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최명호 | 작성일 : 2019-03-21 00:18:28 | 조회수 : 2,990 |
국가 : 멕시코 | ||
원문링크 : http://www.emerics.org/www/issue.do?systemcode=06&action=detail&brdctsno=261633 | ||
출처 : http://www.emerics.org | ||
발행일 : 2019.03.20 | ||
전국적인 시위 및 폭발 사고 발생
한편, 2019년 1월 20일 송유관 절도 과정에서 73명이 폭파사고로 사망했다. 지하에 매설된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휘발유를 훔치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휘발유와 디젤 혹은 유사 석유를 암시장에 파는 이들이 와치꼬레로(Huachicolero)라고 하는데 암시장이 발달한 멕시코에서 와치꼬레로는 예전부터 볼 수 있었던 것으로 2014년 전국에서 14개의 전문 석유절도단이 검거되기도 했다. 문제는 유가가 인상된 201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 1만 건 이상의 석유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국영 석유기업인 페멕스(PEMEX, Petroleos Mexicanos)는 2018년에 송유관에 구멍을 몰래 뚫은 뒤 관을 연결해 석유를 빼돌리다가 적발된 사건이 2017년 6,873건보다 약 두 배인 1만 363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드릴을 이용해 송유관에 나사형 밸브를 장착한 후 조직적으로 절도행위를 하는 석유절도단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특히 하층민을 중심으로도 일상화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가 멕시코에 있던 2013년에도 고속도로 주변 등에서 10리터 플라스틱 통에 담긴 훔친 휘발유를 일반 가격보다 싸게 파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2019년 현재 상황은 더 악화된 것 같다. 2016년 기준으로 석유절도 행위로 인한 페멕스의 손해는 10억 달러였는데, 2019년 기준 실제 손실(3년 누적액)은 30억 달러 이상으로 예상한다.
멕시코 정부와 페멕스가 지난해 10개월 동안 발견한 송유관 구멍은 1만 2,581개에 달했다. 매일 42개의 구멍이 생기는 셈이다. 특히 최근 수년 사이 세력을 급속도로 확장한 석유 절도 갱단은 과거에 평온했던 멕시코 중부 지역을 폭력으로 물들이고 있다. 갱단은 종종 한 마을 전체 주민을 동원해 망을 보도록 하면서 출동한 경찰의 현장 접근을 아예 막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페멕스에 부과되는 석유 관련 세금은 멕시코 연방 정부 수입의 30~40%를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16%에 달한다. 단일 품목으로는 단연 최대 규모다. 다시 말하면 페멕스의 개혁은 멕시코 전체의 개혁과 연결되며 뿌리 깊은 부정부패의 구조적 고리를 끊는 마스터키인 것이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개혁 조치
송유관 가동을 중단하고 송유관에 대한 조사 및 대대적인 보수를 실시했다. 그러나 유조차를 이용한 휘발유 공급으로 수급에 차질이 생겼고 석유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2019년 3월 현재 석유 수급의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고 송유관만이 아니라 페멕스 주요시설에 군이 배치되어 지키고 있으며 석유 절도 또한 1/7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상황은 반전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는 25억 달러 이상의 휘발유가 확보되었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25억 달러의 휘발유 암시장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 50억 달러의 효과가 나타날 것을 의미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일반 시민들의 모럴헤저드가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물리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암로의 페멕스 개혁은 석유절도를 막는 것만이 아니라 페멕스의 체질 개선과 에너지 수급의 구조적 변화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페멕스는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것은 사내 지속된 구조적 병폐, 부정부패, 비리 등과 이로 인한 부채의 급증, 생산량 저하, 설비 낙후 등 인프라 전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페멕스에 대해 35억 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추가 지원을 약속하는 등 페멕스 정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암로는 당선 직후 새로운 유전개발을 위해 40억 달러를 투입하고 대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정유시설을 건설하며 2년 안에 원유 생산량을 600만 배럴로 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다음의 세계 4위 원유 생산국이 되겠다는 의미인데, 현재 멕시코는 하루 약 20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기에 원유 생산량을 3배로 증산한다는 계획이다. 유가가 약세인 현재 실현 가능성과 증산에 다른 효과성은 의문이지만 증산 계획이 달성된다면 멕시코의 재정 건전성은 상당히 개선될 것이다. 한편, 2017년 휘발유 가격 상승 요인이던 환율 상승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급의 구조적 한계, 다시 말해 대미 휘발유 수입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휘발유 가격을 조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운영 중인 정유시설의 현대화에 26억 달러, 3년 안에 새 정유시설을 건설하는데 84억, 달러, 총 11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현재 새로 건설될 정유시설의 규모를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향후 멕시코에 석유화학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새로운 석유화학 원료 및 중간재 공급지로 멕시코의 부상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좌파로 알려진 암로의 이런 행보는 제 2의 차베스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와 의심을 확실하게 불식시키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석유절도 근절을 통해 약 50억 달러 이상의 효과가 예상되고 석유산업 인프라에 대한 150억 달러(약 17조 원) 투자로 대규모 경기 부흥 효과가 예상된다. 물론 예상한 성과가 예정된 기간에 나오지 않을 경우 암로는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지만 국가 재건당이 국회의 과반이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암로는 대통령 전용기 매각 절차 개시, 경호 인력 축소, 이코노믹 클래스 이용, 구형 SUV 운행 등 비용감축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은 대형 미디어를 통해서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일반대중, 특히 청년층에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긴축재정, 공무원 봉급 삭감 등 파격적인 조치를 시작으로 대규모 인프라 투자까지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세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 밝혔기 때문에 추가 세원이 확보되지 않는 한 민간 혹은 해외투자가 담보되어야 한다.
