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어: Dios, patria y libertad
(스페인어: 하느님, 조국과 자유)
국가: 오, 조국을 찬양하라.
에콰도르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l Ecuador 레푸블리카 델 에콰도르[*], 문화어: 에꽈도르)은 남아메리카 북서부에 있는 나라이다. 북으로는 콜롬비아, 남으로는 페루와 접경해 있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다. 본토에서 약 965km 떨어진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를 포함한다.
수도는 키토이며, 이 나라의 최대 도시는 과야킬이다. (키토는 2,000,000명, 과야킬은 2,280,000명 정도) 남아메리카에서 칠레와 함께 브라질과 국경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남아메리카 대륙 북서부에 있는 나라로, 1533년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 페루 부왕령(副王領)을 거쳐 1717년부터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의 관할을 받다가 1819년 그란(大)콜롬비아공화국의 일원이 되었으나, 1830년 분리 독립하였다.
정식명칭은 에콰도르공화국(Republica del Ecuador)이다. 북쪽으로 콜롬비아, 남쪽과 동쪽으로 페루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에 면한다. 본토에서 965km 떨어진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국토에 포함한다. '에콰도르'는 '적도'를 의미하는 에스파냐어(語)로, 실제로 적도가 국토의 북부를 지나간다. '남아메리카의 티베트'라고 불릴 정도로 국토개발이 뒤진 편이지만, 수도인 키토는 오랜 역사와 풍부한 유산으로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은 22개주(provincia)로 되어 있다.
에콰도르에는 옛날에는 8개의 인디오 국가가 분립해 있었는데, 15세기 전반에 키토 왕국의 지배가 확립되었으며, 이 나라는 1460년 잉카제국에 정복당할 때까지 존립하였다. 그러나 잉카제국도 1532년에 에스파냐의 정복자 F.피사로의 손에 멸망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정식으로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페루 부왕령(副王領)에 속해 있었으나 1717년부터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풍습의 차이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1563년부터 독자적인 아우디엔시아(상위의 사법, 입법, 행정기관)를 형성하였으며, 이 관할구가 오늘날 영토의 기반이 되었다. 독립운동은 1809년 및 1810년의 반란에서 비롯되었는데, 에스파냐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S.볼리바르의 부하인 장군 수크레가 산마르틴의 원조로 키토 해방에 성공한 것은 1822년의 일이었다.
그후 에콰도르는 그란(大)콜롬비아 공화국의 일원이 되었으나, 1830년 분리 독립하여 J.J.플로레스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독립 후 상공업 경영자 중심의 과야킬과 반봉건 지주층을 중심으로 한 키토와의 지역적 대립, 이를 기반으로 한 자유당과 보수당의 분쟁 및 내란, 페루 및 콜롬비아와의 국경분쟁 등이 국가발전을 저해해왔다. 그런 속에서도 약간의 발전을 본 것은 독립 직후의 플로레스, 19세기 후반의 가르시아 모레노, 20세기 초의 알파로에 의한 3대 독재시대였다.
정치정세의 안정과 근대국가로의 발전이 시작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였다. 1944년 5월 공산당, 사회당, 사회주의혁명전위당(前衛黨) 등으로 구성된 민주연맹이 반란을 일으켜 아로요 델 리오의 독재정권을 타도하였으며, 그해 7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연맹이 지지하는 벨라스코 이바라가 당선되었다. 그는 1960년 선거에서도 토지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내걸어 당선되었으나, 취임 후 독재적 경향이 심해지고 증세(增稅), 평가절하, 반정부운동 탄압 등을 자행하였기 때문에 1961년 11월 일어난 학생, 군부의 반란으로 망명하고 말았다. 부통령에서 승격한 대통령 훌리오 아로세메나는 누진소득세, 농지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1962년 1월의 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미주기구) 외상회의 때는 쿠바 제재 결의에서 기권하였다.
그후 국내 우익세력과 미국의 압력으로 1962년 3월 대(對)쿠바 단교(斷交)조치를 취하게 되자 쿠바지원운동, 반정부운동, 농민들의 토지점거운동이 격화되었다. 1963년 7월, 용공적 경향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정지, 의회해산, 공산당의 비합법화를 단행하였으며, 대령 라몬 카스트로 히혼을 위원장으로 하는 군부정치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군사정권은 경제, 사회 발전 10개년 계획 등의 경제개발정책을 입안하여 추진하였으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정치가와 학생의 저항에 경제정세마저 악화되었기 때문에 민정이양을 결의하고, 1966년 3월 정부를 상원의원 이에로비 인다브로에게 이양하였다.
