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40:11 조회수 : 1,414
국가 : 칠레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연구보조원/글로벌지역학 박사과정 손현정

  

   교수님들의 권유로 알게 된 CEPAL 여름경제학교는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내가 CEPAL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경제구조주의와 종속이론의 창시자들인 라울 프레비쉬(Raúl Prebisch)와 셀소 푸르타두(Celso Furtado)같은 유명한 학자들이 머문 곳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중남미 지역학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나에게 중남미 지역 경제 수업을 그 지역 석학들에게 직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현지인들, 즉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 지역의 현상들을 바라볼 수 있는 무척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중남미 사람들은 중남미 지역 경제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본다면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직접 얻는 지식은 그보다 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회가 주어질 때는 무조건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가 다름 아닌 CEPAL에서 주관한다는 사실은 내게 더욱 치명적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국내에서 중남미지역전문가가 되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보통의 관심이나 각오를 가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현지에 있으면서 항상 현지의 상황에 잠겨있지 않으면 멀어지기 쉽고 현지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놓치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중남미 전문가로서 자신만의 분야와 주제를 선정하는데도 많은 사전지식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현지에서 어떠한 분야의 어떠한 주제들이 어떤 방법으로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되며, 이를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에 맞추어 자신만의 학문적 진로를 결정하는데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바로 이런 점에서 칠레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나 추후 연구 분야를 공고하게 정립해나가는데 애로를 겪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여름경제학교는 이에 대한 해답을 마련해주지는 못할지언정 일종의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리고 다녀온 지금 소감으로는 확실히 경제학교 수업을 들었던 경험은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영감에서 그치느냐, 심화와 보충으로 큰 밑천으로 만드느냐 하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후속과제가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우선 CEPAL의 여름경제학교란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전하기에 앞서 CEPAL이라는 기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CEPAL은 약칭으로써 스페인어 공식명칭으로는 Comisión Económica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가 되며, 영어 공식명칭은 United Nations Economic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이나 흔히 약칭인 ECLAC으로 부른다. 한국어 공식명칭으로는 <국제 연합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 위원회>이나, 국내 중남미지역학계에선 간단히 CEPAL(세팔)로 통칭한다.

   본 위원회는 UN산하의 5개 지역경제(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위원회 중 하나로써 국제사회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지역을 대표하는 단체로 1951년에 설립되었으며 그 본부는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 다른 UN기구들과 함께 한적한 곳에 위치해있다. 한국 또한 44개 CEPAL 회원국의 하나로써, 그 덕분에 여름경제학교에 한국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위원회는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지역의 경제제반현상을 각종 수치와 통계 등의 연구결과물을 내면서 분석하고, UN의 21세기 기조라고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론'에 입각하여 현황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곳으로 각 분야로 관할부처가 나뉘어 있으며 각 부처마다 전문 인력들이 연구진으로 배치되어 있다.

   여름경제학교를 운영하는 관할부서는 생산적·혁신적 발전부서(La División de Desarrollo Productivo y Empresarial, DDPE)로써 임무의 중심축에 "연구와 실행(Investigación-Acción)의 연계“가 자리잡고 있다. 즉 이 부처가 운영하는 여름경제학교는 기존의 중남미경제학자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이들 혹은 다른 이유로 중남미경제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CEPAL연구진들의 -그리고 때로는 외부초빙강사의- 연구내용을 직접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연구'를 인력양성과 배움의 확산이라는 '실행'으로 연계하고자 하는 취지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CEPAL여름경제학교는 CEPAL 소속연구진들과 초빙 강사들이 그동안 작업해온 성과들의 기초 위에서 그들의 최근 연구동향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후학들을 양성하는 과정이다. CEPAL에서 일차 권고 사항으로는 이 과정을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중남미 지역경제에 대한 선행지식 혹은 기본 경제지식이 바탕되어야 하나, 막상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지역에서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의 학생들을 수용하여 경제학교 내의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고자 하여 CEPAL측이 이 기준을 아직 그리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수강생정원에 비해 응시인원의 경쟁이 아직 그리 치열하지 않다는 점 또한 이 점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본인이 수강했던 2014년 여름경제학교에서는 수강생 다수가 경제 전공자들이었으나 본인과 같이 비전공자들 또한 몇몇 있었고, 당연히 그로 인해 서로 간의 격차가 매우 두드러졌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스페인어권 원어민인데다가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으니 그들과 나의 격차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반이라는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점점 귀가 열리고 경제용어와 특정낱말들에 익숙해져가고, 수업을 듣는 요령이 생기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루어지는 워낙 다양하고 많은 주제들을 다루다보니 자신에게 익숙한 주제들이 나올 땐 더욱 열정적으로 참가하게 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비경제분야들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사실 경제학교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UN이 이끄는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는 현안들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리고 매년 세계 정세와 지역의 사정에 따라 바뀐다. 그리하여 2000년 여름경제학교 출범연도에서부터 매년 강좌의 주제를 바꿔오면서 시의성을 띄도록 하고 있다. 2014년 여름경제학교의 기본 주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며, 하위주제로써 케인즈식성장모델, 거시적 성장경제 분석, 대안성장모델,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적 현안과 과제, 정보화 시대의 정치 및 사회정책을 통한 성장모델제시, 재정정책방향, 사회보호정책 등이 등장하였다. 한편, 시의성을 떠나 CEPAL이 추구해 온 연구과정과 목표를 안내하는 구조주의, 종속이론의 생성 및 변천과정과 CEPAL사상의 추이 등을 대략적으로나마 조망해보는 시간도 주어졌다. 그리고 아주 전문적으로 경제학을 다룰 수 있는 경제모델의 전산화, 컴퓨터프로그래밍, 수식처리 등을 다루는 개량경제학 시간도 몇번 있었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모든 수업을 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배운 내용들을 전부 소화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그러나 최대한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바짝 신경을 써서 귀 기울여 들으니 갈수록 수업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미처 알아듣지 못한 내용들이 없진 않았으나 끝에 가서는 대강의 흐름과 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수업에 관한 측면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금번 여름경제학교를 통해 얻은 최대의 소득은 현지인들과의 교류 경험이다. 한국에서 지역학를 하면서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드문 나로서는 이보다 더 소중한 기회는 없었다. 현지인들은 거의가 경제전공자들이라 대화의 내용이 매우 풍성하였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수업에서 배우는 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정도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모두가 라틴아메리카 내에서도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라,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카리브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멕시코 및 중미지역 출신의 학생들은 CEPAL의 연구동향과 결과에 불만족해하면서 남미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상대적으로 그들의 지역에 대한 대표성이 취약해지고 있으며 그들 지역의 실정이 연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탄식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반면 이 지역경제상황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왔다고 말할 수 없는 나로서는 비판의식을 발휘하기는 커녕 주어지는 수업을 그저 따라가기에도 힘에 부쳤다.

