할은 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부제따나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소박한 공동체주의자들이 읽기에는 참 감미롭기도 하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듯한 것들을 통칭하며, 사회 곳곳에 시사점을 찾아내는 데 있어 '사회자본'의 역할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 저자들이 곳곳에서 지적하듯 ― 사회자본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의 신뢰, 협력, 네트워크 등 호혜적 개념들간의 상호성, 관련성이 뭉뚱그려지면서 정작 '어떻게 사회자본을 만들어내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사회자본으로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학자도 뚜렷한 답을 해주지 않고 있었다. 결국 일부의 비판대로 '자본'개념의 팽배와 함께, 사회적 현상마저도 자본으로 환원시켜 해석하려는 시도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울콕(Woolcock) 교수의 글에서 조그마나마 희망을 찾게 되었다. 사회자본의 등장으로 인해, 팽배해가는 주류경제학의 논리에 대항할 수 있는 '배태성', '자율적 호혜성'등의 개념이 새롭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사회자본의 개념에 대한 이론적 천착 내지 논쟁이 아니라,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자본이 민주주의의 발달이나 경제발전과 연결되는지 실천적으로 탐색하는 것이다. 여기에 기어코 사회자본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는 없다! 보다 지엽적이고 구체적인 용어라도 충분하다!
책을 읽으면서 결심한 다른 한 가지. 더 이상 짜집기 책은 사지 말자.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겠다 싶으면 저자가 달라져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깊은 전달과 수용이 불가능한 것이 이런 편역서의 실태이다. 언젠가 빌려놓고 먼지만 쌓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를 한동안 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