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 작성일 : 2014-01-23 13:16:53 | 조회수 : 1,8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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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정체성은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는 국민총생산(GNP), 1인당소득, 연간 인플레이율과 같은 통계적 수치다. 무척이나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런 수치는 그 나라의 물질적인 부유함과 풍족함을 보여 줄 수 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지닌 질적 차원의 현실은 그대로 반영할 수 없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이런 분류 방식으로 국가별 순위를 매겨온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앞서 얘기했다시피 이러한 수치만으로 그 나라의 현실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양적 수치들은 제3세계 국가들이 외부에서 부여된 어떤 획일화된 기준 아래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평가만 남길 뿐이다. 반면에 어떤 나라와 민족이 지닌 진정한 정체성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은 정성적인 정보를 통해서다. 시간과 죽음을 인격화하는 사우다드 이 방법을 포르투갈에 적용시킬 때 즉시 연상되는 대표적인 감성은 시간과 죽음을 인격화시키는 ‘사우다드’(saudade)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이 지닌 정체성을 관통하는 ‘사우다드’를 우리가 ‘그리움’, ‘향수’, ‘한’으로 읽을 때 그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파두(Fado)’라고 본다. 이처럼 파두 안에서 포르투갈이 지닌 대부분 문화적 특성이 파악되고 포르투갈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파두는 단순히 듣고 즐기는 음악에 그치지 않고 그 사회를 바라보는 틀이 된다. 이처럼 음악에서의 정체성 표현은 그 문화에 내재한 기질과 성향의 표현이며, 포르투갈 사람들이 “모든 게 파두”라고 얘기하듯 포르투갈은 파두라는 음악적 선율에 자신의 문화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만족적 담론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뭉뚱그려서 실제로 맞닥뜨리는 복잡한 현실과 인간관계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 자체는 ‘그들’이 아닌 ‘우리’에게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고, 그런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모습도 재발견해 내는 시작점으로 주어질 수 있으리라. 흔히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문화코드로 세 가지를 꼽는다. 이른바 3F인데 ‘축구(Futebol)’, ‘파티마 성지(Fatima)’와 바로 ‘파두(Fado)’를 가리킨다. 파두의 기원은 선원의 노래, 죄수의 노래, 민요, 브라질 또는 아프리카에서 유래됐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가운데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식민지를 개척하러 떠난 수많은 포르투갈 인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라는 입장이 대세이다.
모든 것은 파두로 통한다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볼 때 결과적으로 파두는 유럽, 아프리카, 브라질 등 세 가지 문화권의 음악적 산물이 뒤섞인 예술양식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아프리카의 리듬과 12세기 포르투갈의 음유시인으로부터 전승받은 감수성과 시적 노랫말, 브라질 음악에서 유래된 악곡 형식이 합쳐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이전까지의 파두는 리스본 항구 선창가의 하층민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부터 점차 시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귀족 계층이 참여하게 되면서 현재의 파두로 정착하게 되었다. 19세기 이전까지 서민층에서 즐겨 부른 노래인 파두가 귀족들에게까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마리아 세베라’라는 한 파두가수가 귀족과 사랑에 빠진 사건이 생기면서였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마리아는 검정 숄을 어깨에 걸치고 술 취한 듯 노래를 불러서 뭇 남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를 기리는 뜻에서 검정 숄을 두르고 노래하게 되고 그로부터 현재 검은 색상의 의상에 검정 숄을 두르고, 때로는 와인 잔을 손에 들고 노래 부르는 파두가수들의 전통 복장이 되었다고 한다. 마리아 세베라가 파두의 선구자라면 포르투갈 국민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gues)는 파두가 포르투갈의 국민문화로서 완전히 정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재는 ‘베빈다(Bevinda)’, ‘미샤(Misia)’, ‘마드리데우스(Madredeus)’ 등의 활약으로 영미음악에 더 친숙해진 젊은 층에게 다가가기 위한 파두의 재해석과 재현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전통과 현재 사이의 공존 길목을 찾고 있다. 파두의 어원은 ‘숙명’일까? 파두는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둠(Fatum)’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 파두에서 풍겨 나오는 강력한 향수와 향을 사우다드라고 부른다. 포르투갈인들이 지구상의 어떤 언어로도 번역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사우다드(saudade)’는 우리가 말하는 한(恨)이나 그리움과 비슷하지만 그렇게 쉽게 해석될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단순히 고향과 같은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네 ‘한(恨)’이란 단어만큼이나 번역하기 곤란한 ‘사우다드’란 말은 어떤 것에 대한 갈망과 상실을 동시에 표현할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잃은 슬픔과 절망은 물론 그것을 얻으려는 희망과 얻었을 때의 기쁨까지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이고 모순된 감정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한다. 사우다드는 항상 부족하고 피곤한 삶을 살 수밖에 없던 리스본 뒷골목 하층민의 음악이던 파두의 기본 정서였다. 미국의 뒷골목에서 블루스가 탄생했듯 그들 역시 삶의 고단함을 음악으로 형상화하고 공유함으로써 개인을 옥죄는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파두는 ‘삶이 슬픈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내일의 행복을 말하기도 한다. 고뇌와 기쁨을 동시에 표현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추억이나 표현,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향수나 애정,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하는 그리움을 담고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사우다드’는 자신만의 역사가 녹아 있는 포르투갈의 독특한 슬픈 정서로서 신세계를 향한 욕구와 고향을 향한 향수 사이에서 방황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바로 그 감정을 관통하는 “인간은 운명의 노리갯감이다”라는 다소 염세적이고 체념적인 민중의 독특한 인생관이 겹쳐져 탄생한 ‘사우다드’라고 한다.
