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주 (중남미지역원 HK교수) 과테말라시티에서 밤 11시경에 버스를 타고 밤새도록 덜컹덜컹 달리다가 눈을 뜨면 떠오르는 햇살 아래로 드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뻬뗀 이쯔아(Peten Itza) 호수이다. 호수의 중간에 있는 플로레스(Flores)는 현재 뻬뗀(Peten)이라고 부르는 넓은 지역에서 흥망을 하였던 수많은 마야 도시들을 만나러 가는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여기서부터 그들의 고대도시 방문을 시작한다. 새벽 5시경의 플로레스 호수 플로레스에 온 관광객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은 띠깔(Tikal)이다. 띠깔은 마야문명이 화려하고 찬란했던 고전기의 가장 큰 도시이다. 열 명 정도가 타는 작은 승합차가 유적지 입구에서 멈추었다. 들어가는 시각표를 받기 위해서이다. 유적 앞까지 약 8km의 거리를 20분 이상 걸리게 천천히 달려 유적 입구에서 시각표를 내놓아야 한다. 주위의 동물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3,000여개가 있다는 광활한 유적지는 동시에 '생태 공원'이기도 하다는 것. 작은 승합차는 느릿느릿 달렸다. 전남 화순에 '고인돌 공원'을 지정하면서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고인돌 사이에 자동차 도로를 낸 우리나라의 행정가들 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들의 뒤를 따라 가며 작은 흙더미를 오르다가 마지막에는 계단을 밟고 올랐다. 피라미드의 뒷면으로 올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녹음이 펼쳐진 마야의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건물 옆에 나 있는 좁은 공간을 돌아 앞으로 나서니 죽 늘어선 비석과 제단들, 지붕이 무너진 건물들, 그리고 건너편의 또 하나의 피라미드가 영화처럼 펼쳐졌다. '잃어버린 세계'이다! 기원전 350년경부터 띠깔의 왕이 묻히기 시작하여 고전기 마야문명이 쇠퇴한 1000년 전후까지 왕가의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물론 마야문명 피라미드의 주된 역할은 신전 및 행정의 중심이었으므로 선조들이 묻힌 이곳은 신성한 장소이자 동시에 정치의 중심지였다. 띠깔에서 중심지가 이곳만은 아니다.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무더기들이 모두 신전과 부속건물들이 모여 있는 '잃어버린 세계'와 같은 아크로폴리스(Acropolis)들로, 역시 왕족들이 묻혀 있는 중심지로 추정한다. 발굴 책임자인 고고학자 고메스(Oswaldo Go?mez)에 의하면 현재 발굴되어 일반에게 공개된 지역은 조사된 유적지 총면적의 10% 미만이라고 한다. 이미 전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고고학의 기술이 발전하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발굴한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세계', 피라미드와 부속건물, 비석과 제단, 공놀이 장 등이 모여 있는 전형적인 '마야의 아크로폴리스'이다. '잃어버린 세계'를 떠나 뻬뗀 이쯔아(Peten Itza)의 잔잔한 호수 위를 움직이지 않는 듯 조용히 저어가는 배를 타고 호수 안쪽으로 뻗어나온 따야살(Tayasal)에 도착하였다. 유까딴 반도 북쪽 끝에서 마야문명의 마지막 시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치첸 이쯔아(Chichen Itza)를 세운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와 세운 마지막 도시이다. 이곳은 1697년 3월 13일, 마르띤 데 우루수아가 배에서부터 포격을 한 뒤에 상륙하여 마야사람들의 마지막 피라미드와 제전 중심지를 파괴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야문명은 막을 내리고 메소아메리카 전체가 스페인 식민지배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유적의 입구에 들어서면 녹색의 풀로 뒤덮여 꽤 높은 언덕을 이루고 있는 피라미드가 보인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그 넓은 유적지가 부산스러운 띠깔에 비하면 이곳은 참으로 조용하여 고즈넉하기까지 하다. 피라미드에 올라서 물로 둘러싸인 주위를 바라보는데 문득 한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이 보였다.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길을 따라가 보았다. 가끔 돌무더기가 있고 그 위로 풀이 덮여 있어서 피라미드에 이어지는 부속 건물들, 또는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할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길이 끝나고 둥글게 넓은 공간에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공간이 있고 그 위에 낯이 익은 비석이 서 있었다. 마야의 비석이다! 마지막 마야사람들은 어떤 기록을 비석에 남겼을까? 비석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비석의 뒷부분에 새겨진 것이 닳아 없어진 흔적과 구멍이 있었지만 전형적인 마야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비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해가 조금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공간을 벗어나서 오솔길을 다시 걸어 나왔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나와 마지막 마야 사람들과의 대화를 방해하는 존재는 없었다. 하긴, 그들이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인가. 마야사람들이 계속 존재할 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이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야사람들이 남겨놓은 건축과 물건들뿐이었다. 파괴자들은 마야사람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셀바 깊숙이 도망가 버렸다. 뻬뗀의 숲은 건조하고 흙이 적은 유까딴 북부와는 다르다. 기름진 뻬뗀의 흙과 풍부한 호수와 강의 물, 그리고 더운 날씨는 나무와 풀이 빽빽하게 자라는 환경을 만들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몇 년간 숲을 뒤졌다. 마야 사람들은 그 숲 속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고 굶어 죽기도 했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을 마을로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5-6년 후 따야살을 무너뜨린 스페인 사람들은 떠났다. 그러자 마야 사람들은 마을로 나왔다. 오늘날에도 이 섬에는 이쯔아 마야어를 말하는 약 4000여명의 마야사람들이 살고 있다. 말없이 서 있는 따야살의 비석에서 끝나지 않는 마야문명의 존재가 느껴졌다. 따야살 유적지의 한쪽 구석에 외로이 서 있는 깨어진 비석(왼쪽). 가까이 찍은 모습(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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