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Multitude』은 이탈리아의 좌파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펴낸 또 하나의 역작이다. 네그리는 21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정치사상가이자 ‘아우토노미아(자율성, 자주성)’ 운동의 창시자로 유명한 인물. 그는 자신의 사상적 동반자인 마이클 하트와 함께 21세기 벽두에 펴낸 『제국Empire』에 이어 4년 만에 『다중』을 출간함으로써 현대의 변화된 지구적 권력질서를 파악하고자 하는 그간의 노력에 일단락을 맺었다.
2000년 출간된 『제국』에서 네그리가 주목한 것은 ‘세계화’라는 전지구적 압력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실체였다. 그는 선진제국의 자본·군사·정치적 네트워크가 전 지구를 장악해가는 양상을 ‘제국’이라 표현했다. 냉전시대, 양대 강국의 영토적 지배력 확대를 둘러싼 경쟁을 제국주의(imperialism)의 연장이라 본다면, 현재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국경과 민족을 넘어 지구 곳곳에서 지배 네트워크를 완성하고 있는 권력은 대문자의 제국(Empire)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시대에 지배권력의 대항자로 지칭되었던 인민(people), 대중(mass), 노동계급의 개념도 제국의 시대에는 다양하게 조직되고 행동하며 지구적 연결(link)을 이루는 ‘다중’(Multitude)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다중’ 개념을 통해 비로소 제국과 그로 인한 영속적 전쟁의 비관론을 넘어서고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