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철학과 현재를 접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를 통해, 시대의 비판을 극도로 가져오면서 철학은 정치가 된다.” -들뢰즈
인간은 독단주의, 근본주의, 본질주의에 맞서 창의성과 자유로운 사상으로 싸워 왔다. 이렇게 싸워 왔기에 인간은 화석화된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적 존재가 된다. 1999년 차베스 정부가 출범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혁명과는 거리가 멀 것 같던 베네수엘라에서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급진적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현재,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르다 못해 약간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극좌파의 시각으로는 부패하고 우경화된 사민주의적 관료체제의 지속이라고 보고, 자유주의의 시각에서는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일인지배의 권위주의적, 비민주적 포퓰리즘 체제로 본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혁명의 가장 중요한 독창성은 ‘공동체적 또는 동네 평의회적 힘의 폭발’이다. 이제껏 어느 좌파 혁명에서도 보지 못한 성격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와 근대성이 본격화된 지 약 200년 만에 처음으로 ‘북’과 ‘남’의 위계적 권력관계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핵심은 두 개의 권력 채널을 구성하려는 혁명이다. 기존 국가구조의 권력에 병행하는 대안적, 자율적 권력-주민평의회-의 구성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어느 한 시점에 완성된 통합적 체제가 아니라, 항상 사회적 소외와 배제를 필연적으로 낳는 체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개혁해야만 한다는 열린 인식이 있어야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차베스 정부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지속적인 급진적 ‘개혁’ 체제라는 점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을 차베스 개인의 카리스마에 집중하여 차베스 혁명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베네수엘라의 변혁은 수많은 가난한 기층대중이 만들고 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혁명은 단지 사회적 형평성 또는 분배를 강조하는 복지국가를 겨냥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 또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복원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가장 가난한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참여적, 주인공적 민주주의’를 통해 오랜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배제와 소외를 벗어나려는 유토피아적 변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