독재의 슬픔에 아프리카·브라질 정서가 합쳐지다 애초부터 숙명적인 정서를 토대로 한 파두가 한층 더 애조를 띠게 된 것은 포르투갈 현대사에서 40년간의 독재시대(1932~1968)와 관련이 깊다. 살라자르(Salazar) 독재정권의 철권정치로 또다시 ‘운명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한 포르투갈 민중은 더욱 자신들의 처지를 ‘사우다드’라는 국민적 정서로 내재화하여 ‘파두’를 통해 표현했다. 이 ‘사우다드’는 우리네 민중가요 ‘아침이슬’이 그랬듯 ‘파두’를 매개로 민중의 애절하고 체념적이기 조차 한 현실의 막막함을 드러내지만 반대로 희망과 기쁨의 카타르시스 역시 동반했다. 매력적이고 호소력이 강한 음률로 슬픔이 슬픔을 위로한다는 게 파두의 큰 매력이기도 하다. 어쨌든 ‘파두’가 우리에게 전해지는 감성은 이질감보다 동질성이 많다. 그 증거로 방송과 광고 제작자들에 의해 많은 파두 곡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광고나 드라마 삽입곡으로 활용된 사실을 들 수 있다. 드라마 삽입곡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노래는 바로 1987년에 MBC에서 방영된 ‘사랑과 야망’(리메이크 SBS 2006년)에 삽입된 ‘검은 돛배’(Barco Negro)였다. 포르투갈판 망부석이라 할 수 있는 이 배경음악(BGM)으로 극중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의 내면을 대사 없이도 시청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했다는 평을 받은 사례로 유명하다. 사실 당시만 해도 그 BGM이 ‘파두’였는지 파두가 포르투갈의 음악인지 아는 사람도 드물던 시대였지만 ‘파두’가 전하는 숙명론적 분위기가 당시 우리 사회의 시대상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불리고도 우리 국민들의 ‘블라인드 면접’을 통과한 파두가 그런 위업을 이룬 것은 음악적 매력과 언어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포르투갈의 조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났다. 17세기 중엽에 처음으로 우리 역사문헌 ‘등록유초’에 우리나라에 포로로 체류한 주앙 멘데스(Joao Mendes)라는 포르투갈 상인 이름이 등장한다. 일본이 처음 받아들인 서양문물이 포르투갈의 것이었고 일본을 매개체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포르투갈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사바웅=사분(비누), 덴뿌라=튀김, 바란다=베란다, 빠웅=빵, 꼬뿌= 잔, 타바코, 플라스크 등). 문명학자 토인비는 두 문명권이 만날 때 먼저 의식주와 같은 가장 피상적인 수준의 교류가 발생하고 그 이후에 비가치적인 가치체계의 교류가 발생한다고 통찰한 바 있다. 유럽대륙의 끝 포르투갈과 아시아대륙의 끝 한국 세계 지도를 쫙 펼쳐 보면 유럽의 남서쪽 끄트머리에서 북쪽은 피레네 산맥과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대륙과 경계를 이루는 이베리아 반도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 이베리아 반도의 대서양과 접한 모서리에 포르투갈이란 나라가 있다. 과거에 유럽 사람들이 유럽중심주의 시각으로 포르투갈을 ‘땅 끝’이라고 표현했지만(실제로 ‘호카 곶’에 가보면 ‘여기에 땅이 끝나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시각을 달리하면 지중해에서 대양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자 대양에서 대륙으로 들어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징을 지닌 포르투갈은 과거로부터 독자적인 전통을 지켜온 나라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 전통은 고립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을 거쳐 포르투갈을 통해 교차된 동·서 문명 교류 흔적의 결과이다. 이제 포르투갈의 ‘파두’는 전근대사회에서 태동되어 ‘근대사회’, 즉 보편적 개념이 우선시되는 시대에도 포르투갈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의 전달과 느낌에 모자람이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파두는 이른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에 화답하는 몇 안 되는 사례의 하나이다.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전통적인 파두의 재해석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하더라도 포르투갈 음악은 그들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파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파두 역시 포르투갈이란 맥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 파두가 전하는 ‘사우다드’는 포르투갈만의 것이 아닌 분명한 보편적 정서로 천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 이렇듯 ‘파두’는 ‘자신의 정서’에 보편성을 개별적으로 이해시키는 모습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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