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36:46 조회수 : 716
국가 : 파나마


 

이정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 석사과정]

  

코코넛 우유(즙)으로 코코아 밥을 만드는 구나여인들

  

   '남편이 꼴보기 싫어지면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으면, 헤어지면 되죠.‘

  파나마 시티에서 300km나 떨어진 수풀로 우거진 굴곡진 습지를 지나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카리브연안의 산블라스에서 만난 구나얄라의 한 여성이 덤덤한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오래된 체제, 종교, 믿음은 어쩐지 보수적이고, 엄격한 질서와 통제에 개인의 자유, 특히 여성의 권리와 이익을 억압할 것만 같은 착각은 내 편견 이었을까? 구나얄라에서 여성은 소외받는 존재도 아니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 받는다. 교육이나 정치에 있어서도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기회를 부여받고,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물론 공동체 내에서도 그렇다. 여성이 처음 월경을 하고 결혼을 하는 날에 마을의 작은 축제를 열 정도니, 오히려 여성이 공동체의 중심이라는 인상을 준다.

   파나마란 나라에 안에 이렇게 또 다른 세계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파나마 운하, 그리고 마이에미처럼 높게 솟은 파나마시티의 고층빌딩들. 이게 내가 파나마를 가기 전에 가지고 있던 파나마에 대한 편협한 인상의 전부였다. 그 속에 원주민이나 아름다운 자연이 포함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치권이 인정되는 독립주가 네 곳이나 있을 거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할까. 이번 여름 콜롬비아 - 파나마 구간을 이동하는데 비행이라는 문명의 편리함을 마다하고 4박 5일에 걸쳐 파나마 지협의 근해를 따라 카리브해를 작은 보트를 타고 횡단하겠다는 무모하고도 다부진 결심에 대한 작은 선물이었을까? 구나얄라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와 구나민족의 고유한 문화가 잘 보존된 파나마의 숨겨진 보석이었다.

   구나를 만나러 가는 경로는 실제로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험하고 험하다. 하나는 콜롬비아 국경 인근에서 최소 4일이 걸리는 고속보트 투어나 요트투어를 통해 구나열도로 접근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3년 전 개통된 국도를 따라가 비탈진 습지산을 넘어 까르띠라는 작은 항구까지 이동해 거기서 1~2시간 보트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파나마에서 오는 편이 시간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더욱 편하기는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보트투어를 하는 경우 쿠나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40여개의 섬 저마다의 크고 작은 차이를 관찰할 수 있다. 육지와 가까운 섬은 문명의 영향으로 위성 수신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반면, 망망대해에 오직 한 가구가 살아가는 면적이 300평 남짓 되는 섬도 있다. 그런 작은 섬에서는 파도가 치는 방향에서 지면이 유출되면서 섬이 면적이 점차 줄어들다 사라지기도, 섬의 위치가 이동하기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우리가 하루 밤 해먹을 치고 머물렀던 섬의 경우 파도가 지면을 쓸어가 현지 가족들이 살고 있던 초가집이 해안가에 가까워지면서 초가 기둥이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집을 새로 지어야 할지, 다른 섬으로 이동을 해야 할지를 고민 중 이었다.

  

구나열도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마을의 거리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산블라스(San Blas)라는 지명으로 잘 알려진 구나얄라 자치구역(Comarca GunaYala)

  

   콜롬비아의 뚜르보(Turbo 또는 Necodli)라고 불리는 항구를 떠난지 3일만에 파나마 국경을 넘어 열도의 한 작은 섬에 정박했다. 날이 궂은 탓에 국경지역(Sapzurdo)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던 탓이었다. 까뿔가나와 보다도 더 인구가 적은 이 국경 마을은 인구 200명 이 채 되지 않고 육로가 없으니 섬이나 마찬가지라 생필품을 구하기 힘들고 초등학교까지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전히 파도는 가팔랐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트는 출렁거리는 파도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어느 순간에 파도에 부딪혀 배도, 사람도 순식간에 튕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어렵게 구나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쿠나 혹은 구나는 콜롬비아와 파나마 해안가에 섬에 걸쳐서 거주하는 구나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일컫는다. 우리가 방문했던 섬에는 약 90가구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원두막 형식의 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은 학교와 일부 공동체 건물과 운동장을 제외 하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전기는 태양열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등과 같은 최소한의 필요한 전력만을 충당해서 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마저도 모든 집이 가진 것은 아니었는데,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국제 NGO의 지원 사업이었단다. 일정규모가 되는 섬 중에 일부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줬다고 설명했다. 짚으로 지어진 검소한 집들사이에 직사각형으로 각진 태양열 집열판은 단연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동네의 골목골목 어렵지 않게 쿠나의 전통 자수 활동 몰레(Mole) ‘옷’이라는 뜻의 몰레(Mole) 는 오늘날에 그들의 주요 수입원중 하나이다. 자수 물고기, 원숭이, 각종 동물들과 기하학적 무늬를 형형색색의 실로 수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들의 블라우스와 치마, 머리띠를 만드는데 쓰인다. 실제 당시에 처음 방문한 섬의 경우 구나 여인들의 절반이 몰레를 두른 전통적인 복장을 고수 하고 있었다. 현대적인 의복을 한 경우에 기초적인 스페인을 구사했지만, 전통적인 복장의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이 경계의 눈빛이나 태도와 함께 자국의 언어로만 대꾸를 할 뿐이었다. 전통 자수 몰레(Mole) 작업중인 여성

