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15,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잎사귀 모양의 도구와 찍개, 평평하고 둥근 긁개 등의 도구가 베네수엘라 서부의 강변(Rio Pedregal) 높은 언덕에서 발견되었다. 후기 구석기의 화살촉을 포함한 사냥 도구가 베네수엘라 북서부(El Jobo)의 일련의 사이트에서 발견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하면, 이들 유적은 기원전 13,000 ~ 7,000년 전의 시기에 해당된다.
16세기에 스페인의 베네수엘라의 식민지화가 시작되자, 토착민들은 조직적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구아이카이푸로(Guaicaipuro), 타마나코(Tamanaco) 같은 원주민들의 지도자들은 스페인의 습격에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 정복되었다. 타마나코는 카라카스의 설립자 디에고 드 로사다(Diego de Losada)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 베네수엘라는 1522년에 스페인에 의해 현재의 쿠마나(Cumaná)에서 식민지가 되었다. 이들 베네수엘라 동부는 뉴 안달루시아에 통합되었다. 16세기 초부터는 산토 도밍고의 아우디엔시아로부터 관리되었고, 18세기 초에는 베네수엘라의 대부분이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Virreinato de la Nueva Granada)에 속하게 되었고, 1776년 이후로는 도독령(Captaincy General)으로 개편되었다.
잇따른 봉기의 실패 후, 베네수엘라는 프랑스 혁명에 참가했던 미란다(Francisco de Miranda) 장군의 지휘 하에 1811년 7월 5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로부터 베네수엘라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어쨌거나, 1812년 카라카스 지방의 파괴적인 지진과 야네로(llanero)의 반란으로 베네수엘라의 첫 번째 공화국은 붕괴되었다. 1813년8월 7일에 선언된 베네수엘라의 두 번째 공화국은 수개월 간 지속되었다.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했다. 1819년에 콜롬비아, 에콰도르와 함께 대 콜롬비아 공화국을 이루다가 1830년에 분리를 선언하였다. 콜롬비아로부터는 1845년에 승인을 받았다.
안토니오 구스만(스페인어: Antonid Guzmán)은 정교 분리, 공교육 제도를 실시하는 등 베네수엘라를 국민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후안 비센테 고메(스페인어: Juan Vicente Gómez)의 통치 기간 중에는 석유에 관한 이권이 외국 자본가들의 손에 넘어갔다. 외국 석유기업의 수익에 대한 세율을 50% 인상한 석유법이 제정된 것은 이사이아스 메디나 안하르티아(스페인어: Isaías Medina)에 이르러서였고, 선거를 제대로 치러본 해는 1948년이었다.
하지만, 로물로 가예고스(스페어: Rómulo Gallegos)를 기반으로 한 정부는 1년이 못 가 군사 쿠데타로 폐지되고, 페레스(스페인어: Carlos Andrés Pérez Rodríguez) 시기에는 국가치안대(SN)을 신설하여 수많은 반대파를 탄압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히메네스 대통령은 80만 헥타르의 토지에 대한 석유 채굴권을 다시 외국 자본가들 손에 넘겼다.
히메네스 정권은 1958년에 국민의 힘에 의해 타도되고, 민주 행동당(AD)과 기독교 사회당(COPEI)의 양대정당 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비교적 안정된 정국을 유지해왔다. 1974년에 집권한 페레스 로드리게스(스페인어: Pérez Rodríguez)는 반정부 세력에 정치활동을 보장하여 사회협조를 현실화하는 한편, 특히 천연자원에 대한 민족주권회복을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하고 1976년에는 석유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하지만, 1989년 2월 재취임한 페레스는 이전까지 거부해온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도를 받아들여 금리자유화·공공요금 인상 등 긴축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에 시민들의 대규모 폭동이 야기되고 1992년 2월과 11월에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독직사건을 계기로 불명예 퇴진하였다. 이 쿠데타에는 우고 차베스(육군 중령)도 참가했다.
1994년 2월 기독교 사회당(COPEI) 소속의 라파엘 칼데라(스페인어: Rafael Caldera Rodríguez)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후, 여소야대 정치구도하에서 민주행동당(AD) 및 사회주의 운동당(MAS)과의 정치적 제휴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 왔으나 경제정책 실패 및 1995년 12월 지자제 선거참패로 인해 사회주의 운동당(MAS)이 이탈하면서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이후 개각을 단행하였다. 1996년 4월 국내유가 467% 인상, 외환통제 전면철폐, 변동환율제로의 전환, 도매세 및 사치품세 인상 등 경제개혁을 단행하였다.
칼데라가 물러나고 우고 차베스가 1999년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992년 쿠데타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2002년 4월 11일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차베스도 언론 탄압으로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B%B2%A0%EB%84%A4%EC%88%98%EC%97%98%EB%9D%BC#.EC.97.AD.EC.82.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