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26-05-18 10:37:25 조회수 : 17
국가 : 쿠바 언어 : 한국어 자료 : 사회
출처 : 연합뉴
발행일 : 2026-05-18
원문링크 : https://www.yna.co.kr/view/AKR20260516002900087?section=international/correspondents/mexicocity
원문요약 : 전력난 속 등교 못해 "배우는 게 없는 기분"…코로나 때처럼 학력저하 우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도 유명 극장도 제대로 운영 못하고 먼지만
"아파도 수술 도중 전기 끊길까 겁나"…"은행 업무 중 전기 나가면 송금 안돼"

[쿠바를 가다] ③정전에 승강기 갇히고 송금도 먹통…학교도 극장도 멈췄다

송고 2026년05월18일 07시00분

송광호
송광호기자

전력난 속 등교 못해 "배우는 게 없는 기분"…코로나 때처럼 학력저하 우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도 유명 극장도 제대로 운영 못하고 먼지만

"아파도 수술 도중 전기 끊길까 겁나"…"은행 업무 중 전기 나가면 송금 안돼"

이미지 확대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쿠바 중심가의 건물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쿠바 중심가의 건물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2일 오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쿠바 중심가. 2026.05.12. buff27@yna.co.kr

(쿠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쿠바 혁명의 주인공 피델 카스트로가 졸업한 쿠바 명문 아바나대학교에 다니는 3학년생 루이스 페레스 씨는 요즘 학교에 가지 않는다. 쿠바의 전력난이 가중된 지난 2월부터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지 않아서다.

수업을 안 한다고 공부량이 줄어든 건 아니다. 왓츠앱을 통해 교수들이 '엄청난' 양의 강의 노트를 온라인에 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와 강의 노트만 보고, 어렵다는 공학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학생들 각자 스스로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분량도 엄청난 데다 내용마저 어렵다"며 "정말 하나도 배우는 게 없는 듯한 기분이다"고 말했다. 등록금까지 냈으면 불만이 터졌겠지만, 다행히 쿠바는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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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한 초등학교
쿠바의 한 초등학교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전력난 탓에 현장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쿠바의 학력 저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대학교는 실질적으로 '현장 강의'를 멈췄고, 지방에서 아바나로 올라온 학생들은 생활비가 비싼 아바나를 등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 큰'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건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단축 수업에 들어가면서 오전 수업만 끝나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면, 교복을 입은 어린애들이 엄마 손을 잡고 귀가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맞벌이 가정으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력난이 학력 저하와 돌봄 문제를 동시에 부채질하고 있어서다. 코로나로 학교 수업을 중단해 학력 저하 문제가 대두됐는데 5년이 지나지 않아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쿠바 교육계도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교실만 '비상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문화계도 찬 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다.

이미지 확대어둠이 다가왔지만 불꺼진 쿠바 부촌의 한 가정
어둠이 다가왔지만 불꺼진 쿠바 부촌의 한 가정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저녁 쿠바 아바나의 한 가정에서 불이 모두 꺼져있다. 이 동네는 한국의 청담동에 해당하는 부촌이다.

공연·영화 등 문화계도 전력난을 피해갈 수 없어서다. 대부분의 공연은 열리지 않는다. 영화 덕택에 한국까지 잘 알려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관광객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공연조차 최소 이날만큼은 열리지 않았다.

영화관도 닫힌 지 오래됐다. 1950년대 지어진 유명한 극장인 '라 람파'를 가봤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모더니즘 스타일의 건물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동시에 상영해 '쿠바 시네필'에게는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출입문 근처에 쌓인 먼지로 봐서는 하루 이틀 정도만 닫힌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일요일에 상영하는 '5월 CC 클럽' 상영작이란 안내표가 반쯤은 깨진 유리창 안에 붙어 있었지만, 연도가 안 쓰여있어 다가오는 일요일에 상영한다는 의미인지, 작년 5월의 한 일요일에 이미 상영했다는 얘기인지는 불분명했다.

이미지 확대쿠바 예술영화 성지 '라 람파' 극장
쿠바 예술영화 성지 '라 람파' 극장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2일(현지시간) 오후 아바나의 유명한 라 람파 영화관. 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2026.05.12 buff27@yna.co.kr

상영작에는 이란의 자파르 파니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2025)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2024) 등 칸영화제에서 사랑받는 감독들의 근작이 망라돼 있었다. 옛 대한극장처럼 상당히 큰 규모의 극장이었지만, 상영작 프로그램은 국내 대표적인 예술영화 상영관 시네큐브와 비슷했다. 쿠바인들의 문화생활 수준을 알만한 대목이었다.

운영하는지를 물어보려 경비나 매표소 직원 등을 찾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먼지가 많고, 기척이 없는 걸로 보아 오랫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듯했다. 옛 영광을 보여주듯, 고전영화 포스터들만 한쪽 벽에 일렬로 붙어 있었다.

이미지 확대라 람파 극장에 내걸린 포스터들
라 람파 극장에 내걸린 포스터들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2일 쿠바 아바나에 위치한 라 람파 극장에 내걸린 옛 포스터들. buff27@yna.co.kr 2026.05.26

한 교민은 "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정전으로 상영이 중단돼 초청받은 감독이 당황한 적이 있다고 한다"며 "예전에 날씨가 선선했을 때도 그랬는데, 지금은 에어컨이 없으면 극장에서 영화나 공연을 볼 수 없는 날씨다. 지금 쿠바에서 문화생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화생활 이야기를 하면 쿠바인들은 코웃음 친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한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는 것이다. 끼니가 부족한 데다 잦은 정전으로 냉장고 사정은 엉망이고, 아프면 수술받기도 겁이 난다. 수술 도중 전기가 끊어지기도 해서다.

전력난 탓에 때론 생각지도 못한 위험에 봉착할 때도 있다. 한국에선 아무 생각 없이, 발이 이끄는 대로 한 행동인데,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가령,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 같은.

아바나에 부임한 지 석달가량 된 이명준 코트라 관장은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30분간 갇힌 적이 있다고 했다. 전기가 잠시 들어와 엘리베이터 문이 조금 열렸을 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운이 좋았고, 사람들의 도움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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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려는 사람들
쿠바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려는 사람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호된 '쿠바식 신고식'을 치른 이 관장은 쿠바 현지 시장 조사와 국내 중소기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이라는 본연의 업무보다 요즘에는 은행 송금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한다. 공문을 보내 빨리 해결해달라고 독촉하는 것과 같은 일, 은행에 가서 기다리는 일 등이다.

"은행 업무를 하다가 전기가 나가면 송금이 안 됩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런 간단한 일을 하는 데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요즘은 보고서를 쓰는 복잡한 업무보다도, 삶의 기본이 되는 은행 업무 같은 걸 해결하는 데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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