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년에 콜럼버스는 니카라과의 동해안을 발견하였고 이를 에스파냐의 영토로 삼았다. 이후 페드라리아 다빌라가 최초로 식민지 정부의 통치자로 군림하면서 원주민에 대한 전제적인 착취와 탄압, 가톨릭교회의 무자비한 종교정책 등이 자행되었다. 1821년 과거 정복자들의 후손들이 에스파냐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이래로 토지와 무역정책을 둘러싸고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1855년에는 미국인 노예상인 W.워커가 대통령을 자칭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엽부터 미국은 자국의 영향력을 보장하기 위하여 수차례에 걸친 무력 개입을 자행하였다. 1927∼1934년에 장군 산디노를 중심으로 한 게릴라 세력들은 이러한 외세의 개입에 대항하였으나 결국 역부족으로 패배하였다. 1936년 국가방위군장관인 A.소모사 가르시아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약 40여 년간 족벌지배체제를 유지하였다. 1961년에 산디노의 전통을 계승하여 결성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이 소모사 독재체제에 대한 무장 저항운동을 시작하였다.
1978년 반정부계 신문 《라 프레사》의 편집장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가 암살되면서 대중운동이 비등하였고, 1979년 무장투쟁과 도시의 대중봉기를 결합한 FSLN의 주도 아래 니카라과혁명은 성공하였다. 니카라과의 혁명정부는 산디니스타 혁명을 혼합경제, 민족단합에 기초한 민중적·민주주의적·반제국주의적 혁명으로 규정하고 무엇보다 국가주권의 보호와 국가재건을 강조하였다. 혁명정부는 정치적으로는 다원주의적 경쟁을 허용하여 야당의 자유로운 조직과 활동을 보장하였고, 경제적으로는 국가부문과 사적 부문을 동시에 용인하는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건설 작업은 미국의 지속적인 탈안정화정책으로 초기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콘트라 반군의 국경 침입, 국내 교란 등으로 예산의 25∼40% 가량이 군비에 지출될 수밖에 없었는데, 사회주의권과 유럽 서방국(특히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혁명 10년간 국민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산디니스타 좌익정부를 위협해온 미국은 지속적인 개입정책으로 혁명정부의 안정화를 효과적으로 저지해왔다. 산디니스타 혁명정부는 10년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원조 혜택을 누렸고, 소련과 쿠바와 같은 사회주의권과도 각종 관계를 맺으면서 연대를 강화해왔다.
10년에 이르는 전쟁과 경제적 피폐 때문에 대중들은 1990년에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등에 의한 국제 감시 아래 실시된 선거에서 산디니스타 좌익정부에 대한 지지를 상당수 철회하였고, 이 결과 미국이 지지하는 우파 야당세력이 중심이 차모로 정권이 탄생하였다. 이후 콘트라 반군이 무장 해제·해체 완료를 선언하고 산디니스타 인민군이 8만 명에서 1만 5000명으로 삭감되면서 내전은 실질적으로 종료되었다. 1990년 2월 선거에서는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의 미망인 비올레타 바리오스 데 차모로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이 승리하였으며, 민간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차모로 정권은 미국과의 관계를 수복하여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였고 아르놀도 알레만 정권도 차모로 정권의 외교노선을 계승하였다. 1995년 7월에는, 1987년의 산디니스타 헌법을 민주적 자유헌법으로 개정하였다. 1997년 1월에는 보수연합(AL)의 아르놀도 레만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2000년 1월 헌법개정안이 가결되었고, 2001년 11월 4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유헌법당(LCP)의 엔리케 볼라뇨스가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후보인 전 대통령 오르테가를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02년 1월에는 시장경제론자인 자유헌정당(PLC) 엔리케 볼라뇨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2006년 11월 최근 대선에서는 FSLN의 다니엘 오르테가 후보가 당선, 2007년 1월 10일 취임하였다. 우파진영의 후보단일화 실패와 더불어, 미국정부의 공개적인 오르테가 당선저지운동이 내정간섭이란 인식을 심어주어 니카라과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초래한 반면,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니카라과에 대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원유제공 방침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며, 선거기간동안 80년대의 급진좌파가 아니라 온건좌파인물로 변화되었음을 부각시킨 전략 등이 오르테가의 승리요인으로 분석된다. 오르테가는 국가의 안정과 국민화합, 특히 고용창출과 빈곤을 타파하고 외국투자자들에게 확신감을 심어줄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출처: http://www.wikipedia.or.kr/
[출처]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0173&cid=40942&categoryId=34154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니카라과
구글지도
https://www.google.co.kr/maps/place/니카라과/@12.8748398,-85.5600211,9z/data=!4m5!3m4!1s0x8f10c200ceff22cd:0xc8faa7e53fac15b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