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 ‘트랜스라틴’ 총서의 네번째 책. 아르헨티나 출신의 문화연구 석학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의 책으로, 문화적 ‘혼종성’을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개념화하여 문화연구의 지평을 넓힌 역작으로 꼽힌다.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이 책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근대가 전통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가 혼종적으로 얽힌 다시간성을 가질 뿐 아니라, 계급적으로도 복합적인 상호의존과 갈등관계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서구의 근대 문화이론이 가정하는 선형적 역사관과 계급적 이분법의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혼종성’ 개념은 비서구 지역의 근대성 논의를 위한 이론적 주춧돌로 기능할 뿐 아니라,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문화정치적 사유의 가능성을 촉발할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문화적 ‘혼종성’의 개념으로
탈서구적 문화연구의 서막을 알리다!!
근대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탈식민적 문화연구의 고전 『혼종문화』!!
라틴아메리카 근대성 연구의 문제작 『혼종문화: 근대성 넘나들기 전략』이 그린비출판사 ‘트랜스라틴’ 총서의 네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아르헨티나 태생의 문화연구 석학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 그는 그동안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근대 사회과학의 서구중심적 역사관과 이분법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탈식민주의 문화연구계에 커다란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그의 주저로서 1989년 초판 발행 이래 수많은 논쟁을 낳으며, ‘혼종성’ 개념을 탈식민주의 이론의 핵심 개념으로 정착시킨 문화연구의 고전으로 꼽힌다.
이 책에서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문화적 ‘혼종성’(hybrid) 개념을 통해 서구와는 다른 근대, 서구를 통해서는 이해될 수 없었던 근대에 대해서 말한다. 서구 지식인들의 눈에 의해 조명되었던 근대성 개념이 이제 그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혼종성’일까? 이 책에서 혼종성은 라틴아메리카 근대의 문화적 맥락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생물학에서 유전자 결합을 통해 잡종이 만들어지듯이,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에는 ‘전통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가, 그리고 민족과 민족, 계급과 계급이 뒤섞이며 복합적인 문화현실을 만들어 낸다. 이 복합적 현실을 지시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하는 개념이 ‘혼종성’이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문화를 분석하면서(1~6장), 새로운 형태의 권력과 저항이 다양한 경계들을 관통하며 매우 복합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7장). 그리하여 저자는 근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법으로, 복합적이고 우회적인 상징적 의미생산의 장에 주목하는 새로운 혼종성의 문화정치학을 제안한다.
서구와는 달리 압축적인 근대화의 경험을 겪었던 라틴아메리카. 그곳에서 ‘혼종성’은 근대의 또 다른 시대상을 조명하는 개념으로 기능한다. 후발자본주의 국가에서 살면서 서구와는 다른 근대를 경험했던 우리에게 이 문화연구의 고전은 필독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근대적 인식틀을 해체하는 문화적 ‘혼종성’의 개념
일반적으로 ‘근대’란 과거와의 혁신적 단절에 의해 구축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근대가 과거와의 충분한 절연 속에서 구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서 전통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가 분리불가능하게 얽혀 있음을 발견한다. ‘근대’라고 불리지만, 근대의 모델이었던 서구와는 다른 근대. 계급과 계급, 민족과 민족 간의 경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독특한 근대. 그 근대의 ‘다름’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하는 또 다른 개념이 바로 ‘다시간적 이종성’(heterogeneidad multitemporal)이다.
전통과 근대의 뒤섞임을 말하는 ‘다시간적 이종성’ 개념
박물관의 고대 유물과 현대 거리의 네온사인이 한곳에 놓인다면 어떤 장면이 연출될까? 거실 탁자 위에 전통 수공예품과 전위주의 예술작품이 공존한다면 어떤 느낌을 자아낼까? 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는 이러한 다양한 시대적 속성을 상징하는 문화생산물들이 한곳에 공존하게 된다.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이러한 시대적 얽힘의 현상을 ‘다시간적 이종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화두 중 하나는 문화적 발전 정도에 비해 경제적 근대화가 뒤처졌다는 것이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로 상징되는 라틴아메리카 예술의 진취성과 경제적 후진성의 불일치. 문화적 엘리트들은 대중들과 자신의 차별점을 얻고자 했지만, 경제적 구조의 뒷받침이 빈약해지자 오히려 자신들의 권위를 보증해 줄 전통 유산을 근대적 요소들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이때 엘리트들의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라기보다 과거의 근대적 변용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시대 속에 다양한 시대적 속성들이 공존하게 되는 현상이 라틴아메리카 근대문화 속에서 확립된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화를 관통하는 것은 하나의 시대성이 아니라, 이질적 시대들의 공존, 혹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이었던 것이다.
