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10 09:43:06 | 조회수 : 1,510 |
국가 : 쿠바 | ||
최홍주 (울산대학교) 딱 1년씩만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세 곳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리고 아바나. 드디어 쿠바에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비록 1년을 머무를 순 없었지만. 쿠바(Cuba)하면 흔히 체 게바라, 카스트로, 헤밍웨이, 올드카, 시가 등을 떠올린다. 내가 쿠바 여행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제대로 된 모히또(Mojito)를, 헤밍웨이가 'Mi mojito en la Bodeguita(나의 모히또는 라 보데기따에 있다)'라고 했을 만큼 맛있다는 그 곳의 모히또를, 아바나의 쏟아지는 햇살아래서 마셔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드 하바나 투어 중 Emperador 거리 초입에서 저 멀리 La Bodeguita del Medio라는 간판을 본 순간 난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노라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모히또를 주문했다. 쿠바산 럼주(그 곳에선 7년산 럼을 쓴다고 한다), 민트, 라임즙, 설탕의 환상적인 조합은 그 전에 그리고 그 후에 마셨던 어떤 모히또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아바나 시내에 들어서니 오직 쿠바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시 전체가 올드카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데 낡은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들 사이로 광이 나도록 닦여진 올드카가 지나가는 모습을 회색빛으로 덮어버리면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대부분 혁명 이전 미국이 쿠바를 지배할 당시 미국 부호들이 타고 다니다 남기고 간 자동차들이다. 주택가를 지나다보면 마당에서 자신들의 차를 직접 정비하는 쿠바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종종 유럽, 한국산 차들이 올드카 옆을 지나가는데 뭔가 그 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멋이 없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멋있긴 하지만 주의할 사항이 있다. 올드카들이 지나갈 땐 잠시 숨을 참아야 한다. 호흡기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매연을 마시고 고생을 할 수도 있으니까. 여행의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여행지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쿠바의 음식에 대해선 이미 익히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 예상한대로 MSG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쿠바 음식은 2%로 부족했다. 하지만 쿠바의 식재료는 유기농이다. 1990년 초부터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가 강화된 후 식량의 많은 부분을 소련에 의지해왔지만 소련의 붕괴로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끊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쿠바는 전국 농가를 대상으로 유기농업운동을 전개하여 친자연적 유기농업의 길로 들어섰다. 또한 대부분의 식재료는 그날그날 배급받은 양을 소진하기 때문에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쿠바의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자극적이지 않게 요리해 낸다. 매일 까사(Casa particular: 국가에서 허가한 민박집)에서 신선한 열대 과일과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빵, 유기농 우유, 치즈, 커피 등으로 준비된 아침식사를 하는 호사를 누리고 왔다. 아바나의 또 다른 관광명소인 말레꼰 해변. 시차로 인해 몰려오는 피곤에도 불구하고 잠깐 틈을 내어 일행들과 말레꼰을 거닐었다. 언젠가 잘 생긴 배우가 광고를 촬영한 곳으로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바닷가 길이다. 가이드 책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대서양과 바로 마주한 도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이며 원래 이름은 Avenida Antonio Maceo이지만 방파제라는 애칭 Malecón으로 불린다고 한다. 곳곳에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쿠바의 여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쿠바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많은 이들이 쿠바의 음악과 춤을 꼽는다.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살사, 손(Son), 룸바의 리듬과 그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몸치인 내게 그 흥겨움에 동참할 수 없다는 현실은 조금 잔인하기까지 했다. 현란한 허리 움직임, 리듬에 맞춰 모터 달린 듯 왔다 갔다 하는 스텝, 흥겨운 손동작 등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타고 나는 것(lo que se lleva en la sangre)'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쿠바의 리듬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얼마 전 쿠바에 다녀온 지인이 반드시 보아야 한다며 추천한 트로피카나(Tropicana) 나이트클럽의 공연을 놓칠 수는 없었다. 1939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70년 넘게 중남미 최대의 카바레 쇼라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혁명 이전 미국 유명인들과 부호들이 이 쇼를 보기위해 아바나로 전세기를 타고 올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그 명성에 걸맞게 화려하게 치장한 늘씬하고 아름다운 무희들이 흥겨운 리듬에 맞추어 군무를 선보이는데 쉬지 않고 이어지는 무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쿠바의 물가에 비하면 조금 비싼 가격이지만 혁명 이전의 쿠바의 화려한 유흥문화를 보고 싶다면 볼 만한 공연이다. 일정에 따라 뜨리니다드(Trinidad), 산따끌라라(Santa Clara), 비냘레스(Viñales)를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국도 등으로 이동을 하며 본 풍경들은 이국적이기 그지없었다. 고속도로에 차가 거의 없다는 것과 왕복 6차선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 느리게 갈 길 가는 마차,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 야자수, 에메랄드 빛 바다... 무엇보다도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판 대신 선명하게 적혀있는 혁명 문구들이 인상적이었다. 곳곳에서 불쑥 불쑥 나타나는 잘 생긴 체 게바라의 얼굴을 볼 때 마다 내가 쿠바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쿠바에도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자영업, 주택매매, 해외여행 등이 자유화 되었고 자영농업자들에 대한 제약도 완화 되었다고 한다. 이런 개혁 조치들에 대해 쿠바 정부는 쿠바식 사회주의 경제의 현대화라고 설명하는데 이런 개방의 바람으로 머지않아 지금의 쿠바 모습은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라 생각되니 조금 아쉽기도 하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떠오르는 쿠바에 대한 잔상은 혀끝에 도는 모히또의 달콤삽싸름한 맛과 그곳의 색(色)이다. 플람보얀(Flamboyant) 나무의 붉은 색 꽃 그리고 동양인 관광객들의 카메라 앞에서 멋있게 포즈를 취해 주던 쿠바 사람들의 검은 피부.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까사의 이층 테라스에서 망고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를 마주한 순간부터 이미 열대의 식생이 선사하는 화려한 파노라마에 매료되었지만 가로수라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플람보얀의 붉은 꽃은 아바나의 낡은 도시 빛깔과 극명하게 대조되어 머무르는 내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여기저기를 뒤적이며 조사해보니 붉은 색 꽃이 흐드러지는 이 나무는 불꽃나무 또는 공작꽃 이라고도 불리며 아프리카가 원산지라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에겐 익숙한 색일지도 모르겠으나 내겐 너무 매력적인 그래서 가장 인상 깊은 쿠바의 색으로 남는다. 세계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보았다는 여행객들에게도 쿠바는 호불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여행지일 수 있다. 관광 인프라가 잘 구축이 된 것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가 많은 곳도, 쇼핑이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의 마지막 사회주의국가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의 생활을 엿보기 위함이라면 쿠바는 충분히 매력적인 곳임에 틀림없다. 여행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이점이 있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하는데 어려움이 덜 하다는 것 외에도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여행지를 느끼는데 아주 중요하다. 일행들과 다니며 틈틈이 현지 운전기사, 가이드 그리고 까사의 메이드들과 나눈 대화들에서 쿠바 사람들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짧은 만남, 대화에서 섣불리 끄집어낸 감성적인 이미지이거나 지나친 일반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들이대는 카메라에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거나 가까이 다가가 아기의 얼굴을 만져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아기를 안아보게 하는 것은 내게 쿠바 사람들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사회주의체제의 꾸바노스(los cubanos)들은 '봉인해제' 상태라는 생각. 다시 쿠바에 가면 좀 더 오랜 시간 머무르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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