2018년 10월 1994년부터 시행돼온 나프타(NAFTA)를 대신할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이 서명되었다. 주목할 부분이 여럿 있지만 멕시코의 자동차 생산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를 통해 미국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일어나고 북미 비핵화 협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바로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의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주의'를 앞세워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의 멕시코 진출에 제동을 건 상황에 중국 자동차 업계가 멕시코 진출을 선언했다. 바둑의 수, 집짓기로 본다면 중국은 아마도 가장 먼저 페멕스의 인프라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유 소비량이 많은 인도 등의 원유 수입국이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일 수 있으나 중국계 자본이 멕시코 석유산업에 투입된다면 암로 계획의 현실화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부정부패 해소와 더불어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자주적 공정 국가 확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런 과감한 개혁은 기존 기득권 세력의 저항 때문에 목표한 성과를 얻지 못하거나 중간에 좌초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 암로의 상황은 좀 다른데, 이 시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다. 2017년 1월 20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첫 공격대상은 멕시코였다. 예정되었던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까지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의 건설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하지 않는다면 멕시코 수출상품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했다. 이후 나프타의 불공정성을 강조하며 멕시코를 강력하게 압박하였다. 이를 계기로 멕시코에 대대적인 반미 정서와 더불어 내셔널리즘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9일 최대 진도 8.0에 가까운 강진이 수도 멕시코시티에 덮쳤다. 369명이 사망했고 1,9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하지만 붕괴된 건물에서 생존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생존자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재난을 극복하는 멕시코’라는 이미지에 사람들이 단결하기 시작했다. 또한 연방정부가 멕시코 총 예산의 4.1%에 해당하는 2,000억 페소를 긴급 투입하여 재난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멕시코의 내셔널리즘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화되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암로와 국가 재건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분위기에 이면에는 ‘미국과 경쟁해서 우리도 이길 수 있다’를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순간적으로 높아진 멕시코의 내셔널리즘 혹은 애국주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외교에서 페냐 니에토 전 대통령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자기모멸로 빠질 수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급속도로 퍼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암로의 포석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할 정도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현재 지지율인데 2019년 2월 1이 현재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긍정 86%, 부정 13% 역대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에너지 자급을 위한 개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식량주권의 문제이다. 1994년 나프타 체결 이후 저가의 미국산 옥수수와 기타 농산품이 수입되면서 멕시코 농업이 붕괴되었고 농민들은 도시 빈민으로 유입되거나 불법 이민자가 되었다. 늘어난 도시 빈민은 범죄율 상승을 야기했고 불법 이민자 문제는 여전히 미국과 멕시코의 문제이다. 현재 멕시코는 미국이 중국과 캐나다 다음으로 농산품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며 멕시코의 주식인 옥수수 가격 외부적 요인에 결정된다는 점은 식량 안보에서 치명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미 암로는 잃어버린 식량 주권을 되찾을 것이라 여러 번 밝혔으며 자급자족을 위해 농산물 생산 가격을 유지하고 저렴한 값에 비료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아마도 암로의 다음 행보는 식량주권 확보일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어느 선 이상의 성과를 낸다면 암로는 국가 지도자로 국제적 명성을 얻을 것이며 멕시코 혁명 3.0은 성공적이라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암로는 멕시코의 진정한 제도 혁명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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