   이 외에도 나 스스로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충분히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부분조차 제대로 준비해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중남미지역경제에 대해서도 두말할 나위 없으나 특히 한국경제에 관심이 아주 많은 CEPAL연구진들에게 한국인으로써 그다지 그들의 연구에 기여한 바가 크지 않다는 사실은 강좌가 끝난 마지막 날 발걸음을 돌리던 나에게 마음의 큰 짐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경제용어조차 잘 모르고 강좌를 시작했다는 것 또한 본인의 큰 실책이겠으나 오히려 그런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해결이 되었다. 다만 끝까지 나를 괴롭히던 것은 충분히 사전에 준비할 수 있었던 부분들을 챙기지 못하여 강좌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여름 경제학교 수강생은 출석률을 75%달성하고, 최종 소논문을 제출하는 두 가지 조건을 채워야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모든 학생이 수강 중에 논문계획서를 제출하여야 하며, 논문계획서를 보고 담당자들이 논문주제에 걸맞은 지도교수를 학생들에게 배정해 준다. 논문작성과정은 자신이 평소에 관심 있거나 연구해온 주제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덜 힘들면서 바람직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위논문의 연장선상에서 혹은 학위논문을 예비하는 차원에서 소논문을 작성하였다.

   이와 같이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본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교수님들과, 이렇게 좋은 기회를 여행경비와 체류비까지 제공해주며 물심양면 지원해준 외교부 중남미 협력과와 간혹 안부를 물으며 멀리서도 늘 신경써주시던 중남미협력국의 강홍모 연구원님, 음으로 양으로 지지해주시고 지원해주신 중남미 지역원 원장님 이하 교수님들 일동, 나의 빈자리를 채워 지역원일을 대신 도맡아주었던 동료 연구보조원들, 타지에 있는 가족에게 항상 마음 쓰며 응원해주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체험수기를 마치고자 한다.

  

<2014년 CEPAL 여름경제학교를 시작하며: 첫째날, CEPAL의 모든 시설들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꼭대기 층에 올라가 모든 수강생들과 경제학교 진행요원인 Danilo와 Isabel이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수강첫날 라울 프레비쉬 회의장에서: CEPAL의 모든 장소의 명칭은 CEPAL에 몸담았던 저명한 학자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본 회의장은 CEPAL 건물에서 가장 큰 회의장으로 주요한 정상회담이나 학술회의 등을 이 곳에서 개최한다. 회의장은 둥글게 생겼으며 의자 뒤 벽면에는 회원국들의 국기가 나열되어 있다. 물론 한국국기 또한 발견할 수 있다.>

  

CEPAL의 정문과 그 앞에 있는 호수: CEPAL의 전체건물은 칠레건축가인 에밀리오 두아르트(Emilio Duhart)가 구상하였는데, 그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CEPAL친구들과 한국의 광복절을 기념하며: 때마침 8월 15일이 휴일이어서 동료수강생들과 Patronato에 위치한 한인식당에 가서 불고기 등 한국음식을 먹었다.

  

여름학교 마지막날 CEPAL 간부들과 동료학생들과 함께: Sala de Raúl Prebisch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소감을 한마디씩 얘기하고 CEPAL원장과 CEPAL연구원 박사 세 명은 그에 대한 대답을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폐회식을 거행한 후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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