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테카문명을 통해 보는 멕시코 시티
멕시코 시티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엿보거나, 미국과 중남미 사이에 낀 역사적, 정치적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이 글에서는 멕시코 시티에서 볼 수 있는 멕시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고 멕시코 시티는 어떻게 다양하고 복잡한 도시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저자는 천 년 전의 아스테카문명의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을 지배하는 그들의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찾아내려고 했다. 이는 그 후의 에스파냐나 현대의 철학보다 훨씬 더 멕시코적인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멕시코 시티의 구성원
멕시코는 에스파냐가 멕시코를 정복하면서 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에스파냐어로 ‘섞인다’는 뜻을 갖고 있다)가 등장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어느 쪽 피가 더 많이 섞여 있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 보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혈이다. 멕시코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초의 메스티소는 곤잘로 게레로(Gonzalo Guerrero)의 자손이다. 게레로는 에스파냐 원정대의 일원이었으나, 원주민들과 함께 사는 삶에 적응하여 에스파냐의 침략에 함께 저항하였다. 후세의 사가들은 게레로의 경우를 ‘문화적 동질화(Aculturacion)’라 표현하였다. 게레로의 자손들은 두 문화가 만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오늘날의 진정한 메스티소들이다.
◆ 아스테카제국의 통치원리
‘꽃 전쟁’은 종교적 제례의식을 위한 ‘희생자’를 찾는 전쟁이다. 아스테카제국의 이념인 제5태양의 전설에 의하면 인신공양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루도 태양 없이는 살 수 없었으므로, 인신공양을 위해 노예를 사기도 했고 노예가 부족할 때는 전쟁을 일으켜 포로를 잡았다. 태양신 토나티우에게 바칠 희생자를 찾는 꽃 전쟁은 공물을 얻기 위한 전쟁의 군사훈련인 동시에 이 희생의식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던 주위의 여러 부족국가 지도자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꽃 전쟁은 종교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아스테카제국을 유지하는 중요한 통치원리가 되었다. 이것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는데 고대사회에서는 사회의 움직임이 바로 종교행위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장거리 무역을 빙자한 공물 경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의식을 빙자한 외교적 공포정치가 아스테카를 지탱하는 두 원리였다.
◆ 구기장에서 행해졌던 공놀이의 의미
공놀이는 죽음을 장엄하게 만드는 의식이다. 심장을 꺼내거나 목을 자르는 모습은 의식의 극대화이다. 이는 고대 세계 최대의 스펙터클 쇼였을 것이다. 오늘날 성당의 지붕을 한없이 높게 하여 숭고하고 장엄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와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왕은 제의식을 통하여 종교적, 정치적 의무를 수행하였다. 머리를 자르는 것도 잘려진 머리에서 새 생명이 나오는, 풍요의 의미이다. 공놀이는 또한 사회적인 역할도 있었다. 전쟁에서 진 자는 경기에서 명예롭게 죽을 수 있었다. 공놀이는, 싸움에서 진 자와 이긴 자에게 경기를 통하여 영예롭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렇게 제의식으로서의 공놀이의 상징은 풍요, 전사들의 기념식, 천체의 운행 등 다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