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④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식민 유산과 발전의 차이 (구경모HK교수)
작성자 : 임두빈 | 작성일 : 2020-05-08 16:20:16 | 조회수 : 3,048 |
관련링크 :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9 | ||
원문요약 : 연재를 시작하며 대학지성 이번 호(2020.01.05)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IIAS) HK+사업단의 <라틴아메리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월 1회 연재한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은 2008년부터 2018년 8월 31일까지 10년간 라틴아메리카의 세계화를 분석하는 인문한국(HK)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후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에 다시 선정되어 2018년 9월1일을 시작으로 향후 7년간 연구 아젠다 “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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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식민 유산과 발전의 차이
라틴아메리카는 빈곤과 저개발, 불평등 연구의 보고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에 대한 저개발 논쟁이 한창일 때,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유엔 산하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에서는 종속이론을 발표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는 빈곤 해결을 위한 실천적인 사상으로 해방신학이 등장하였다. 이같은 거대 이론들이 출현했던 시기의 한편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연구들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되었다.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는 멕시코 빈민촌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 모습을 ‘빈곤의 문화’로 정의하였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저개발과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던 거시 이론부터 가난한 자들의 삶을 기록한 미시 연구까지 다양한 차원의 빈곤 연구가 진행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빈곤과 저개발, 불평등의 원인을 밝히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 저개발의 원인으로 꼽는 공통적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식민지와의 연관성이다. 식민지를 경험한 대부분의 제 3세계 혹은 개발도상국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저개발이 식민지와 관련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발전을 이룬 동아시아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예외적인 발전은 종속이론을 비판하거나 그 한계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됐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발전 정도 혹은 그 차이가 명확하게 밝혀진 상태는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발전 차이를 식민지 이후에 나타난 현상인 대외 원조나 부정부패, 교육 수준, 국민성 등으로 분석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었다. 예컨대 한국의 발전 요인에 대해 일부에서는 6.25이후 미국의 원조 정책이 동력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반공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미국이 엄청난 양의 경제적 지원을 했음을 상기한다면, 단지 미국의 원조로서 한국 발전 했다는 사실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두 지역의 식민지적 특성이 현재의 발전 차이를 짚어볼 수 있는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을 시작으로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발전 격차를 양 지역이 경험했던 식민 유산의 차이를 통해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식민지는 문화 접변의 한 유형으로서 문화변동을 초래한다. 문화접변은 상이한 문화가 조우 혹은 충돌함으로 양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익히 아는 바대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구대륙과 신대륙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아메리카 원산지인 감자와 옥수수, 고추, 카카오 등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먹을거리가 되었으며, 이와 반대로 커피와 사탕수수 등은 라틴아메리카 농업 경제에 중요한 작물이 되었다. 이 같은 양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동아시아의 식민지 상황에서도 드러난다. 다만 동아시아의 경우는 난생 처음 본 문물이 교환된 신대륙과 구대륙이 겪었던 충격처럼 사회문화가 ‘통째로’ 뒤바뀌진 않았다. 동아시아는 쌀이라는 공통된 작물을 공유하고 있었고 상대의 문화에 충격을 받을 만큼 생소하지 않았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교역과 수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서로에게 익숙한 상황이었다.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가 경험한 식민지의 차이는 바로 문화 충격의 수준이 달랐다는 점이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는 문자와 무문자 사회의 만남이었다(라틴아메리카에는 마야처럼 문자의 존재가 확실한 문명도 있었지만,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유럽은 이미 근대화가 시작되는 단계였고 라틴아메리카는 그렇지 못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 문화를 서구적 관점에서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지역의 문화적 괴리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 두 문화권은 식민지 이전에 서로 교류한 적도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이 식민 지배를 통해 겪은 문화적 이질성과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반면에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는 모두 문자 사회였고 문화 및 인종적인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동아시아는 예로부터 한자 