입헌제의 조기 복귀를 지향한 임시정부는 그해 10월에 제헌의회 선거를 시행하였고, 여당인 사회그리스도교운동당의 아로세메스가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치상황의 불안과 경제 위기는 가시지 않았으며, 1968년 7월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벨라스코 이바라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산지의 인디오 농민이 벌이는 토지요구운동과 학생·노동자의 반정부운동 속에서 벨라스코 정권은 군부의 협력을 얻어 좌파에 대항하였으며, 에콰도르를 ‘협동조합’ 국가로 재편성하는 구상을 발표하고는 의회해산과 헌법정지를 단행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좌파의 반발을 자극하는 결과가 되었으며, 1971년에는 10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1972년 2월 군부는 마침내 대통령 벨라스코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무혈 쿠데타를 통해 그를 아르헨티나로 추방하였으며, 통합참모장 로드리게스 라라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1976년 1월 그 역시 퇴진하고, 육·해·공 3군 최고사령관으로 구성된 집정평의회가 성립되어 해군중장 포베이다가 집권, 민정 이양 준비를 시행했다. 1978년 1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회의 단원제, 문맹자에 대한 선거권 부여, 대통령 재선 금지 등을 규정한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그후 1979년 4월의 총선거에서 인민무력연맹(PCPF)의 롤도스 아길레라가 대통령에 당선, 민정복귀가 실현되었다. 1981년 5월 대통령 롤도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부통령 우르타도가 의회의 인준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1984년 1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기독교사회당의 코르데르가 승리하였고, 1988년 선거에서는 보르하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8월에 취임하였으며, 1992년 7월의 총선에서는 공화연맹당(POUR)의 바벤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96년에는 과야킬의 Ecuadorian Roldosista Party (PRE)의 압달라 부카람이 대선에서 승리했다. 포퓰리스트적인 경제, 사회정책을 공약하지만, 머지 않아 부카람 행정부는 심각한 부패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1997년에 의회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1998년에는 키토의 시장이었던 하밀 마우다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에 페루와 평화 협정이 이루어졌지만, 재정적 위기로 인해 그의 인기가 떨어졌다. 결국 2000년에 원주민 단체와 군부가 합세하여 그를 대통령직에서 몰아낸다. 군부와 원주민 세 명으로 구성된 임시 대통령직은 몇 시간 가지도 못한채 부통령이었던 구스타보 노보아가 대통령으로 승계받는다.
노보아는 경제 안정화를 위해 달러라이제이션을 단행하고, 민간 합작 기업에 의한 석유 송유관 설치 계약 등을 하지만, 2003년도에 군부인 구티에레스에게 전복당한다.
구티에레스는 반부패, 좌성향을 내세웠지만, 그도 역시 보수적인 경제 정책을 쓰면서 국가 위기를 조장한 혐의로 군부에 의해 하야하고 만다.
2006년의 대선에서는 알바로 노보아를 이기고 전 경제부 장관이었던 라파엘 코레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2008년도에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대대적인 헌법 개정을 단행하고, 2009년 4월에 재출마하여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한다. 현재 코레아는 '시민 혁명'을 구호로 내걸고 사회적 지출과 공공 사회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출처: 미국 국무성 홈페이지
역대 대통령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1948-1952 | Galo Plaza Lasso | 1984 | León Febres Cordero Ribadeneyra |
1952-1956 | José Marí́a Velasco Ibarra | 1984-1988 | León Febres Cordero Ribadeneyra |
1956-1960 | Camilo Ponce Enrí́quez | 1988-1992 | Rodrigo Borja Cevallos |
1960-1961 | José María Velasco Ibarra | 1992-1996 | Sixto Durán Ballé́n |
1961-1963 | Carlos Julio Arosamena Monroy | 1996-1997 | Abdalá́ Bucaram Ortiz |
1963-1966 | 군부 통치 (Ramón Castro Jijón외 3명) | 1997 | Fabián Alarcó́n |
1966 | Clemente Yerovi Indaburu | 1997 | Rosalí́a Arteaga Serrano |
1966-1968 | Otto Arosemena Gó́mez | 1997-1998 | Fabián Alarcó́n |
1968-1972 | José María Velasco Gómez | 1998-2000 | Jamil Mahuad |
1972-1976 | Guillermo Rdríguez Lara | 2000-2003 | Gustavo Novoa Bejarano |
1976-1979 | 군부통치 (Guillermo Durán Arcentales외 2명) | 2003-2005 | Lucio Gutiérrez Borbúa |
1979-1981 | Jaime Roldós Aguilera | 2005-2006 | Alfredo Palacio Gonzá́lez |
1981-1984 | Osvaldo Hurtado Larrea | 2007~현재 | Rafael Correa Delgado |
<출처: Anuario Iberoamericano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