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세금, 이데올로기의 은폐
체게바라, 쿠바혁명, 멕시코혁명, 제도혁명당, 차베스, 21세기 사회주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통칭 FARC, 볼리비아 사회주의 운동당과 에보 모랄레스, 상대적으로 온건한 아르헨티나 정의당과 브라질의 노동당과 룰라 등 라틴아메리카는 어떤 면으로 상당히 좌파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혁명으로 집권한 것은 멕시코 혁명과 쿠바 혁명 이렇게 두 번이며 멕시코 혁명은 그 자체로 반동성 혹은 보수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정권으로 바뀐 무장혁명은 쿠바혁명이 유일하다. 다시 말하면 그 많은 좌파 혹은 진보적 정권과 지도자들은 모두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거를 통해 집권한 라틴아메리카의 온건한 좌파연합을 핑크타이드(Pink tide, Marea rosa)라 부르기도 했다. 어떤 개혁이나 혁명도 특정 집단이나 계급을 위한다고 하지 않는다. 모든 혁명은 민중을 위한다고 한다. 비단 혁명 초기만이 아니다. 정권을 잡고 집권을 한 이후에도 모든 정치적 행위의 목적은 민중 혹은 인민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정치적 행위가 실질적으로 민중에게 도움이 되었는 가는 항상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무엇보다 ‘말’로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말’에서 정책이 수립되고 행정부 혹은 지방정부를 통해 정책이 시행되기도 하지만 그 시작은 정치 지도자의 ‘말’이다. 그래서 수사법이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중요한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의 말은 희망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실망 혹은 더 나아가 절망이 되기도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보혁 갈등’, 보수 세력과 개혁/혁신 세력 간의 갈등 혹은 정치적 대립을 의미하는 용어가 자주 사용된 적이 있다. 이후 좌우대립, 좌파/우파 등의 용어도 사용된 적이 있으며 보수 세력을 의미의 큰 차이가 없으나 폄하의 의미를 담아 수구(守舊)라고 부른 적도 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진보의 반대는 퇴보이고 보수의 반대는 개혁이므로 약간 어색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용어는 그 뒤에 자유주의/시장경제, 사회주의/공산주의(계획경제)라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어 구분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 1990년대 이후 세계화를 공통분모로 하며 화폐가 기반이 된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질서 속에서 좌/우의 개념은 권력투쟁을 위한 핑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혁명을 외치며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겠다고 하는 세력들은 다르다. 그 이전까지 기득권 세력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되며 피아의 구분과 그 사회의 미래비전 등이 확실하고 선명하다. 하지만 무장혁명이 아니라 선거라는 방법, 다시 말해 기존 제도를 통해 집권했기 때문에 모든 사회적 목표 또한 그 제도를 따라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60년이 넘게 멕시코를 통치한 정당이 바로 제도혁명당(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 PRI)이다. 제도 안에서의 혁명은 형용모순처럼 보인다. 다만, 개헌을 통해 혁명헌법을 만든 이후라면 상황은 약간 다를 수도 있을 것이나 혁명이란 동적(動的) 에너지가 제도화된 틀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의 지난 10년은 혼돈과 혼란의 시기였다. 2013년 대중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브라질에서 일어났고 정권교체와 코로나 사태까지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질 않았으며, 멕시코 또한 2016년 교육개혁을 반대하는 교직원 노조의 전국적 시위를 필두로 휘발유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 학살당한 대학생들의 진실을 밝히라는 시위 암로의 집권 이후 보수파들의 시위, 마찬가지로 현재 코로나19 상황과 경찰의 폭력적 시위진압에 항의하는 시위 등이 있어왔다. 2017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며 여당은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제헌의회를 구성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항의하는 시위에 대규모 난민문제, 2018년 니카라과 대규모 반정부 시위, 중미 카라반(혹은 캐러밴, caravan) 난민 발생, 2019년 에콰도르, 칠레 대규모 시위, 아르헨티나 식량난에 의한 시위, 부정부패를 반대하는 페루 시위, 콜롬비아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등의 국가를 제외하고 좌우, 진보/보수에 상관없이 기존의 시스템을 거부하는 시위가 라틴아메리카를 휩쓸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과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특히 민중을 위하고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혁명정부, 혁명적 이상을 추구하겠다던 좌파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던 것일까?
