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갔다. 앞으로 이런 대가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현실과 상상력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싸워온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나 현실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예언자인 멜키아데스가 언급한 “유리와
빛나는 집들”로 이루어진 투명하고 맑은 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빈곤과 폭력이 난무하는 뒤틀리고 혼돈된 세계이다.
이런 세계에서 작가의 역할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우리들이 희망하는 세계 사이의 거리감, 그 모순을 폭로하는 것이다.
자신과의 투쟁에서 시가 탄생하고 타자와의 투쟁에서 정치가 탄생한다는 예이츠의 말처럼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살아오면서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키고
그것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아마도 ‘히스토리’(History)의 두 의미, 역사와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 속에 잘 구현한 작가가
바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가 왜 기자와 소설가를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는지, 그가 왜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미국을
비판하고 독재자를 조롱하며 카스트로의 사회주의를 옹호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문학적 작업이 상상력을 투영한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정치적
성향이 좌익 사회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정치적인 작가로 불리는 그만큼 소설 기법에서
비정치적인 작가도, 혁신적인 작가도 없다. 그는 도그마나 경직된 이데올로기를 배격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이 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이야기꾼으로서 그가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더욱 이야기답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늘 현실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랍고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돼지꼬리 달린
애가 태어나고 4년 넘게 비가 오고 유령도 나이를 먹는 등 초자연적이고 경이로운 현실이 혼재되어 있다. 이런 기법은 분명히 이성이나 합리성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그의 거부감에서 나온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중남미만 지닌 특이한 자연이나 역사, 문화, 전통의
산물이다.
그러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위대한 것은 그것이 꿈이나 환상과 같은 몽환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라는 실제 세계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현실과 유리되거나 역사성이 결여된 마술은 거짓말이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남미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작가인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추구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 탐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점에 <백년
동안의 고독>이 있다.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진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간에 걸친 이야기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비전, 바로
고독의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고독은 콜롬비아의 고독이자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고독이고 우리의
정체성이다.
<서성철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