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체계 분석 (world-systems analysis)이 그 이름을 갖고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이 1974년이다. 그 해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자본주의 체계의 성장과 미래의 쇠퇴」라는 논문과 『근대 세계체계』 1권이 동시에 출간된 해이다. 2012년 9월 10일 현재 구글(Google)에 따르면, 출간 이후 그 논문은 10,167회, 『근대 세계체계』 1권은 10,073회 인용되었다고 한다. 40년이 좀 못 되는 시간 동안 해마다 평균 260 여회 꼴로 다른 연구자들의 저작에 인용된 셈이다. 물론 구글 집계에는 비영어권에서 출판된 저작들은 대부분 포함되어 있지 않고, 영어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구글에 잡히지 않는 저작들도 있을테니 전 세계적인 실제 인용회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월러스틴은 그 이후에도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해왔고, 후속 저작들 또한 1974년 저작들의 충격에는 못 미치겠지만, 세계적으로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은 또 어떠한가? 1977년 『뉴 레프트 리뷰』에 실린 로버트 브레너의 논문은 1,052회, 같은 해에 『미국 사회학회 저널』 (AJS)에 실린 테다 스카치폴의 서평은 317회 인용되었다. 브레너와 스카치폴의 비판이 출판되기 전까지 나온 짧막한 서평들은 요즘 말로 "주례사 비평"이라고 부르는 형식적 찬사들이거나, "이데올로기적 트집 잡기"에 그치고 말았다. 월러스틴의 저작이 끼친 지적 충격의 대단함에 비해 그나마 좀 제대로 된 비판들이 나오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린 셈인데, 어떤 학자는 이것의 이유를 월러스틴의 저작들을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백과사전의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그는 성공한 학자이다.
학문세계에서의 성공이란, 맹목적인 추종자들만큼이나 맹목적인 반대자들을 양산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중간에서 월러스틴의 문제의식 중 일부에는 공감하되 그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는 광범위한 중간층들이 존재한다. 필자는 하나의 학문 조류의 혁신이나 발전은 바로 이 찬성과 반대의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는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갖고 있는 전문학자들은 월러스틴의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왔으며, 이들의 비판은 세계체계 분석에게는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었다. 이 글에서는 국내에 별 소개가 되지 않았던 사회학 내외부에서 이루어진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흐름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2.
요즘이야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가 하등 이상하게 들리지 않지만, 황금기를 구가하던 전후 자본주의에 이상 징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던 1970년대 초반은 사정이 달랐다.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은 지구의 표면이 서로 다른 여러 세계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미국과 UN 기구들, 그리고 세계은행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 제시했던 경제 발전을 위한 원조 프로그램들은 개별 국가의 정책 자율성을 상대적으로 존중하였다. 이러한 일국 단위 정책들에 의해 구성되는 경제발전 경로는 로스토우의 "근대화 이론"에 의해 학문적으로 뒷받침되었다.
이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은 UN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ECLA)의 라울 프레비시로부터 나왔다.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학자들은 자국 경제발전의 저해 원인을 자국 내부의 어떤 요인 – 그것이 근대화 이론에서 말하는 미개한 "전통" 사회이건, 아니면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봉건제"의 잔재이건 – 이 아니라, 식민지 경험으로부터 역사적으로 유래하여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서구 중심부 국가들에 대한 종속적 관계에서 찾았다. 안드레 군더 프랭크는 "저발전의 발전"이라는 테제로 이를 정리하였고, 이는 이후 주로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 "종속이론"이라고 총칭되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종속 분석에 대한 영어권의 관심은 다른 한편 개별 국가의 경험에서 나온 종속 분석의 특수성을 뭉개 버렸고, 구체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라틴아메리카 혹은 제3세계 전반의 문제로 부당하게 일반화시키는 효과를 가져 오기도 하였다. 이는 종속 상황에서는 한 국가의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결정론"적 해석으로 확대해석되었다. 또 구체적 종속 상황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에 "외인론"이라는 쉽게 지우지 못할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결정론"이나 "외인론"이라는 딱지가 단순히 속류화된 종속이론을 영어권으로 소개한 학자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종속 분석들은 초국적 수준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이론화할 수 있는 맹아를 내포하고 있었다. 프레비시의 중심-주변 (center-periphery) 개념쌍이나 프랭크의 중추-위성 (metropole-satellite) 개념쌍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국적 분석단위의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하였으며,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상을 이론적으로 제시하지 못하였다.
