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 메스티소의 본질!
국내 라틴아메리카 분야 최고 전공자로 손꼽히는 이성형 교수의 라틴아메리카 문화론!
미흡한 지역학 연구 ― 지난 20여 년간 라틴아메리카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의 최초 문화 탐색!
우리에게 지역학 개념은 지극히 편협하다.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유럽 정도만이 학문적 연구영역의 주요 관심사이다. 최근 들어 이런 편협한 측면이 많이 해소되어 동남아 연구 분야까지 활성화되고 있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국외지역이 변방에 머물러 있다. 라틴아메리카 역시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이며,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들어섰을 때 과연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서도 뚜렷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즉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 말미암아 급변하는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칠레와는 이미 FTA를 체결하였고, 또한 라틴아메리카 각국과 다양한 정치ㆍ경제적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이해의 척도는 박약한 편이다. 이에 지난 20여 년 가까이 라틴아메리카 연구에 매진해온 이성형 교수가 지금껏 주로 정치와 경제 분야를 다룬 데 비해서, 이번 책은 처음으로 ‘문화영역’에 초점을 맞춰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럽이 문화의 표본이었던 라틴아메리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 ― 메스티소성의 발견!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은 진정 무엇일까. 먼 옛날 유럽에서 온 정복자들의 핏줄일까, 아니면 원주민들의 핏줄일까. 또한 그 문화적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런 질문에 라틴아메리카 사람들 자체도 어떤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멕시코의 화가들은 파리와 정원이나 분수대를 진경산수처럼 그렸고, 조각가들은 다비드상이나 유럽의 고전주의 조각상을 모방했다. 유럽 문화를 본받는 것이 예술가들에게는 최고의 덕목처럼 보였다. 멕시코 혁명 직전 대통령 궁전의 무도회에서는 왈츠나 폴카 아니면 마주르카를 추었다. 극장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단이 베르디, 도니제티, 푸치니, 비제의 작품을 올렸다. 유럽이 곧 문명이고, 진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 혁명이 터지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본모습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즉 백인이 아닌 ‘메스티소’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의 뿌리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멕시코인들은 스스로 혼혈임을 인정했고, 모계가 원주민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나아가 혼혈 종족 메스티소가 ‘우주적 인종’이라는 자각마저 생겼다. 이제 메스티소란 정체성을 통해 새로운 국민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화된 것이다. 벽화가 시께이로스가 초안한 것으로 알려진 「기예노동자, 화가, 조각가 노조 선언문」(1923)의 아래와 같은 구절은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멕시코 민중의 예술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건강한 영적 표현이며 이 예술의 원주민적 전통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민족주의 연구를 넘어 ― 엘리트 민족주의의 극복으로서 일상적 문화 영역에 중점!
민족주의 연구와 관련, 베네딕트 앤더슨의 그림자는 아직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상상의 공동체>(1983)가 바로 그 영향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앤더슨의 민족적 정체성 탐구는 주로 인쇄 자본주의 시대의 엘리트 프로젝트로 이해되어, 동일한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생산하는 데 소설이나 신문 매체가 지닌 역할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엘리트만의 게임이 아니라 대중동원도 요구되며, 대단히 이질적인 종족 간 분열과 문화적 유산의 통합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런 경우 대중들에게는 문자매체가 아닌 종교적 상징이나 음악과 미술, 건축물, 춤 등의 예술작품이 더 큰 호소력을 갖는다. 특히 문맹률이 80퍼센트 이상이 넘는 20세기 초의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앤더슨의 민족주의 연구 경향에 대한 반발로 최근 들어서는 일상적 삶의 영역, 즉 축제ㆍ의례ㆍ음악ㆍ미술ㆍ박물관 등과 같은 문화적 이벤트가 국민의 발명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런 경향에 발맞춰 벽화예술과 음악, 그리고 라틴 축구 문화에 주목하여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들 ― 벽화예술, 국민음악, 축구의 정체성 정치
제1장인 “멕시코 민족주의의 위기”는 1980년대 이후 개방화 과정 속에서 멕시코인들의 민족주의 정체성이 어떤 변모를 겪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일원적 민족주의 담론이 안팎의 다양한 압력에 밀려 다원화 경향을 띠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멕시코시티 중심주의에 대한 반발, 소수자의 권리투쟁, 치카노 사회를 통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미국 문화에 대한 노출, 남근중심주의의 약화 등이 다원화를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요소임을 말한다.
제2장 “문화적 민족주의의 변화를 통해 본 20세기 멕시코”는 20세기 문화적 민족주의 운동의 부침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국민적 정체성 찾기의 대표적 저자인 옥따비오 빠스의 <고독의 미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제3장과 제4장은 이 운동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혁명벽화 운동과 국민음악 운동을 사례로 살펴보고 있다. 제3장에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오로스꼬, 시께이로스의 벽화예술이 어떻게 멕시코인들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제4장에서는 음악운동에 흐르는 이원화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즉 예술음악 분야에서는 혁명 이후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흐름이 주도한 반면,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상업방송과 지주 과두제의 이해가 관철되어 보수화 과정을 밟았음을, 특히 ‘멕시코의 전형’을 창출한 대중음악의 경우 혁명 이전의 지주 과두제 사회의 상징물들이 다시 복구되는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음 밝히고 있다.
제5장과 제6장은 남미의 음악을 다루고 있다. 민중주의가 발전한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유럽형 계급정치가 발전한 칠레의 음악운동의 독특한 측면과 아르헨티나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인 팜파와 가우초 세계의 음악을 통해 도시의 탱고음악과는 대조적인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제7장에서 저자는 축구의 세계화 과정을 통해 본 정체성의 정치를 일별하고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토털 사커’가 탄생한 이후에 축구를 둘러싼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였는지 공급과 유통 부문을 나눠 살펴보고 있으며, 그 결과 ‘포스트포디즘형 축구’가 나왔음을 밝히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수렴 과정 이전에 축구가 라틴아메리카 세 국가(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의 국민적 정체성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나아가 유럽과 아시아의 정체성 정치에 어떤 기능을 했는지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