  

  구나(Guna/Kuna)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걸까?

  구나는 스스로를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둘레(Dule) 또는 뚤레(Tule)라고 자칭한다. 사실 파나마는 원주민과 원주민 혼혈이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비교적 높은 비율의 원주민들이 사는 나라다. 그 중 산블라스 열도(San Blas archipiélago)의 구나얄라 자치구역(Comarca Guna Yala)은 콜롬비아와의 국경을 맞댄 카리브해 지역의 360여개의 섬을 가르킨다. 그들의 언어는 둘레야나(Dulegaya)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사람의 입이라는 뜻이다.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인구는 섬인구의 5%도 채 안 된다. 구나의 뿌리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때 본래 콜롬비아 북부지방과 현재 파나마의 다리엔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이라는 것인데 기본적으로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입, 멸시와 학대를 피해서 이주했다는 설이다. 이외에도 식민지 시절 중미 카리브지역의 흑인 인구(Mosquito)의 인구증가에 따라 이주를 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은 중앙아메리카의 치비찬(Chibchan)이라고 불리는 부족이 남아메리카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구나도 동쪽으로 이주했다가 1800년 외부인의 침입을 피해, 또 섬 지역의 상품의 교역기회를 장악하기 위해 점차 구나 군도로 이주해 정착했다는 것이다. 최초사료로는 스페인 탐험가 알폰소(Alfonso de Ojeda) 와 바스코(Vasco Nunez de Balboa)가 1500년에 콜롬비아를 여행할 때 우라바(Uraba) 만에서 구나와 접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산블라스(San Blas)라는 지명으로 잘 알려진 구나얄라 자치구역(Comarca GunaYala)

  

   이후 한 때, 스코트랜드 탐험가들은 구나열도의 동부에 신세계(New World)라는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1707년 자금부족으로 그 시도가 무산되었다.

  

섬들을 오고가는데 이용하는 구나사람들의 교통수단

  

  구나의 자치권 획득과정

   1870년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기 이전까지 현재의 쿠나는 현재의 동쪽 해안가(Darien, Colon)까지 더 넓은 영토(Darien, Colon) 하나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03년 신생국가 파나마는 이와 같은 자치권을 폐지하였다. 이후 바나나농사꾼, 금광부, 양식업자 등이 산블라스에 무분별하게 들어오면서 구나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파나마 경찰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1925년 미국정부에 후원을 입은 민족의 지도자 Iguaibilikinya Nele Kantule of Ustupu가 이끈 구나혁명이 성공과 함께 툴레 공화국(Republica de Tule)의 설립을 선언하지만, 이는 3일 천국에 그치고 만다. 이후 파나마정부는 구나의 관습을 인정하고 평화조약을 제안하는 등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1938년 구나얄라는 파나마 정부와 영토권과 자치권을 허용한다는 조건아래 협약을 맺는다. 구나의회에 의해 자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한다. 현재까지 구나는 자체의회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49개의 소 지역별 대표가 각각의 해당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사일라(Sahila)라고 불리는 최고 권력자는 정치적, 의식적 지도자로서 구나 사람들에 의해 선택된다. 사힐라는 음악을 통해 선조들의 메시지와 기억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쿠나의 역사, 법, 전설이 모두 구두로 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역할이 아주 중대하다. 일주일 2번씩 Onmaked Nega, or Ibeorgun Nega 라고 불리는 회의의 집에 모여 공동체의 안건을 논의하는 동시에 지혜로운 성인으로서 마을의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를 도와 두 명의 대변인이 그의 말을 해석하거나 제안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사용하는 어휘가 고급의 전문화된 단어기 때문이다. 49개의 공동체가 각각의 사일라를 가지며, 이들을 상위에 최고의 사일라(Great Sahila)가 이끄는 구나총의회가 자치지역(Comarca)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구나의 아이들

