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
지은이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부르주아 유대인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20세기 헝가리 지성사에서 중요한 운동이었던 ‘갈릴레이 서클’의 초대 의장으로 선출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3세가 되던 1909년에 『거대한 전환』의 주된 주제가 되는 사상적 흔적을 엿볼 수 있는「우리 이념의 위기」를 발표하여, 그의 지적ㆍ사상적 여정의 단초를 놓았다. 이 해에 콜로스바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아 삼촌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가족 생계를 돕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군에 입대하여 동부 전선으로 파견되었으나 폐결핵에 걸리고 만다. 전쟁 직후 혼란한 헝가리 정세가 극우 반동세력의 쿠데타로 혁명 정권이 무너지자 폴라니는 빈으로 망명하여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 1923년 평생의 반려자 일로나 두친스카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빈에서 1924년부터 당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함께 서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지였던 『오스트리아 경제』의 국제 문제 담당 선임 편집자가 되어, 1938년 영국 통신원으로 기고할 때까지 정열적으로 이 경제지를 위해 일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자 영국으로 망명하였으며, 여기서 영국 자본주의의 실상을 보면서 시장경제의 출현이 가져다준 인류사적 충격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1935년 『파시즘의 본질』의 출간했으며, 1940년 미국 버몬트의 베닝턴 대학에 자리를 잡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44년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을 출간했으며, 1947년 캐나다 토론토 근교의 피커링에 정착함과 동시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반 경제사를 가르쳤다.

1957년 공동 연구서인 『초기 제국들의 교역과 시장』을 출간했으며, 냉전 시기인 1960년 버트란드 러셀, 아인슈타인, 사하로프 등과 『공존』(COEXISTENCE)이라는 잡지 창간을 위해 헌신했다. 1964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사후에 유작으로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 교역』(1966)과 『사람의 살림살이』(1977)가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