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역사와 정체성의 중심, 흑인 역사와 문화
축구, 삼바, 커피. 우리가 ‘브라질’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문화나 상품에는 모두 브라질 흑인의 삶이 담겨 있다. 펠레나 네이마르 같은 축구스타들은 흑인의 후손이고, 삼바는 1910년대에 시작된 흑인 민중 예술이다. 그리고 대서양 노예무역이 활발했던 16~19세기, 브라질로 팔려 온 아프리카 흑인들 중 다수는 커피농장에서 착취되었다. 그러나 2014년 월드컵의 열기, 그리고 2016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브라질의 번쩍이는 표면 아래 꿈틀거리는 역사와 문화는 우리에게 생소하기만 하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출간된 브라질 관련 서적 중, 브라질의 흑인 인구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없었다. 브라질의 탄생과 번영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면서도 인종차별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난 브라질 흑인들. 그래서『브라질 흑인의 역사와 문화』는 브라질의 핵심을 보여주는 창이다. 브라질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기초지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인종의 나라로 알려진 브라질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다문화 담론과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그들의 노동력으로 세운 나라 브라질
브라질 흑인의 역사는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아프리카 흑인 남녀와 어린이들을 포획하기 시작한 15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예매매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종족 간의 전쟁 후 이뤄진 포로 포획이나 이슬람 상인들의 노예무역에 비해 대서양 노예무역은 그 규모와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유럽에서 온 상인들은 ‘무덤’이라 불린 노예선에 흑인들을 실어 날랐다. 실제로 많은 흑인들이 항해 중에 사망했음은 물론, 노예선에 들어서는 것은 이른바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삶의 마감이었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노동력 상품이었고, 바다를 건너는 장거리 이동은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차단했다. 게다가 콩고의 경우, 기존에는 귀족이나 왕의 지배하에 노예무역이 이루어졌지만,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진출 확대와 함께 이러한 현지 권력층의 개입 없이 매매가 이뤄졌다. 노예는 포르투갈에 대한 현지 화폐의 대용 수단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포르투갈 상인들은 수백만 명에 이르는 노예들을 브라질에 들여왔다. 저자는 아프리카인들 없이는 포르투갈이 브라질이라는 드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 서술한다. 16세기 포르투갈은 식민지 땅에 이주시킬 충분한 인구를 갖고 있지 않았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과 그 후손들, 노예가 된 원주민 인디오들은 브라질 밀림에 길을 내고 마을을 형성한 실질적 개척자였다. 광산, 농장, 공장은 물론 집안까지 노예 노동력에 의지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따라서 저자는 노예제도가 지속된 “300년 이상 브라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고 또 수출되었던 것 대부분이 노예노동 착취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억압 속에서도 만들고 지켜낸 공동체와 문화
노예상이나 주인은 ‘생산 도구’로 존재하는 노예의 가족이나 종족, 종교적 유대관계를 배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흑인들은 노예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다. 같은 업종이나 주인에 소속된 이들은 고향, 언어, 종교적 차이를 넘어 포르투갈어의 기초와 같은 생존 전략을 공유했다. 살바도르에는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거나 노예폐지문서를 사려는 노예들을 위해 돈을 저축하는 조합, ‘준따’도 존재했다. 주인의 집과 약간 떨어진 노예들의 집단 거주지 쎈잘라에서는 주인의 개입을 피해 가족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예 생활이 가져오는 가족 해체의 결과 앞에서, 흑인 노예들은 상징적인 친족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많은 주인들은 노예들에게 가톨릭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했는데, 노예들은 가톨릭교의 전통을 이용해 명망 있는 친척이나 노동 현장의 동료를 대부·대모로 임명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종족의 흑인들은 각자의 토속종교와 가톨릭교를 결합하여 깐돔블레라는 아프리카계 브라질 토속종교를 창조했고, 여기에서 ‘성인가족(聖人家族)’을 만들어 아프리카에서 존재했던 가족을 재구성하기도 했다. 고된 노동과 억압 속에서도 흑인들은 나름의 유대관계를 만들어 자유와 해방을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창조했던 것이다.
▶카니발, 삼바, 까뽀에이라: 흑인 민중 문화가 브라질 문화가 된 이유
오늘날 브라질 문화의 상징인 카니발은 과거에 경찰의 감시와 제재의 대상이었다. 세계 최대의 카니발이 열리는 히우 지 자네이루에서 카니발 행렬이 처음 나타난 것은 20세기 초 ‘작은 아프리카’ 지역에서였다. 이곳에서 브라질 흑인들이 창조한 토속 무술 까뽀에이라 수련자, 흑인 부두노동자, 그리고 깐돔블레 사원이 서로 교류하며 카니발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흑인들은 언제라도 폭동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의심받고 있었고, 경찰은 카니발이 무질서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행진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런 정부 제재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삼바였다. 1910~20년대 싸웅 빠울루 시에서 삼바 뮤지션과 무용수들이 모여들어 그들 나름대로의 카니발을 실행했다. 그 이전까지 경찰의 감시를 피해 지하실이나 천막 속에서 추던 삼바 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 시기 브라질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인종과학에 발맞춰 브라질을 유럽인, 아프리카인, 인디오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혼혈국가로 정체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기득권층의 관심과 맞물려 카니발과 삼바는 민족문화로 승격되었다. 흑인 노예들이 주인 몰래 숲에서 연습하던 호신술 까뽀에이라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브라질 고유의 스포츠가 되었다.
▶브라질은 혼혈인의 나라? 인종 민주주의의 실체
브라질인을 떠올릴 때 특징적인 것은 흑인이라 하기에는 너무 밝고, 백인이라 하기에는 어두운 갈색 피부이다. 1920년경 브라질의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대두하여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종 민주주의’는 브라질을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그리고 원주민 인디오의 혼혈로 유래된 동질적이며 단일한 문화를 지닌 국가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혈 브라질인의 탄생에는 ‘백인화’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혼혈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브라질은 백인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혼혈화야말로 백인화를 향한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흑인과 인디오라는 열등 인종이 브라질 국민들에게 남겨놓은 표식을 가장 진보한 인종인 ‘백인’이 개선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럽노동자의 이민에 대한 투자와 흑인 및 아시아인의 이민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졌다. _「20세기 흑인의 사회투쟁」, 174쪽
300년이 넘게 지속된 노예제도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남겼다. 여전히 브라질 극빈곤층의 다수는 흑인이며, 이들은 교육이나 취업, 의료와 주거 등 삶의 전반에서 불평등을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브라질 흑인들이 펑크, 레게 등의 팝문화와 미국의 흑인 시민권 운동과 교류하며 만들어낸 삼바-레게, 흑인운동(movimento negro) 등을 다루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저항의 불씨들을 살핀다. 노예제도의 억압 아래에서도 그랬듯, 브라질의 흑인들이 오늘날 어떻게 현실과 창의적으로 교섭하고 자유를 찾고 있는지 그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