3.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분석의 혁명적 성격은 그가 자본주의의 동학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일국적 분석단위의 문제설정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그저 종속이론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를 개념적으로 보강하고 시공간적 지평을 확장시킨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체계 분석은 1960년대 후반 배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의 출판 이후 조성된 미국 역사사회학의 전성기의 정점에서 등장하였다. 월러스틴은 당시까지는 이질적으로 존재하던 마르크스, 폴라니, 브로델 등의 이론적 자원들을 종합하여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새롭고 독특한 "사회학적 상상력 (sociological imagination)"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 사회학적 상상력은 매우 간결한 밑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라니의 경제인류학에 기대어, 소체계 (mini system)와 세계체계 (world-system), 세계제국 (world-empire)과 세계경제 (world-economy)를 구분하고, 마르크스스의 「공산당 선언」에 기대어 개별 국민 경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국가간 체계 (interstate-system)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브로델의 중층적 시간 인식을 차용하여 역사적 자본주의의 전개를 장기지속의 와중에 전개되는 콘드라티에프 주기의 콩종크튀르 속에서 설명한다. 또한 종속이론의 중심-주변의 양극구도에 반주변부 (semiperiphery) 개념을 첨가함으로써 개별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거나 쇠퇴하더라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계는 안정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모든 주장들은 과감하긴 하지만, 무척 단순한 주장일 뿐이다. 월러스틴이 뛰어난 것은 이 단순한 가정들(postulates)을 갖고 1970년대 당대의 자본주의 세계경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하나의 역사적 체계로 등장한 "긴 16세기"(1450-1640년)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확장되어온 역사를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재현했다는 데에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월러스틴은 세계체계"론" (the world-systems theory)보다는 "관점 (perspective)" 혹은 "분석 (analysis)"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이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동학을 경직된 개념의 틀인 특정 이론 체계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개념과 이론이 역사적 현실을 재단하여 압도해버리는 "물화 (reification)"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으로부터의 의도적 거리두기는 다른 사회학자들로부터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스카치폴이나 마이클 헥터 같은 사회학자들은 그가 의지하고 있는 단순명쾌한 일반적 가정들과 그가 동원하고 있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들의 간극을 매개할 이론적 장치의 부족과 개념적 엄밀성의 부족을 지적한다. 이는 세계체계 내부에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 상대적 응집성을 갖고 있는 국가와 같은 단위 사회 구조의 발전 과정을 개별 사건 간의 인과성 구성을 통해 재현하고자 하는 역사사회학자들, 혹은 이 단위들의 상이한 발전경로를 비교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비교사회학자들에 의해 주로 제기되었다. 또한 추상적 개념을 조작적 정의로 변용하여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현실을 직접 다루고자 했던 실증주의적 경향의 사회학자들도 이에 대한 비판에 동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역사가들과 인류학자들은 정반대의 이유로 월러스틴을 비판하였다. 역사가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론의 부재가 아니라, 반대로 월러스틴이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그의 설명틀에 끼워 맞춰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월러스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면서 동시에 월러스틴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브로델의 경우, 월러스틴의 입장은 너무나 체계의 논리를 중요시하는 사회학적 관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다른 한편, 외부 지역이 팽창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편입되어 주변부화된다는 월러스틴의 일반적 가정은 시드니 민츠나 마샬 살린스처럼 서구 사회 바깥의 소규모 사회들의 특수성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에게 더 큰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들은 월러스틴의 일반적 가정이 해당 사회 자체에 고유한 운동 법칙이나 연속성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편입 과정에서 주변부의 행위자들이 행한 능동적 역할을 무시하였다고 비판한다. 마샬 살린스의 경우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의 편입 과정에서 청 제국, 하와이 부족들, 북미 대륙 북서부의 콰키우틀족, 이 세 집단의 지배층이 동일한 세계적 사건에 완전히 다르게 대응해온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2001년 11월 빙햄턴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개최된 페르낭 브로델 센터 설립 25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도 나온 바 있다. 월러스틴, 아리기, 크리스토퍼 체이스던, 마흐무드 맘다니 등 유명한 학자들이 총출동하였던 이 학술대회의 끝무렵 종합토론 세션에서 『유럽패권 이전』의 지은이 재닛 아부루고드는 월러스틴에게 세계체계 분석이 "행위자 (actors)", 특히 주변부의 행위자들의 역할을 과소평가 혹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월러스틴은 자신은 주변부의 행위자를 결코 무시한 적이 없다고 방어하면서도, 만약 자신의 분석이 그렇게 보여졌다면 그것은 행위자 간의 힘의 차이의 객관적 존재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사실 월러스틴의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에 비교적 호의적인 학자들의 이러한 비판들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제기된 브레너를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조절이론가들의 비판과는 결을 달리 한다. 이들의 경우, 자본주의라는 분석대상의 단위를 일국 수준의 사회구성체와 동일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동학을 일국 내 계급관계 혹은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의 결합을 통해서 설명하는 반면, 세계적 수준에서의 역사적 자본주의 작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린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출판된 브레너의 저작이나 최근에 출판된 아글리에타와 브와이예의 저작들은 이들이 애초에 보여주었던 일국적 분석단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경제의 동학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분석단위로 삼는 것에 대한 맹목적 거부는 이제 적어도 학계에서는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
4.