고급문화ㆍ민중문화ㆍ대중문화 간 위계적 구분의 해체
근대의 다시간적 이종성은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문화에 새로운 계급적ㆍ학문적 관계를 설정케 했다. 서구의 문화이론에서 근대문화를 가르는 계급적 구분은 다음의 세 가지 층위를 전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고급문화 영역(엘리트), 민중적 영역(하위주체), 대중문화 영역(자본). 이 세 층위들은 각각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학문적으로도 세 개의 분과학문들이 이 세 영역을 분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예술사와 문학사는 고급문화 영역을, 민속학과 인류학은 민중적 영역을,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대중문화를 담당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가정이 옳다면,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은 고급문화적 요소로 간주해야 할까, 아니면 대중문화적 요소로 간주해야 할까? 예술품 경매에서 가격 기록을 경신하는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은,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어떨까? 8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문화산업은 이미 고급문화적 영역과 대중적 영역의 구분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70년대 멕시코 수공예업의 성장은 비슷한 변화의 양상이 민중적 영역에서도 전개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292~293쪽). 근대문화의 혼종화는 분과학문 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론적 방법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근대의 경계를 허무는 혼종성의 문화정치학
라틴아메리카의 근대 전위주의와 탈근대 예술은 이러한 근대적 구분법과 갈등하던 문화적 흐름의 사례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운동들은 기존의 근대문화에 대한 비판적 운동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제도와 자본의 영역에 흡수되면서 그 혁신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이러한 비판적 운동의 쇠퇴가 근본적으로 비판의 방법을 쇄신하지 않았음에 기인한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그는 근대의 경계를 가로지르기 위한 정치학을 위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1~6장까지가 앞서 본 것처럼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대한 분석이라면, 7장은 권력과 저항이 작동하는 방식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의 새로운 정치학은 ‘극적 수행’이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된다.
극적 수행의 문화정치학
현실 자체가 의미의 체계로 구조화된 공간이라면, 우리는 현실을 ‘현실’이라는 연극이 상연되는 무대(stage)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연극의 배우들이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듯이, 근대문화의 주체들 역시 다양한 페르소나를 통해 현실을 연기(perform)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극적 수행’의 원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시도되는 개념이다.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생산의 장에 주목한다는 것. 가르시아 칸클리니가 이러한 극적 수행의 사례로 제시하는 것은 미국 불법이주자들의 국경 이탈,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지배계급들을 조롱하는 벽의 낙서들, 그리고 로베르토 폰타나로사(Roberto Fontanarrosa)의 만화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사례들이 기존의 근대 정치학들(사회주의ㆍ민족주의ㆍ자유주의 등)과는 달리 모두 저항을 직접적 기치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근대의 경계들에 대한 조소와 패러디를 통해 오히려 상당한 대중적ㆍ민중적 감응을 촉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이 활동들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상징적인 의미의 관계들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르시아 칸클리니의 ‘혼종성’ 개념은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대한 분석에서 새로운 정치학적 사유의 촉발로 나아간다.
‘종언’의 시대에 『혼종문화』가 말하는 것
최근 한국 인문학의 화두 중 하나는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 ‘역사의 종언’이라는 화두는 동시에 근대적 정치의 가능성이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근대적 정치의 가능성이 준거했던 ‘동일성’(identity)이 와해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정치를 사고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삶을 조명할 어떤 문화적 키워드를 발견해야 하는가? 아마도 이 책 『혼종문화』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안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라는 비서구 지역에서 본 근대의 삶은 압축적 근대화로 서구적 삶을 모방하게 된 우리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오늘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