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36:05 조회수 : 647
국가 : 쿠바


 

김선호 (여행가)

  

  쿠바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곳을 대부분 환상의 섬이라고 한다. 카리브해의 뜨거운 햇빛, 흥이 절로 나오는 라틴 특유의 음악과, 그리고 사탕수수와 럼과 시가, 재즈, 살사의 나라. 모히또나 아바나클럽, 쿠바리브레와 같은 럼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시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살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어느 누가 쿠바를 여행하고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이들에게 쿠바는 마치 파라다이스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사진 1] 쿠바 대성당 앞에서 어린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살사를 추고 있다. [산티아고 데 쿠바]

[사진 2] 제 3의 도시 올긴에 있는 바닷가. Guardarabaca.

  

  트리니다드에서부터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히치하이킹과 까미온(현지인이 타는 교통수단인 트럭)을 타고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도 쿠바의 파라다이스에 푹 빠져 있는 한명이었다. 아마 이때부터 난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파라다이스의 쿠바가 아닌 쿠바에서 사는 쿠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서 말이다.

  

사진 3] 산티아고 데 쿠바 대성당 앞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는 예비부부들. 누가 쿠바 아니랄까봐 결혼식 도중에 살사 음악이 나오고 춤까지 춘다. 설마 했었는데.. 그들은 너무 예뻤다.

  

  까미온을 타고 쿠바의 남부지역으로 내려가면서 쿠바인들의 ‘궁핍한’ 삶을 보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다. 중간 종착역에 정차할 때 마다 40~50년 전에 있었을 법한 철 덩어리 같은 트럭들, 이 트럭으로 근교 도시를 한번 이동하는데 평균 3시간이 걸렸는데,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을 정도로 그 덜컹거림은 만만치 않았다. 5페소짜리 과일과 과자를 팔기위해 달려오는 쿠바 사람들을 보면서 난 내가 말레꼰 해안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들의 웃음은 진정한 행복한 웃음이었을까.

  

[사진 4] 흥겨운 노래가 나오는 상황인데 왠지 표정이 어둡다. 왜일까..?(TROVA TRADICIONAL CUBANA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

  

  그래서 난 쿠바인들에게 쿠바는 그들에게 어떤 나라인지, 정말 그들에게도 환상의 섬인지, 혹은 오성호텔에 머물며 쿠바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말하는 파라다이스인지 물어보기로 작정했다. 왜냐하면, 쿠바 수도 아바나의 말레꼰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노래와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주위 아랑곳없이 자유롭게 춤을 추며 행복해 하는 모습들을 난 까미온을 함께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전혀 볼 수 가 없었으니까.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난 쿠바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난 이때다 싶어 조금씩 마음에 담고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나는 쿠바를 여행 다니면서 볼 수 있었던 너희들의 행복한 표정들을 잊고 싶지 않아. 매 순간을 즐기고 그 소중함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미소가 아닌,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웃음들 말이야.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자유롭게 느껴져서 부럽기도 했지. 단순히 카리브해의 기후 영향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영향이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확실히 설명이 부족해. 이렇게 가난하고 궁핍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거야?”

  방금 전까지 장난기 넘치고, 가장 쾌활한 놈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친구, 넌 정말 여기 쿠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믿니? 네가 쿠바인들의 얼굴에서 봤던 이 기쁨들은 전부 인위적이야. 진심이 아니란 말이야. 한번 생각해봐. 약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는 이 나라를 나가려면 불법으로 다 목숨을 걸어야 했어. 왜 그렇게 많은 쿠바노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지 한번 생각은 해봤니?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쿠바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서야. 실제로 2천만 명이 넘는 쿠바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망명을 했어. 그 웃음들이 진실이라면 이곳을 떠날 리가 없잖아.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는 자들이 더 많을 거야.”

  내가 만난 그 쿠바 친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는 얼마 없어.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도 마음대로 듣지 못해. 내가 사고팔고 싶은 것도 복잡한 절차를 걸쳐야 해. 심지어 문신도 불법이야. 너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는 것들이 우리에겐 전부 쇠고랑을 찰 수 있는 죄가 될 수 있는 것들이야. 예를 들어 비틀즈같은 그룹을 포함해서 영어로 된 모든 음악과 라디오를 듣는 것 자체가 금지 되었고, 어느 아티스트도 영어로 된 음악을 녹음할 수 없었어. 레즈비언, 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수갑을 찰 수 있는 나라란 말이야. 그리고 개인의 집, 개인의 차들을 팔려면 전부 불법으로 팔아야 했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얼마 없어. 직접 소유 할 수 있는 것들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팔 수 있는 방법도 얼마 없단 말이야. 넌 본적 있니? 어느 마을의 대리점에서 개인차를 파는 것을? 그리고 몇 십년동안 달러나 모든 종류의 화폐가 우리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조차 다 금지되었지. 만약 우리 몸에서 달러가 나온다면 전부 교도소행이였어.”