   1938년 협약 조건 중에 하나는 아이들의 경우 파나마 정부의 교육시스템에 통합시킨다는 것이었지만 현재 이 조항은 자치권과 자치조직을 인정한다는 조항과 위배된다는 점에서 ‘불법’으로 간주된다. 구나 아이들은 섬이 일정 인구규모가 넘어 초등학교가 있는 경우, 그곳에서 파나마 공교육시스템의 일부과정을 통해 스페인어를 배우는 등의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섬에서 나와 주요 도시에 정착한다고 해도 부모들이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바로 공예품 제작 및 판매 등 생업에 바로 뛰어드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구나의 인구 및 가족구성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구나의 인구는 32,000명이다. 하지만 실제로 구나 코마르카 영토 외에 파나마시티 또는 콜론 지역, 콜롬비아의 일부 해안가에 거주하는 인구까지 포함하면 그 인구가 12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구나사회는 여성의 역할이 크고 여성을 중시하는 모계사회다. 결혼을 하는 경우 남자가 신부의 집에서 처가살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남성들은 결혼 후 여성의 성을 따라 가는 것이 보통이다. 섬 공동체에서 음주는 엄격히 통제되는데 여성이 태어나거나, 첫 월경을 시작한 날, 그리고 결혼을 하는 날에 한해서 해당 가족이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축제를 열 수 있다. 이때에 비용은 해당가족이 모두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적 형편이 허락하는 경우에 한해서 축제를 열 수 있다. 축제 날 전 구나의 전통 발효주를 만들어 시음을 하는데, 그 맛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축제를 미루기도 한다.

  

  구나의 경제

  

섬들을 오고가는데 이용하는 구나사람들의 교통수단

  

   구나의 경제의 한 축은 몰레와 같은 수공예품이고, 다른 한 축은 이뤄왔던 구나의농업과 어업에 있다. 구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플라타노, 코코넛, 랍스터와 같은 자체 생산품을 외부와 교역을 통해 필요한 식품 및 공산품들을 얻어왔다. 그들은 과거부터 콜롬비아, 멕시코, 중국과의 교역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는데다가 경제적 성공을 중요시 여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섬의 주요 산품인 코코넛을 무역의 화폐로 삼아 콜롬비아와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며 본토에 의지하지 않고 자체적인 무역활동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중에 하나다. 오늘날에는 수도로 이주한 쿠나가 몰레와 같은 전통공예품을 판매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수공예품이 구나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렇게 구나의 경제적 기반이 될 교역이 없었다면 다른 원주민 공동체와 다르게 구나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나아가 현재까지 구나가 살아남았을 수 있을까? 그 배경을 현지에서 만난 친구는 구나원주민은 현재까지 그 가족 및 공통체 중심 전통을 유지해온 데서 그들의 비결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종종 인근 바닷가에서 마약을 발견하는 횡재를 얻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산블라서 여행 루트 팁 : 보트 VS 요트

  

   날씨에 영향을 받아 4일에서 일주일이 되버린 파나마의 보트투어을 겨우 마치고 파나마에 도착했다. 요트와 유사한 세일링 보트 투어(Sailing Boat) (550$)을 예상했었는데, 착각을 하는 바람에 콜롬비아에서 파나마까지의 섬들을 스피드 보트로 이동해가면서 섬에서 머무는 방식의 San blas Adventure 투어(375$)를 택하게 됐다. 비용이 약간 더 저렴하고, 기간이 짧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비용만 100$ 절약한 셈이 됐다.

  이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보트투어의 경우 요트에 비해 정말 언제 어디서라도 사고가 날 수 있는 야생(?)적이고 모험적인 길들여지지 않은 루트라는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보트에서 본인을 포함한 3명이 파도로 인한 강한 충격으로 허리와 등을 다쳤다. 반면에, 요트는 그날 그날의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훨씬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며, 배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된다. 섬에 머무르는 시간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보트 투어에 비해서 배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언급한 안전문제만 빼면, 중간 중간에 섬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머무르며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보트투어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산블라스 투어라는 오랫동안 이 투어를 진행해온 이 여행사는 구나인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음식 및 숙소, 가이드도 현지인들의 도움과 참여로 이루어진다. 고된 여행이라는 점 때문인지, 이 루트를 밟는 여행자도 적은 편이고, 아직까지는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원시성'을 간직한 아름다운 카리브해의 400여개의 섬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하고, 희소한 기회다.

  

왼쪽 편이 세일링 보트고 오른쪽 편이 스피트 보트

겨우 1-2 가구가 사는 구나열도의 작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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