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34:36 조회수 : 654
국가 : 볼리비아


 

이유주 (부산외대 글로벌지역학과 석사과정)

  

  라파스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버스는 50분이 지나서야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과 나무판자로 허술하게 지어진 집들이 뒤엉킨 빈민가 엘알토(El Alto)지역은 마치 고산지대의 척박한 기후를 이겨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재현하는 것처럼 비장해 보인다. 얼마나 흘렀을까. 창 밖 너머로 푸른 빛깔을 띠는 호수가 등장하고 광활한 하늘아래 야마 떼가 거친 대지 위를 거니는 풍광에서 여행자는 감동을 넘어 경이의 순간에 닿는다. 비록 이곳이 빈곤과 불평등으로 드러나는 사회현상과 구조를 간과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이 광대한 볼리비아 사회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라파스에서 출발하여 코차밤바 주(Cochabamba)까지 걸리는 시간은 8시간 정도로 수월한 편이었다. 문제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운동이자 남미 급진좌파정권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하는 볼리비아 사회주의 운동당(MAS)과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Aymara)가 2005년 대선에서 승리하기까지 그 정치적 투쟁의 중심에서 독보적인 사회세력으로 활약했던 차파레 코카재배농민들의 생활터전까지 도착하는 일이었다.

  해발 2500미터로 라파스에 비해 비교적 저지대에 속하는 코차밤바는 평균 기온 20도를 웃돌며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기에 볼리비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아쉽게도 도시를 구경할 여유가 없어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지나가는 주민을 붙잡고 차파레(Chapare)로 가는 교통수단을 물었다. 아저씨가 친절하게 길은 안내해주는데 걱정스러운 눈빛이 역력하다. 매고 있던 가방을 보이지 않게 안쪽으로 돌려 매고 해가 지면 반드시 숙소에만 있으라고 신신당부하신다.

  코차밤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중앙시장을 따라 30분 정도를 걸으면 버스와 작은 봉고차(colectivo)가 밀집해 있는 구역이 나온다. 해당지역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4-5시간이며 요금은 25볼. 40분 남짓 기다렸을까. 농민으로 보이는 사람들, 원주민 복장을 한 이들, 할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승차하기 시작했고 나도 재빠르게 버스에 올랐다.

차파레로 들어가는 도로 중심에 볼리비아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검문소가 있다. 군인들은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50미터를 걸어 공중화장실 앞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버스의 내부를 점검한 뒤 돌려보낸다

  

볼리비아 코카재배지역과 차파레 코카재배농민운동

  볼리비아 코카재배지역은 크게 수도 라파스 북서부에 위치한 전통지역 융가스(Los Yungas de La Paz)와 이주역사를 지닌 코차밤바주의 열대지역(el Trópico de Cochabamba)으로 나뉜다. 코차밤바 열대지역은 다시 차파레(Chapare), 카라스코(Carrasco), 티라케(Tiraque)군으로 나뉜다. 필자가 방문했던 지역은 1980년대‘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마약단속국(DEA)을 설치하면서부터 시위와 폭력, 인권침해가 끊이질 않았던 차파레 군의 비야투나리(Villa Tunari)마을이다. 1952년, 볼리비아 혁명을 일으킨 민족혁명당이 농지개혁을 실시하면서 이주화로 형성된 차파레 지역은 197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코카인 수요가 증가하면서 인구가 증가한다. 1982년 고지대의 극심한 가뭄으로 토지를 잃은 원주민들과 1985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실시로 국영광산기업이 몰락하면서 터전을 잃은 광부들이 생계유지의 목적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인구가 기하학적으로 폭발한다. 현 정권의 수장이자 코차밤바 열대지역 코카재배농민조합(Seis Federaciones del Trópico de Cochabamba)의 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의 정치 경력에 밑거름이 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따라서 볼리비아 내부에서는 코차밤바 열대지역을 차파레라는 지명으로 통합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바로 이러한 것일까?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정부나 볼리비아 신자유주의 정권이나 시골에서 코카 잎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원주민·농민으로 구성된 정치기구(Instrumento Politico)설립을 주도하여 현 정권을 출범시키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안데스 원주민의 전통문화를 상징하며 볼리비아의 국내수요를 담당하는 코카 잎은 수도 라파스에 위치한 전통지역 융가스(Los Yungas)에서 대부분 재배되고 있다. 1988년, 미국 정부는 전통지역을 제외한 볼리비아의 모든 재배지역을 불법지역으로 간주하는 법령 1008(Ley 1008: Ley del Régimen de la Coca y Sustancias Controladas)을 도입하면서 차파레 지역의 코카 잎 생산을 전면 금지시킨다. 이후 차파레 코카재배농민운동은 미국정부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기존 정통정당들에 대항하면서 1990년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억압받고 소외된 원주민·농민운동으로 부상하기 시작하고 코차밤바 물전쟁(2000)과 가스전쟁(2003)에서 코카 잎을 천연자원으로 재해석하며 국권을 수호하는 민중운동으로 확장한다.

