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구경모 | 작성일 : 2014-03-03 17:21:59 | 조회수 : 3,309 |
국가 : 파라과이 | ||
언어 : 한국어 | ||
도시 : 비야리까 | ||
여행기간 : 2013년 7월 14일 | ||
파라과이는 지형적으로 남미남부지역의 특징인 넓은 평원으로 이뤄져 있어 높은 산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지에서 산이라고 말하는 것도 고작 해발 3~400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동쪽으로 약170km 떨어진 곳에는 파라과이에서 보기 드문 산맥이 있다. 그 산맥은 으브뜨루수(Yvytyrusu)로서 과이라 주(Departamento Guaira)의 주도인 비야리까(Villarrica)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으브뜨루수는 과라니어로서 으브뜨(yvyty)는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루수(rusu)는 '크다'는 뜻이다. 이 산맥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쎄로 뻬로(Cerro Peró)라 불리며 해발고도 842m이다. 이따 레뜨라는 바로 이 산맥의 아랫 자락에 있다. 이따(Itá) 는 과라니어로 돌이라는 뜻이며, 레뜨라(letra)는 스페인어로 '글자'라는 뜻이다. 두 단어를 같이 번역하면 '돌에 새긴 글자', 즉 고고학적으로 암각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으브뜨루수 산맥에 이따 레뜨라(Itá Letra)가 있다는 이야기는 박사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현지조사를 하면서 현지 인류학자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현지 인류학자들의 이야기로는 암각화의 유래에 대한 두 개의 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바이킹이 만들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현재 으브뜨루수 산맥 근처에 살고 있는 과라니의 하위종족인 아체 과라니(Ache Guarani, 현지인들은 주로 과자끼(Guayaki)라고 부름)가 그렸다는 설이 있었다. 사실 두개의 설은 바이킹과 서로 연결된다. 아체 혹은 과자끼로 불리는 과라니 일파는 다른 과라니들과 달리 얼굴색이 하얗고 눈의 색깔도 갈색이어서 바이킹의 후예이거나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과 관계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어쨌든 이따 레뜨라는 바이킹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궁금증은 가득했지만, 정착 여기를 찾은 것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은 후 7년이 지난 후였다. 이따 레뜨라의 실체는 이제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이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박물관 고고학자들이 2010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따 레뜨라는 바이킹과 아무관계 없는 파라과이 원주민인 과라니들에 의해 만든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 시기는 기원전 5천년에서 2천 5백년 사이로 보고 있다. 이따 레뜨라에 있는 문양들은 별자리와 고양이과 동물과 새들의 발자국, 여성의 생식기 등을 묘사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또한 이 조사팀은 이따 레뜨라를 그린 파라과이 원주민을 아체 과라니가 아닌 아바 과라니(Ava Guarani)의 선조로 추정하였다.
어느정도 이따 레뜨라의 실제는 밝혀졌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어 2013년 7월 14일에 이따 레뜨라를 향해 현지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다. 이 친구들은 으브뜨루스 근처의 비야리까 시에 살지만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다며 같이 따라 나섰다. 그러나 전날 비가 많이 내려 비포장 길이 엉망이 되어 더 이상 자동차로 갈 수가 없었다. 이따 레뜨라까지 얼마 안남았다는 주민들의 말을 믿고(?) 친구와 걸어가기로 맘먹었다. 자동차를 두고 온 곳의 동네 주민들이 2km 정도 가면 이따 레뜨라가 나온다고 했고, 아주 가까워서 30분 정도 안에 금방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걸어갔지만, 산은 우리쪽으로 가까이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시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물어보니 3km를 더가야되는데 아주 가깝다면서 얼마 안남았다고 한다. 이 사람들의 가까운 거리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걸어온게 2km는 족히 넘겠는데 3km가 다시 남았다고 하니 힘이 쭉빠졌다. 내친구도 시골사람들은 아주 먼 곳도 가깝다고 말한다면서 어의없어했다. 결국 이따 레뜨라에 도착한 때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려고 할 무렵이었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달리 실제로 걸었던 거리는 6km였고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이따 레뜨라가 있는 곳의 거대한 암석의 아랫부분은 깎여 있어 원주민 15명에서 20명이 살기에 적당한 규모였다. 이따 레뜨라는 바로 생활 하던 공간 근처에 집중적으로 모여있었다. 암석이 위치한 곳은 사방으로 외부의 적을 멀리서 볼 수 있는 높은 지역이었으며 500미터 옆으로는 계곡이 흘러 물을 구하기도 용이한 곳이었다. 학부시절에 배운 고고학적지식으로 봤을때, 이따 레뜨라가 위치한 곳은 수렵채집민들 몇 가족이 충분히 안정적으로 머물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이따 레뜨라 주변의 주민들은 산 안쪽에 들어가면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에서 15미터 정도 안으로 들어 가면 이따 레뜨라와 유사한 암각화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있어 다음기회를 기약하며 철수하였다. 오는 길에는 먼 거리를 걸어오는 것이 너무 두려워 인근 주민에서 약간의 사례와 함께 오토바이로 자동차 있는 곳 까지 데려달라고 요청하였다. 오토바이로 차량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밖에 안걸렸다. 비야리까에 도착하니 거의 7시가 넘었었고 하루 종일 빵 몇조각과 떼레레(파라과이의 마떼와 유사한 차)로 버틴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멀리서 아련히 보이는 으브뜨루수 산맥
마주오던 차량들이 수렁에 빠져 지나갈 수 없는 상황
자동차를 두고 친구와 맨발로 이따 레뜨라로 향해
말타고 다니는 동네 주민이 너무 부러웠던 순간
드디어 이따 레뜨라에 도착
이따 레뜨라에서
이따 레뜨라를 품고 있는 거대한 암석, 보기만 해도 아늑한 공간
마을 주민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따 레뜨라 여행을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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