사실 앞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국의 상황이라는 것이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고 그 변수들이 통제가 될 리가 없으므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1세기 사회주의를 말하던 베네수엘라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rente Sandinista de Liberacion Nacional; FSLN)으로 유명한 다니엘 오르테가(José Daniel Ortega Saavedra)가 통치하는 니카라과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다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었거나 두 번째는 그들의 정책이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는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 실패했거나, 근대국민국가 성립이 본질적인 변화를 담보하지 못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사회적 가치, 즉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캐나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정의에 비추어보면 라틴아메리카의 대규모 시위에서부터 현재 코로나19의 상황까지를 기준으로 정치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좌우를 막론하고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실상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다양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세금, 조세제도일 것이다. 『세금은 무엇인가』의 저자 스티븐 스미스((Stephen Smith)에 의하면 세금은 근대국가의 공공서비스를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며, 국가가 집행하는 강제적 지불이나 법률에 따라 부과되는 규정적 지불이다. 앞에서 언급한 ‘정치’의 정의를 적용하면 세금이란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각 주권국가는 그 법률에 따라 스스로의 조세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 동시에 적어도 현재 헌법을 제정한 세력의 정치적 신념이나 비전 또한 조세제도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좌파의 조세제도나 우파의 조세제도를 정형화하는 것은 무리하고 성급한 일일 수 있으나 북유럽 복지국가형 조세제도 모델, OECD 선진국형 조세모델, 부와 기득권의 대물림을 인정하는 조세제도 모델 등으로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며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조세제도가 과연 어떤 모델과 가까운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 국가의 지향점을 파악하는 데에 주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유의할 점은 각 국가별 누진세율의 정도와 소득 분위의 구분은 같지 않으므로 세밀하게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표-1]은 국가별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그리고 판매세율이다. 비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좌우 끝에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복지국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북유럽의 스웨덴과 EU 평균 수치를 두었고 좌파적 성향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니카라과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대국이면서 집권 세력에 따라 좌파 혹은 우파로 분류되는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의 수치를 비교했다. 라틴아메리카 각 국가별 수치는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소득세율이 소득 재분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소득세율이 35%에 달하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오히려 다른 좌파 성향의 국가보다 소득 재분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부정선거 문제로 결국 망명길에 오른 에보 모랄레스가 통치하던 볼리비아의 경우 법인세율도 소득세율도 현저히 낮으며 볼리비아에 비하면 미국이 오히려 소득재분배가 원활한 사회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소매 매출의 총 가치에 붙이는 세금이며 부가가치세 형태를 취하는 판매세 또한 국가 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소득세율의 추이와 비슷하게 아르헨티나가 21%로 제일 높고 에콰도르가 12%로 제일 낮다. 소득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을 과세객체로 하여 그 재산의 소유자에게 재산총액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조세인 재산세와 그 재산이 상속되거나 증여될 때 부과되는 세금이 상속/증여세이다. 토마 피케티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산의 불평등이며 피케티 지수 또한 총 소득과 총 자산과의 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자산에 대한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중세적 신분사회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근대민족국가의 해체, 하나의 ‘국민’이란 개념 자체가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충격적이게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에서 상속/증여세의 비중이 높은 국가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재산세의 비중 또한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그 어떤 국가도 아주 낮다. 브라질의 경우 의미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으나 미국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물론,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 또한 그리 높지 않은데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의 경우 소득의 50%가 넘는 높은 소득세율을 받아들이면서 재산세와 증여/상속세의 비중을 줄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소득세와 재산세 상속/증여세 등 부과되는 모든 세율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재산세, 상속/증여세의 경우도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모든 국가의 상황을 동일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좌우의 구분을 떠나 그 사회 기득권층에게 무조건 유리하며 재분배의 기능이 현저히 낮은 조세제도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기업이 지급한 임금 총액에 매기는 급여세의 경우 6%로 유난히 높은 코스타리카를 제외하면 멕시코와 브라질, 파나마가 각각 2.4%와 1.8%, 1.4%로 OECD 평균보다 높으나 다른 국가들의 경우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았다. 실업/질병/공적연금/의료보장 등 사회적 보험에 해당하며 현재 코로나19의 대유행에서 제일 중요한 세금이라 할 수 있는 사회보장세의 경우우도 38.5%의 파나마와 34.%의 코스타리카를 제외하면 좌우의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비슷한 수준이며 13.3%의 멕시코, 6.9%의 칠레, 9.6%의 콜롬비아, 12.3%의 페루 등물론,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 또한 그리 높지 않은데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소득의 50%가 넘는 높은 소득세율을 받아들이면서 재산세와 증여/상속세의 비중을 줄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소득세와 재산세 상속/증여세 등 부과되는 모든 세율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재산세, 상속/증여세의 경우도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모든 국가의 상황을 동일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좌우의 구분을 떠나 그 사회 기득권층에게 무조건 유리하며 재분배의 기능이 현저히 낮은 조세제도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모두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가들이라는 공통점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우루과이를 제외한 많은 국가들이 간접세라 할 수 있는 부가가치세의 비중이 50% 가까이 되며 간접세의 비율과 지니 계수가 거의 비례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그리 큰 변화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좌우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각 국가들은 결국 기득권을 강화하는 제도를 운영해왔으며 조세제도를 중심으로 보면 민중을 위한 혁명은 어떤 면으로 기득권 세력을 대체하는 정도에서 멈춰왔다고 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한 자원의 분배가 아니라 ‘정치’의 정의이기도 한 권력에 의한 권위적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정치는 더 강조되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더 강력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것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세제 개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명호 부산외국어대학교·중남미지역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를 졸업했고 멕시코 시몬볼리바르대학 인문학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의 HK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살사》, 《플라멩코》, 《테킬라 이야기》, 《신화에서 역사로, 라틴아메리카》, 《멕시코를 맛보다》 등이 있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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