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 작성일 : 2021-07-09 16:06:38 | 조회수 : 1,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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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대통령이 자택에서 살해됐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용병 암살범들은 경찰과 교전을 벌이며 대치 중이다. 대통령직을 대신 수행할 사람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수십년간 독재와 정치 격변을 겪은 나라는 다시 격랑에 휘말렸다. ‘카리브해 극빈국’ 아이티가 처한 현실이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53)이 7일(현지시간) 자택에서 무장괴한들에게 살해됐다. 퍼스트레이디 마르틴 모이즈 여사도 총에 맞아 치료를 위해 미국 마이애미로 이송됐다. 클로드 조제프 아이티 임시 총리는 즉각 계엄령을 내리고, 군과 경찰에 의한 통제를 강화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 비공개 긴급회의를 열고 아이티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암살 배후 추정도 힘들어 외신에 따르면 암살 용의자들은 아이티 공용어인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 대신 영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했으며, ‘잘 훈련받은 전문 외국 용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AP통신은 용의자 4명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했고, 나머지 용의자 2명은 인질극을 벌이다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밤 열린 기자회견에서 레옹 샤를 아이티 경찰청장은 모이즈 대통령 살해 용의자들을 ‘용병’이라고 지칭하면서 “용병들이 인질극을 벌였다”고 밝혔다. 보치트 에드모 주미 아이티 대사는 “암살범들이 미국 마약 단속국 요원으로 위장하고 대통령 사저로 침입했다”며 “그들의 행동을 봤을때 우리쪽 요원의 움직임과는 달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암살 배후를 추정하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의 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바나나 수출업을 하다 2015년 당선된 모이즈 대통령은 농업으로 빈곤을 해결하겠다고 나서 ‘바나나맨’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 또한 비리·횡령 의혹을 받았고, 야권에선 지난 2월 임기가 종료됐다며 사임을 요구했다. 모이즈 대통령은 부정선거 시비로 임기 1년이 지난 2017년 2월에야 취임했기 때문에 임기는 내년 2월까지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야권 반발 속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고, 지난 2월 정권 전복 시도를 적발했다며 대법관 등을 체포하기도 했다. 아이티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에 치안까지 무너졌다. 컨설팅업체 콘트롤 리스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아이티에서 일어난 납치 범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0% 늘었다. 대통령 퇴진 시위도 올 들어 빈번하게 일어났다. 범미주보건기구(PAHO)에 따르면 아이티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도 못했을 정도로 ‘국민은 있지만 국가는 없는’ 상태였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활동하는 아이티계 출판인 로드니 생 엘로이는 “아이티 엘리트들은 모이즈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반대하고, 서민들은 그가 경제를 망쳤다고 미워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를 반대했던 사람도 현재 기뻐할 수 없다. 앞으로는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향후 시나리오는 혼돈 아이티는 혼돈이 불가피해 보인다. 먼저 대통령직을 누가 대신 수행하는지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1987년 만들어진 아이티 헌법엔 대통령 유고 시에 대법원장이 권한을 승계하게 돼 있다. 이후 2012년 개정된 헌법에서는 의회가 투표를 통해 임시 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2012년 개정 내용이 프랑스어로는 반영됐지만, 또 다른 공용어인 크레올어로는 번역되지 않아 두 헌법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헌법을 모두 적용해도 적임자가 없다. 대통령직 승계 대상인 르네 실베스트르 대법원장은 최근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의회도 사실상 공백 상태라 의회의 임시 대통령을 뽑을 수 없다. 아이티 정국 혼란 속에 의회 선거가 제때 치러지지 못하면서 현재 하원의원 전체, 상원의원 3분의 2의 임기가 끝난 상태다. 게다가 조제프 임시 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5일 새 총리로 신경외과 의사 출신의 아리엘 앙리를 지명했다. 조제프 총리는 앙리 지명자와 합의해 당분간 자신이 총리직을 수행한다고 밝혔지만, 앙리 지명자는 다른 인터뷰에서 “내가 현직 총리”라고 주장했다. 오는 9월 의회 선거와 대통령 선거, 국민투표가 예정돼 있지만 이 또한 예정대로 열릴지 알 수 없다. NYT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총리와 야권이 합심해 선거를 통해 차기 지도자를 뽑는 것이지만 평화적으로 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 60%가 빈곤층인 카리브해 극빈국 아이티는 최근 몇 년간 극심한 정치·사회 혼란을 겪어왔다. 2000년대 이후로는 지진,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피해도 극심했다. 캐나다 퀘백 자유당 소속 아이티계 정치인 프란츠 벤자민은 “대통령이 살해됐다는 것은 공공안전 부재를 뜻한다. 대통령을 죽일 수 있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면서 “해외 원조와 투자가 저해될 것이고 결국 경제·정치는 후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태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이태혁 교수는 “2019년 이후 칠레, 니카라과,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및 집권 정치세력의 부정부패에 기인한 소요사태가 대통령의 암살로까지 이어지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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