월러스틴 혹은 세계체계 분석 일반에 대한 최근의 비판으로서는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소시얼리스트 리지스터』 편집자인 레오 파니치와 그의 제자들이 제기한 미국 헤게모니 쇠퇴에 대한 월러스틴과 아리기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지리학자인 닐 브레너 (Neil Brenner) 등에 의해 제기된 "방법론적 영토주의 (methodological territorialism)"에 대한 비판이다.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은 19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월러스틴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세계체계 연구자들에 의해 공유되었다. 특히, 아리기는 금융경제의 확장을, 브로델을 빌어 "자본주의의 가을"이라는 역사적 유비(analogy)를 통하여 헤게모니 쇠퇴의 징후로 포착하였다. 파니치 등은 세계체계 분석의 미국 헤게모니 쇠퇴 주장이 세계경제의 게임의 룰을 정하는 구조적 권력(structural power)으로서 미국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해 실제로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강제력뿐만 아니라) 동의에 기반한 헤게모니라는 그람시적 개념은 다자적 협의틀보다는 미국의 일방적 권력 행사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현실 속에서 강화되는 미국의 구조적 권력을 분석하는 데에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파니치 등의 비판이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라는 특정 주장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닐 브레너의 비판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에 따르면, 월러스틴의 일국적 분석단위 비판은 초기의 그 혁명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일국적 분석들과 마찬가지로 분석단위의 공간적 규모(scale)를 분석대상의 규모와 일치시킴으로써 공간을 정적인 (static) 실체로 파악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공간 인식은 늘 재구조화되는 과정으로서의 공간, 서로 다른 규모를 갖는 구조들이 중첩되는 영역으로서의 공간, 서로 다른 행동반경을 갖는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영역으로서의 공간의 측면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 비판은 기존의 세계체계 분석이 초국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핵심-주변의 관계적 동학을 비교적 잘 포착할 수 있는 반면, 서로 다른 규모를 갖는 응집적 구조들이 어떻게 중첩되면서 상호 규정하는가의 문제를 도외시한다고 비판한다. 사실 이 점에서 이 방법론적 영토주의 비판은 (핵심부의 행위자와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추었던) 로버트 브레너나 (주변부의 행위자와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추었던) 마샬 살린스의 비판을 어떻게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에서 건설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성찰적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비판에 따르면, 보다 작은 규모에서 응집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적 변동 - 예컨대, 일국 경제 수준의 변동 - 을 외부의 충격에 대한 내부의 반응, 혹은 세계적 규모의 변동이 국지적으로 현상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를 제기한다. 이제 세계체계 분석은 각기 다른 규모의 구조 변동들이 어떻게 맞물려서 전개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곧 전체(whole)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그 부분(parts)의 구조화에 어떠한 계기를 이루는지와 더불어 그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 - 특히 비핵심적 행위자들(non-core actors) - 이 전체의 구조화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하는 문제를 동시에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월러스틴과는 다른 사회학적 상상력, 곧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다른 밑그림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혹은 월러스틴의 용어를 차용하자면, 월러스틴과는 다른 방식으로 (월러스틴의 연구를 포함한) 기존의 연구로부터 "탈피(unthhinking)"할 필요를 제기한다. 세계체계 분석, 혹은 글로벌 정치경제 연구 일반에서 월러스틴의 위상이 상대화될수록 실제 자본주의의 작동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풍부하게 될 것이다.
5.
1930년생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저술을 발표하여 왔지만 『근대세계체계』 4권의 출판이 계속 연기됨에 따라 과연 월러스틴이 다음 권들을 낼 수 있을 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왔다. 필자 또한 그 중 한 사람이었고, 몇 년 전에는 월러스틴에게 직접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는 쓰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믿지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월러스틴은 이 대작의 4권을 『근대세계체계』 3권이 나온 지 22년만인 2011년 출판하였다. 1974년 당시 "긴 16세기"부터 1968년까지의 역사를 3부작으로 다루겠다는 월러스틴의 계획은 무척 야심만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역사(사회)학계의 거목들에게 이러한 야심은 보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로델은 "긴 16세기"의 역사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부작을 통해 재현했으며, 홉스봄의 경우는 애초에 예정했던 19세기 3부작을 출판한 이후에도 『극단의 역사』를 통해 20세기의 역사마저 정리해내면서 목표를 초과달성하였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페리 앤더슨이나 테다 스카치폴 같은 대가들도 한 때 3부작 계획을 밝혔으나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근대세계체계』의 경우, 3권이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월러스틴이 애초에 계획했던 시대까지 다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애초의 3부작 계획은 확대되어야 했다. 4권 서문에서 밝힌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계』 저술 계획은 다시 확대되어 6권까지로 예정되어 있다. 그의 만수무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