  필자가 방문한 시기는 2006년 사회주의 운동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그러니까 정확히 10년 후였다. 현재 볼리비아 코카재배농민운동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고 현지에서도 현황과 관련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연구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1)한때 라틴아메리카 대안사회운동의 사례로 언급되었던 차파레 코카재배농민운동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후덥지근한 열대지역의 기후, 외부인에 대한 조합원들의 경계, 현 정권과의 관계, 국제사회의 압력, 부정적 여론,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자료의 부재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이고 민감한 사항들이 국외뿐만 아니라 볼리비아 내부 연구진들까지도 현지조사와 학술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은 사회주의 운동당이 집권한 이후부터 더 더욱 복잡하게 변하고 있는 듯 했다.

  2006년 집권한 사회주의 운동당은 천연자원의 국유화를 선포하며 광업이나 가스 산업과 동일하게 코카 잎을 볼리비아의 천연자원으로 지정, 코카 정책에 관한 외부의 개입을 제국주의적 행위로 판단한다. 2008년 미국 마약단속국을 차파레 지역에서 몰아내고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통제 하에 한 가구당 1카토 이내로 코카를 재배함으로 코카인 시장으로 유출되는 가능성을 줄이고 재배되는 코카 잎을 산업화라는 전략을 통해 합법적인 국내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것이 현 정권의 방향이자 목표이다. 2009년 신헌법에 코카 잎을 원주민의 전통 문화이자 재생가능한 천연자원으로 규정한 것은 이와 같은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2011년 라틴아메리카 좌파 집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억압받던 원주민을 해방하는 탈식민적 기획으로 평가받는 사회주의 운동당 정권은 코차밤바와 베니(Beni)주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 정책을 법안으로 부친다. 당시 고속도로는 원주민 보호구역인 이시보로 세쿠레 국립공원(TIPNIS)의 중심을 관통하도록 건설될 예정이었는데 코카재배농민조합은 원활한 코카 잎 수송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이후 코카 잎의 산업화 전략이 실패로 드러나고, 차파레 지역에서 생산되는 코카 잎의 최종목적지가 코카인 시장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주장하는 보고서와 기사가 속출하면서 현 정권과 차파레 코카재배농민조합의 관계를 후원주의, 코포라티즘, 포퓰리즘, 반원주민정부와 반원주민세력이라는 관점으로 해석되었다.

  차파레 군의 Villa Tunari 마을은 코카재배자들이 거주하면서부터 화려한 지역으로 변모했다는 대중들의 소문과는 다르게 초라하고 황량했다. 폭력과 범죄가 일상화되어 불안과 공포에 젖은 주민들의 모습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도로는 다른 농촌마을보다 비교적 잘 닦여져 있었지만 동부지역으로 향하는 화물차 수송을 위한 중간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근처 호스텔에 짐을 풀고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수루비(surubi)라는 생선요리를 시켜 한 끼를 때웠다. 내일 오전 방문해야할 코카재배농민조합 건물위치를 식당 주인에게 물어본 후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차파레 지역의 Villa Tunari마을. 2016년 6월 촬영.

  

차파레 코카재배농민운동의 오늘

사회주의 운동당의 지지기반임을 증명하듯 입구에서부터 사무실 내부까지 온통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다. 우측에 걸린 증명서는 공동체 코카 통제 프로그램 서약서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코카재배농민조합 사무실을 방문했다. 직원에게 한국에서부터 머나먼 볼리비아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부탁하니 조합 간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30분을 기다렸고 운이 좋게도 코카재배농민조합의 일원이자 행정서기인 마리아를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한 뒤 비야투나리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치피리리(Chipiriri)마을로 이동했다.

