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10 09:44:07 | 조회수 : 1,542 |
차경미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스(La Paz)에 도착하여 공항 밖을 나오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꼈다. 구름조차도 잠시 머물다 가는 하늘과 맞닿은 땅이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해발 3600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고원지대, 그래서 여행자들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척박한 곳이라는 사실이 몸으로 다가왔다. 여러 해 동안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흔적들이 지속되는 시간 속에 배경지식으로 남았다. 이것을 근거로 때때로 나는 국가와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차이와 다름의 틈을 편의적으로 메꾸려는 경향이 있음을 깨달았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스는 그동안 내가 경험한 안데스지역 국가의 수도와는 달랐다. 라틴아메리카 여행에서 안데스산맥지역 국가들은 익숙함 때문에 늘 빠뜨리지 않는 여행 필수 코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산지대 증후군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는 나에게 볼리비아는 늘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안데스산맥 국가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볼리비아를 페루 그리고 에콰도르와 같은 색으로 상상하거나 이미지화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볼리비아 여행은 그동안 쌓아두었던 여행의 경험들이 나의 시간위에서만 배회하는 여행 그래서 내 자신이 바뀌지 않았던 여행이었음을 새삼 알게 해주었다. 버스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자 펼쳐진 풍경들은 여타 라틴아메리카 도시와는 달라 흥미롭기까지 했다. 이웃 국가들의 수도는 골목 후미진 곳에 앉아 수공예 품을 팔며 그늘진 일상을 엮어가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이색적일 뿐 도시는 우리와 유사한 형태의 삶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라 파스의 거리는 대형 상점보다는 재래시장들로 촘촘히 메꿔져 있었고, 복장이나 사람들의 모습에서 전통은 과거가 아닌 일상 속에 숨 쉬고 있었다. "참 다르군아"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왔다. 시내 중심을 걷다 우연히 들어선 골목은 각종 미니어처와 주술행위를 행할 때 사용될만한 물건들로 빼곡했다. 일명 "마녀시장"이라고 불리는 거리는 악을 물리치고 행운을 주는 부적들이 상품으로 진열되어 가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박재된 동물부터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물들이 고단한 서민의 삶의 희망을 연결해주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남미를 여행하는 모든 이들의 꿈의 종착지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로 9시간 만에 도착한 우유니에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여행객들로 분주했다. 여행사에서 제공한 차로 5명이 한 팀을 이루어 운전사의 안내를 받으며 소금 사막으로 향했다. 1시간 30분쯤 달리자 저 멀리 2만 년 동안의 지각변동이 만들어낸 자연 최대의 선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과 경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하얀 소금 사막은 우리를 마치 빙하시대로 이끄는 듯 했다. 포토시주 볼리비아 만 서쪽 3650미터 고지에 위치한 소금사막의 장엄한 경관과 마주하며 인간의 외소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민친호수(Lago Minchin)에 의해 4만 년 전 소금으로 덮인 사막은 이후 따우까호수(Lago Tauca), 꼬이빠사 염전(El salar de Coipasa), 뿌뽀호수(los lagos Poopó) 그리고 우루우루(Uru Uru)호수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소금사막은 우유니사막과 꼬이빠사 그리고 뿌뽀와 우루우루 호수까지 펼쳐진다. 끝없는 사막을 걷노라니 세상 끝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의 장소에 다다르는 느낌이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자 세계 각국의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며 생명력을 과시하는 듯 했다. 그 뒤에 위치한 동화 같은 소금호텔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를 보상받는 듯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소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가구와 장식품들이 거실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하얀 바닥과 벽 그리고 파스텔톤의 커튼이 조화를 이룬 침실의 아늑함은 다음 여행 일정을 모두 미루고 싶은 충동을 안겨주었다. 호텔의 부족한 편의 시설의 불편함마저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사막너머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치빠야족을 만나야 하는 일정 때문에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포기해야만 했다. 호텔을 뒤로하고 돌아서야만 했던 기억은 지금도 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계획했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수도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차 창밖의 풍경은 처음의 느낌과는 달리 볼리비아 사회가 간직한 문제의 묵직함 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음료수와 빵 한 조각으로 굶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우는 가난한 볼리비아가 눈에 다가왔고, 개혁과 변화라고 낙서된 벽보와 함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볼리비아도 나의 시선에 머물렀다. 남미에서도 가난한 나라중 하나로 꼽히는 볼리비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풍요롭진 않았지만 결코 부족할 것도 없어 보였다. 현재는 고단해 보였지만 극복할 수 있는 미래가 있어 그늘지지 않았다. 그래서 볼리비아인들은 자신을 가난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볼리비아라는 나라 전체를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에서 경험한 이들의 일상은 우리사회의 논리를 되묻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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