  이 친구의 말대로라면 쿠바에는 평화롭게 살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란 없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자유’라는 것을 쿠바 사람들은 정부의 통제로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울분에’ 찬 듯 말을 이어갔다.

  “또 우리 도시에 있는, 우리 마을에 있는 모든 호텔들은 단지 외국인들을 위한 것이야. 지금도 역시 평범한 쿠바사람들이 호텔에서 숙박을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우리 월급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낮아. 얼마라고 생각하니? 너는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얼마니? 쿠바에선 의사나 기술자들도 겨우 50~70쿡(1$=1쿡)을 받을 뿐이고, 아마 대부분의 쿠바사람들은 그보다도 훨씬 못한 18~24쿡을 받을 거야. 우리는 월급을 페소로 받고 식료품이나 생필품 같은 것들은 전부 쿡으로 사야 해. 25페소를 내야 1쿡으로 받을 수 있어. 내 월급은 370페소지. 이걸 겨우 16쿡으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야. 우리 엄마는 연금을 매달 8쿡을 받고 생활하시는데, 그래...이걸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단지 오래 전부터 이 상황이 바뀌기만을 간절히 기도 하고 있을 뿐이야.”

  실제로 일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롤란드라는 친구는 월급으로 18쿡(450페소)을 받는데 이는 한화로 하면 약 이만천원에 해당한다. 공원 3개를 담당하고 파트타임으로 일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씩 공원 청소를 하시는 76살의 할아버지의 월급은 24쿡(600페소) 한화로 2만7천원, 호세 마르티와 콤파이 세군도와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묻힌 공동묘지 관리자로 사무실에서 매일 7시간씩 일하시는 삼촌의 월급은 15쿡(345페소)으로 한화로는 약 1만 7천원, 74세의 할머니는 연금으로 매달 8쿡(200페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엔지니어와 의사를 제외한 다른 쿠바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평균 월급은 2만원~2만5천 원 정도인 셈이다. 한국기준으로 월급이 2만원이라니. 단순히 화폐 기준으로만 보자면 내게는 정말 적응 안 되는 한 달 월급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내가 쿠바에서 보고 느끼고 심지어 부러워하기까지 했던 해맑던 웃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진 5] 플라스틱 배트와 공으로 야구를 하다 쉬고 있는 아이들 [까마웨이]

  

  사실 두 달 동안 쿠바를 여행하면서 ‘무작위’로 들었던 사람들의 얘기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집 건너면 한 명은 망명을 가있거나, 많은 젊은이들은 쿠바를 떠나고 싶어 하고 심지어 아이가 있는 젊은이들도 거의 자기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한다고 한다. 다른 한 쿠바인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그의 능력에 맞게 지불 하는 것. 그리고 정치적, 종교적, 감정적인 것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갖는 거야. 그런데 이런 꿈같은 세상이 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나마 피델의 동생인 라울이 권력을 물려받으면서 많은 규제가 풀렸다고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는 말과 함께 그는 또 라울은 피델에 비해 개방에 대해서 적극적이라고 아마 개방을 하고 미국과도 수교를 이루면 이 가난함에서 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심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사진 6] 산티아고 데 쿠바의 가장 변화가인 Calle Joaquin Castillo Duany

  

  2014년 12월 수교 단절 54년 만에 양국이 국교 정상화 선언을 하고, 곧 이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쿠바에 방문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밝히고 미국의 쿠바 죽이기 일환인 오랜 봉쇄정책이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하기도 했다. 또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우리는 세련된 태도로 서로 다름과 공존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면서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1961년 쿠바에서 미국 대사관이 문을 닫고 다시 열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과의 수교를 환영하는 쿠바인들이 있는 반면, 미국식 자본주의를 경계해야한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트리니다드나 주변 섬나라들이 어떻게 미국의 자본주의에 의해 침식되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쿠바인 친구는 “미국은 단지 가난한 쿠바를 도와주려는 착한 천사가 절대 아니야. 그들은 어떻게 하든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다시 달려들 테니까. 54년 만의 국교정상화? 이건 단지 쿠바 봉쇄작전이 실패해서 미국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지. 이제 그들은 ‘돈’을 이용해서 우리를 다시 정복하겠다는 것과 같아,”

  비록 많은 쿠바인들이 그들의 나라를 떠나서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고 있지만, 적어도 미국 망명에 성공한 많은 쿠바인들은 미국 생활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은 듯 했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쿠바인들은 그랬다. 언젠간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하고, 쿠바에서 살았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이렇게 자기들이 사랑하는 나라를 떠나서 망명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지금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과연 언제쯤 이들 쿠바인들에게도 그들의 나라가 파라다이스가 될까. 언제쯤 이들 쿠바인들에게 “나는 이 나라에서 행복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들이 찾는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쿠바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원하는 ‘자유’를 가지고, 가장 최신의 고성능 핸드폰과 IT기기를 소유하면서도 결코 행복하다고 ‘감히’ 말하지 않는(우리는 헬조선이라고 부르니까!) 우리 한국 3포 세대들과 이들의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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