Chipiriri에 위치한 마리아 가족의 집

  

  1950년대까지만 해도 불모지였던 차파레 지역은 조합원의 규율과 협동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구당 1카토라는 한정된 면적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률로는 한 가족이 생활하기에 부족한 상황. 정부는 대안작물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코카인 시장으로 유출될 수 있는 수확량을 줄이는 동시에 다른 농작물(바나나, 오렌지 등)의 재배량을 늘려 농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정부와 농민조합원들은 코카 잎 재배농민을 둘러싼 국제적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차파레 코카재배농민조합 여성들은 일주일에 두 번 제빵 기술을 배운다. 치피리리 읍에서 개최된 회의장의 모습

  

이틀 뒤 참석한 농민조합회의는 아침 8시부터 시작하여 저녁 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는데 토론의 주제는 농민들의 교육수준, 토지증서를 둘러싼 갈등, 공동시설 수리문제에서부터 코카 잎에 관한 국가 정책과 칠레와의 해양 분쟁을 두고 둘러싼 천연자원과 국권수호 쟁점까지 일상과 지역 영역에만 한정된 논의가 아니라 국가수준의 정치영역까지 매우 광범위했다. 조합원들의 의견은 굉장히 다양했고 그 비판의 강도가 상당히 높아 지도자들은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정책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들을 설득하고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줘야 했다. 참여민주주의의 실제현장을 그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전통지역 융가스 코카재배농민운동 이야기

  차파레 지역을 방문한 뒤 일주일 후 라파스에 위치한 전통재배지역 융가스 지역의 농민조합을 방문하여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1988년 제정된 법령 1008은 이주지역의 코카재배를 전면 금지시키고 전통지역의 재배만을 허용했는데 2) 코카 재배 면적을 12,000헥타르로 제한하면서 전통지역 농민들의 불만을 사기 시작한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격렬한 저항을 표출한 세력은 차파레 지역의 농민들이었지만 융가스 농민들 역시 저항의 선상에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을 만나 현 정권의 정책과 차파레 코카재배농민조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저희도 여전히 MAS정당을 지지합니다. 그 누구도, 과거의 그 어떤 정권도 우리와 같은 하층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어요. 8,90년대와 비교했을 때 볼리비아 사회 내에서 폭력과 범죄가 없어지고 전통지역까지 재배가 금지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점, 생활수준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점 등, 모든 것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자체적으로 국가수준의 코카 잎양을 제정하여 차파레 지역을 포함하여 볼리비아 모든 코카재배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도에도 찬성합니다. 지금 우리는 현 정권과 차파레 농민들을 비난하는게 아니에요. 단지 원주민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코카 잎은 이곳에서 재배된다는 사실에 대한 정부의 표명, 같은 코카재배농민임에도 그들에게 정권이 경제적 후원을 더 해주고 있는 사실, 그리고 저희 또한 수많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상황을 알아주길 바라는 겁니다. 바로 우리들 내부에 관한 이야기에요.”(ADEPCOCA의 조합원들과의 인터뷰. 2016.7)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지만 조합원들의 표정과 답변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볼리비아 코카재배농민운동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치열한 현실에 처해있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모든 난점들과 모순들이 오히려 볼리비아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가 아닌가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긍정적인 착각을 하며 올려다 본 라파스의 하늘은 참으로 맑고 깨끗했다.

전통지역에서 재배되는 코카 잎들은 수도 라파스에 위치한 ADEPCOCA 건물 Fátima 시장(Mercado de Fátima)으로 집결되어 중간상인에 의해 전국으로 수송된다.

  

참고자료

Alison Spedding (2004), Kawsachun coca: Economí́a campesina cocalera en los Yungas y el Chapare, PIEB, La Paz­Bolivia. Daniela Espinoza M (2012), El imperio de coca, NUEVA CŔ́ONICA, No.98.

http://www.24horas.cl/internacional/morales-nuestro-pecado-es-ser-indigena-y-antiimperialista-729127 (Morales: “Nuestro pecado es ser indígena y antiimperialista”, 04/07/2013)

http://www.eldeber.com.bo/bolivia/chapare-diversifica-cambiar-rostro-cocalero.html (Chapare se diversifica para cambiar su rostro cocalero, 27/07/2015, el Deber)

http://elpais.com/diario/2011/08/17/internacional/1313532006_850215.html (Morales se distancia de los indígenas: La construcción de una carretera en una reserva de la Amazonia agudiza la crisis del presidente boliviano con una comunidad que lo aupó al poder, 08/2011, El pais)

http://www.paginasiete.bo/seguridad/2016/2/12/adepcoca-pide-referendo-para-saber-coca-consume-86433.html(Adepcoca pide referendo para saber qué coca se consume más, 12/02/2016, Pagina Si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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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지역 융가스 코카재배농민과 운동은 80년대부터 현지조사에 착수한 영국학자 Alison Spedding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2) 세부적으로 전통지역 융가스의 La Asunta 지역은 1980년대 이주화로 형성되었으며 코차밤바 열대지역의 Vandiola 마을은 전통지역으로 간주된다. 1980년대부터 전통지역과 이주지역을 일방적으로 구분한 법령 1008에 관한 논쟁은 Alison Spedding의 저서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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