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37:16 조회수 : 1,502
국가 : 멕시코


 

부산외국어대학교 글로벌지역학과 중남미지역학 석사과정 /
연세대학교 글로벌헬스센터 객원연구원 김은환

 

스물두 살에 처음 밟아본 타국 땅 멕시코에서의 경험은 비단 스페인어 어학연수 뿐 만 아니라,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었다. 중남미 전역에서 뿌리 뽑을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또한 거대하게 존재하는 빈부격차를 직접 본 것을 계기로 나의 진로를 통째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 작은 시작은 내가 다니던 대학에 가려고 버스를 탔을 때의 일어났다.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내 눈을 의심하는 일들이 무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신호 대기를 받고 정차중인 차주들을 대상으로 차선 사이로 사람들이 간식이나 음료를 파는 모습이었는데, 문제는 거리의 사람들의 ‘연령대’였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인격을 형성 시켜야 할 나이의 꼬마들은 껌, 사탕 등 간식을 팔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의무교육 받고, 우리나라 같으면 학원에 있을 법 한 나이의 청소년들은 페트병에 거품 물을 담아 정차 중인 차량 앞 유리 청소를 하며 푼돈을 벌고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도로교통을 지도하는 경찰이 그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후미진 동네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중교통이 다니는 일반 거리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는 그 누구도 거리의 아이들과 사람들의 상황에 관심 갖지 않았다.

 

위험한 차도에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중남미 아동들

 

중남미 여성과 아동 인권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이러한 사회 양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왜 이 아이들은 거리에 있는 것일까. 누가 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양상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무도 이것이 아동노동력 착취에 해당하는 일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한 나의 질문은 나의 진로를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나의 전공으로 중남미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소득층 그리고 취약계층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가 개발도상국 내에 존재하는 개발 및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빈곤문제 해결을 통해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과 행동인 국제개발협력 분야 전문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의 실천의 일환으로, 나는 두 번의 국제개발협력 분야 현장을 경험했다. 한 번은 파라과이 농업기술개발사업, 다른 하나는 페루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강화 사업이다. 이 글을 통해서는 나의 페루에서의 국제개발협력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래의 그림에 익숙할 것이다. 바로 UN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만든 새천년 개발목표,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 MDGs다. MDGs는 국제개발협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MDG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구체적인 공동 목표로서, 지난 10여년 동안 실질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제개발 규범으로 작동하였다. 또한 빈곤퇴치와 보편적 교육, 질병감소 등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MDGs의 여덟 개 목표 중 4, 5, 6번이 모자보건과 에이즈 퇴치 등으로 명시됨에 따라, 국제 보건 분야는 MDG 달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은 분야이다.

 

새천년 개발목표,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 MDGs

 

이와 같은 세계적인 동향에 맞게, 대한민국 역시 국제개발협력 파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조 수여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최초의 국가이며, OECD/DAC 가입국으로 전 세계 개발도상국 및 빈국에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원조 실시 체계를 보면,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 (KOICA)가 무상원조,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수출입은행이 유상원조를 담당하고 있다. KOICA는 원조를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 까지는 보건소 건립, 봉사단원 파견, 연수생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여 보건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인프라 구축과 의료인력 파견에 힘썼다. 나의 경우 2014년 8월부터 2015년 8월까지 1년 간 남미 페루의 수도인 리마와 제 1의 항구도시인 까야오(Callao) 지방에서 KOICA와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 연세 글로벌 헬스센터에서 공동으로 진행 하는 ‘페루 북 리마 및 까야오 지방 건강증진 프로젝트’의 주니어 컨설턴트 및 모니터링 요원으로 1년간 파견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KOICA의 첫 보건소 건축 사업은 바로 내가 1년간 관리했던 페루의 까야오지방 베야비스따 보건소(Centro de Salud Materno-Infantil de Bellavista Perú-Corea) 건축이다. KOICA는 이를 기반으로 페루 전역에 9개 병원을 건축하고 증축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원조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KOICA는 하드웨어 장착 사업이 아닌 보건소 내 프로그램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장착 사업을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페루 하면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화려한 리마의 야경이나 꾸스꼬의 마추피추 등 화려한 잉카 문명과 이국적인 관광문화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개발협력, 국제보건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더 많이 필요하지 중남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의 사진은 페루의 화려한 이미지 뒤에 가려진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에 나온 지역은 위에서 언급한 베야비스따와 같이 1년간 내가 관리했던 까야오 지방의 빠차꾸떽(Pachacutec)이라는 지역이다. 사진에서와 같이 많은 도시 빈민들이 제대로 된 집을 구축하지 못하고, 또한 식수로의 접근 용이성이 매우 떨어진 상태로 살고 있다. 지역명인 빠차꾸떽이 잉카문명의 가장 위대한 왕의 이름인 것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achacutec 지역 전경과 대부분의 주거지 내부의 모습. 집은 주로 나무판자나 종이상자로 만든 임시가옥이다. 10년 전에는 낡은 헝겊을 엮어 만든 주거지도 많았다고 한다.

 

내가 몸담고 있었던 프로젝트의 경우, 건강증진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사업지역 내 보건소를 찾는 18세 이상 성인을 위한 비전염성 질환 관리, 모자보건사업, 청소년을 위한 보건교육 사업을 진행하였다. 첫 출근 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담당했던 두 지역, 즉 베이비스따와 빠차꾸떽은 같은 구획 안에 존재하면서도 전자는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이고 후자는 가장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빈부격차라는 것은 도시간의 문제가 아닌 한 구획 안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두 지역은 왜 이렇게 다를까. 이를 바꾸기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상황이 다른 만큼 대두되는 보건문제도 달랐다. 베야비스따 지역의 경우 리마와 매우 가깝고, 리마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위성도시의 개념이었다. 또한 이 지역은 고령 환자들이 많아서 노인을 위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나, 지역 보건소 내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건강 행동 교육, 혈압체크, 자가 건강진단 교육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보건 상식을 쉽게 알려주는 활동을 하였다.

이와 반대로 빠차꾸떽은 까야오 내 최 빈곤지역으로, 주로 도시빈민들이 이른바 ‘달동네’를 이루고 살고 있으며, 지방에서 리마로 상경한 뒤 자리를 잡는 동안 잠시 거쳐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베야비스따 지역에 비해 인구연령대가 낮으며, 아직까지 비전염성 질환의 중요성 보다는 전염성 질환이나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해서 생기는 질환, 모자보건 분야의 개선이 시급한 지역이다. 따라서 청소년 임신 방지 및 가족계획을 위한 성과 출산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가임기 여성 및 임산부를 대상으로 진행하였고, 임산부들의 산전관리를 독려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중남미지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보건 분야의 지식이 전무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에서 업무를 진행하였으니 힘든 점이 많았다. 그러나 보건관련 법안을 만드는 정책결정자부터 프로그램의 직접 수혜자인 지역주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우리나라의 원조 수여 성공사례를 공유하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익혔다. 말로만 하는 국제협력이 아닌 원조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귀한 경험을 하며 타문화에 대한 이해, 커뮤니케이션 능력, 인내심,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단어는 UN이라는 큰 단체의 이미지나 해외봉사단 등의 단편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등 그 경우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나는 1년간의 경험을 빗대어 감히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광범위하며, 진중하고, 미래 지향적이며, 콤플렉스 하며, 젊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까지 많은 관심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원조가 많이 필요한 국제개발협력 파트와 중남미, 그리고 페루. 많은 부분에서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는 분야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시련과 고난을 주었지만, 페루에서 활동했던 1년간의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한 국제협력개발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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