문화권이었고, 국가 간의 교류도 활발했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은 고대부터 일본 문화가 형성되는데 기여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라틴아메리카는 동아시아에 비해 10배가 넘는 기간인 3백년이란 긴 시간 동안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식민지의 여파가 더 크다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와 비슷한 기간과 시기에 식민지를 경험한 아프리카를 보면, 식민 기간이 변수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경우를 보면, 침략국의 문화적 이질성이 클수록 식민지내의 문화변동이 격렬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지배에 따른 문화변동이 거셀수록 기존의 사회 구조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유럽의 정복자가 라틴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주민들이 절멸상태에 이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당시 원주민들의 선택은 죽거나 종속되는 것뿐이었다. 그 예로 아시엔다를 비롯한 식민 시기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원주민을 가혹한 환경으로 내몰아 죽음과 노동 착취의 갈림길에 서게 하였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원주민은 ‘열등한 인종’이 되었다. 식민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 구조의 왜곡은 지속적인 사회문화적 갈등을 야기하였고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라틴아메리카가 당면한 뿌리 깊은 문제는 인종에 따른 사회적 위계화로 법적으로는 인종 차별이 없지만, 일상에서는 백인부터 순서대로 혼혈인종, 그리고 원주민과 흑인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관계가 꽤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혼혈인종 내에서도 피부색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사회적 차별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처럼 피부색에 따른 인종 범주는 사회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어 일상의 인간관계나 취업, 혼인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인종의 차이는 사회적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의 불균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축적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으로 드러난다. 수스닉(Sušnik)은 과라니 원주민에 대한 통시적 연구를 통해 초기 스페인계 정복자들이 과라니 원주민과 혼혈을 이루면서 어떻게 계층이 분화되는지 설명하였다. 과라니 원주민들은 추장만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른 부족과의 혼인동맹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복자들에게 우호적인 편에 있던 과라니 부족들은 정복자를 추장과 같은 지위로 여겨 자기 딸을 시집보냈다. 당시 정복자들은 20명에서 30명 정도의 원주민 여성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정복자 가족의 거주 형태는 정복자의 총애를 입을수록 가까이 살고 그렇지 않을수록 점차 떨어져서 사는 구조였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복자와 자주 접하는 부인의 자녀들이 정복자의 언어와 제도, 법, 관습을 더 많이 익힐 수 있었고 멀리 떨어져 지내는 부인의 자녀보다 출세할 수 있었다. 수스닉의 연구는 가족과 친족 사례를 통해 초기 식민시기 부터 지배세력의 사회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에 따라 계층의 범주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기 사례는 그나마 ‘선택받은’ 혼혈인종 내에서의 사례이지만, 정복자를 가까이 하지 못한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흑인들은 이러한 기회조차도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다. 인종적 위계에서 따른 불평등은 그들이 먹고사는 문제인 토지 문제와도 직결되었다. 식민시기의 유산인 대농장제도는 그 모습을 바꿔가며 라틴아메리카에 남아있다. 중미지역의 경우에는 식민지 당시 주름잡았던 몇몇 가문들이 아직도 대부분의 토지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 같은 현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남미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인종적으로 가장 열악한 입장에 있는 원주민들은 식민 유산의 부작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종 문제는 식민유산에 따른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발전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인종 및 역사, 문화적 유사성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유형의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불평등 요인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경우는 인종 문제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식민 경험은 전방위적인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것이 라틴아메리카 내부의 문제들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유사한 문화를 가진 집단이 식민 지배를 함에 따라 사회 구조의 왜곡이 상대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비해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식민 지배에 따른 문화 변동의 정도는 두 지역의 발전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발전의 차이는 식민지배로 인해 발생한 사회 구조의 왜곡 정도에 대한 비교연구를 진전한다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경모 부산외국어대학교·중남미지역원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학사와 석, 박사 과정을 마쳤다(사회인류학 및 민속학 전공).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이민과 종족, 민족주의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 경향과 분석틀에 관한 고찰」, 「파라과이 군부독재정권의 토지정책과 농민운동의 역사적 요인」, 「파라과이 민족국가 형성에 있어 과라니어의 역할」, 「중남미인에 대한 한국인의 ‘왜곡된 시선’-시간관을 중심으로-」 등 다수가 있다. 저작권자 © 대학지성 In&Ou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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