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아랍은 과학 선진국이었으며, 서양은 후진국이었다
1989년 영국인 소설가 살만 루시디가 소설 《사탄의 시》를 발표하자 이슬람교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이라며 소설가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시디와 그의 책 발간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피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후 루시디는 도망자 생활을 해야 했고, 이 책의 발간과 관련된 언론인, 번역가들은 상해를 당했다(이슬람교는 전통적으로 선지자와 그의 설교에 대해 어떤 형태의 공개적인 회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1277년 파리의 대주교 스테파노 탕피에르는 파리 대학에서 219개의 자연과학 가설이 의심스럽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철학과 신학을 분리하고 파리 대학의 교양학부에서 신학 문제를 토론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대학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는 많은 근거를 내세우며 연구의 권리를 주장했다. 결국 전통 기독교 교리와 새로운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가져온 이성과 논리의 힘이 한판 결투를 벌이게 되었지만 다양한 새로운 사고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이 두 예는 중세 시대 비서구 세계보다 여러 학문 분야에서 뒤처졌던 서양에서 근대 과학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밝히는 데 한 가지 단초가 된다. 즉 우주와 자연,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색을 시작한 서양은 기존의 정치, 종교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중립 공간을 허용하는 제도를 다듬고 만들어 내었다(바로 이 중립 지대의 철학적·법적·제도적 근원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도 하다). 또한 당시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공개 토론장에서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논쟁할 수 있는 권리를 제도와 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과학 혁명의 시작에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이슬람이나 중국에서는 전통의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도로서 정착하지 못했다.
사상의 자유와 자치권을 허용한 문명과 억압한 문명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자의 과학 정신을 얘기하면서 보편성, 공동체주의, 공평성, 철저한 회의론의 네 가지 제도적 원칙을 내세운다(나중에 머튼은 독창성이라는 원칙을 더했으며, 다른 학자들은 개인주의, 합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과학 정신이 이슬람 세계와 중국, 서양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8세기에서 14세기까지 아라비아 과학은 수학, 천문학, 광학, 물리학, 의학 모두를 통틀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수학에서는 알콰리즈미가 십진법을 개발했고, 수리천문학에서는 삼각법을 이용하고 있었으며, 의학에서는 인체 해부를 비롯해 매우 정교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도서 10만권을 소장한 공공 도서관이 여러 곳 있었으며, 학문을 전수하는 고등 전문학교인 마드라사는 다마스쿠스에만 150개가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하지만 중세 이슬람에서는 이슬람 율법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했으며 율법에 대한 토론이나 어떤 회의론도 허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슬람 사회에서는 대중이 법의 테두리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자치 공간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다시 말해 대대로 내려온 대가족 제도와 지식인의 비밀주의, 보편적인 규범에 대한 반발, 강력한 배타적 법률 체계가 법적 자치권을 가진 공동체나 교육 기구를 발전시키는 데 장애물로 작용했다.
반면에 유럽의 대학은 법적인 자치권을 가진 자치 집단으로 많은 법적 권리와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자체 내부 규칙과 규율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과 재산 소유권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공개 토론장에서 법적 대표성을 띠고 계약을 맺고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은 서양보다 400년이나 앞서 가동 활자 인쇄술과 종이를 발명하고, 숫자체계에 ‘0’을 도입하였으며, 셈판을 사용하였다. 또한 13세기에 이미 법의학 책을 편찬할 정도로 해부학이 발달했지만, 근대 과학으로 가는 길을 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중국에서는 종합적이고 일관된 자연 철학에 대한 탐구가 제한되었으며, 황제의 명령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자연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다. 완벽한 행정 체계를 구성한 강력한 중앙 집권의 중국 제국은 도시나 마을이 법적 자치권을 가지도록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현상은 정치, 사회,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전통적인 관료제 사회에서는 독립된 자치 교육기관이 세워질 수 없었으며, 따라서 철학, 과학, 의학, 약학 어느 분야에서도 연구의 자유와 법적 자치권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 등장할 수 없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당대 사회의 제도화된 사회 기구의 본질과 ‘제도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강조한다. 사회 제도는 사회 규범으로 체계를 갖추고 특히 그 시대의 법률적 형식으로 보호받게 되면 새로운 차원의 사회 문화적 변화가 효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즉 이 제도는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모습을 띠면서 사회, 정치, 경제 질서를 완전히 변환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근대 과학이 태동하는 데 제도의 재배치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작용하는지 많은 사례와 여러 학자들의 방대한 문헌을 통해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