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③ 안데스 삶의 철학이자 방식인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 (조영현HK교수)
작성자 : 임두빈 작성일 : 2020-05-08 16:18:19 조회수 :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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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요약 : 연재를 시작하며
대학지성 이번 호(2020.01.05)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IIAS) HK+사업단의 <라틴아메리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월 1회 연재한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은 2008년부터 2018년 8월 31일까지 10년간 라틴아메리카의 세계화를 분석하는 인문한국(HK)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후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에 다시 선정되어 2018년 9월1일을 시작으로 향후 7년간 연구 아젠다 “신전
안데스의 행복론: 수막 카우사이


국민이 느끼는 행복이란 지표로 국가의 순위를 매기면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시아의 소국 부탄이나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과테말라, 콜롬비아, 쿠바,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라틴아메리카는 소득은 적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대륙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가 대중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기가 일상화된 지역이다. 불평등, 가난, 쿠데타, 게릴라, 범죄와의 전쟁, 인종차별, 마약, 폭력 등의 문제가 계속해서 신문 지상에서 다루어진다. 경제도 석유나 천연가스 가격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1980년대 외채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었지만, 불평등과 가난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원채굴주의와 원자재 수출에 기초한 발전정책은 성과를 보지 못하고 풍요 속의 빈곤, 즉 ‘자원의 저주’에 빠지고 말았다. 중요 천연자원이 매장된 지역은 주로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며, 생물 종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만 집착한 나머지 난개발이 이루어졌고, 환경은 파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과 자신들이 염원하는 행복의 문제를 재성찰하기 시작했다. 먼저 기존의 발전정책과 근대성 문제를 비판했고, 환경문제와 신자유주의를 성찰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들의 집단적 삶의 경험을 담고 있는 세계관이자 행복론인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를 제안했다.

수막 카우사이는 ‘충만한 삶’을 의미하는 케추아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스페인어로는 ‘부엔 비비르(El Buen Vivir)’라고 번역되고 ‘잘 살기’, ‘자연 친화적인 좋은 삶’ 정도의 뜻을 담고 있다. 수막 카우사이는 일정한 원리나 고유 논리를 가지고 있는 아마존과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의 삶의 철학이자 삶의 방식이다. 이 수막 카우사이는 2008년 에콰도르, 2009년 볼리비아 신헌법의 정신을 관통하는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개념’인 동시에 헌법의 목표이기도 하다. 에콰도르 헌법 전문은 아래와 같이 선언하고 있다: “우리들은 다양성 안에서 시민적 공생의 새로운 방식과 자연과의 조화, ‘좋은 삶(el buen vivir)’에 도달하기 위하여 수막 카우사이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2008 헌법 전문).” 수막 카우사이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과 국가 발전 프로젝트의 방향이다.

수막 카우사이는 공존과 공생이 아닌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체제를 비판하면서 재부상했다. 원주민들이 제시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안데스적 대안이 바로 수막 카우사이인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전통적 세계관에서 추출한 핵심원리들을 기반으로 현대적으로 이론화한 것이다.

안데스 사유의 핵심 원리는 공생과 공존을 위한 ‘관계성’에 있다. 안데스 철학의 대표자인 에스터만(Estermann)은 “모든 것은 관계되어있고, 상호의존적이며, 서로 접속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관계의 그물 안에 있으며, 이 조건을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최종 목적과 모든 행동이 지향하는 것이 행복인데 이것을 관계성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성은 존재의 모든 영역과 차원에 나타난다. 인간, 자연, 신까지도 이 관계성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원주민들에게 행복, 즉 충만한 삶은 곧 조화로운 관계 속에 공존하는 것이다. 이 관계성의 원리는 원주민들의 공동체적 삶의 원리에서 파생된 것이다.

공동체적 삶의 형태는 단지 인간 사이의 사회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까지 포함한다. 인간은 개별적이고 분리된 자치적 존재나 개인이 아니다. 원주민들에게 분리되고 단절된 존재는 무가치한 존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는 결코 충만함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은 고원지역에 사는 안데스 원주민들은 감자와 극소수의 작물만이 자라나는 척박한 고지대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다. 이곳은 상호 연대적인 협력 없이는 하루도 삶을 이어갈 수 없는 척박한 땅이다. ‘주고받는다’라는 의미의 아이니(Ayni/dar-recibir)는 가족과 이웃의 관계를 특징 짓는다. 노동의 교환을 의미하며 한국의 품앗이와 유사하다. 주택 건설, 밭을 가는 일, 옥수수 씨앗을 뿌리는 일 등 단기간의 노동을 하는데 노동력이나 경작을 위한 기구들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세계관은 자연스레 안데스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간의 공생을 위한 공동체적 사유를 낳았다.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운 관계 뒤에는 안데스 사람들이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양육하는 ‘어머니이신 자연’ 혹은 ‘대지의 신’으로 이해하는 파차마마가 있다. 안데스 주민들에게 파차마마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생명 전체의 어머니로 이해된다. 따라서 수막 카우사이의 비전속에 자연은 특권적 위치를 점한다.

대지는 단순히 물질이 아니다. 이곳은 생명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자연은 그들에게 단순히 물질이나 원자재가 아니다. 서구 사유에서 자연은 주체가 아닌 대상이기에 착취할 수 있는 자원이며, 인간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서구의 논리는 이 세상을 조립, 해체, 조작이 가능한 공학적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했다. 근대는 자연과 사회가 분리되는 이혼 과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런 논리는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전용할 수 있다는 철학을 창조해냈다. 서구 근대가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놓친 것은 바로 세계를 바라보는 통합적 시각이다. 근대적 사유는 인간중심적 효용주의(utilitarismo)에 기초한 시각에서 자연을 보기 때문에 물질, 원자재, 그리고 자본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수막 카우사이는 이런 근대적 사고의 오류를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아마존과 안데스 사람들은 자연 없이 인간은 하루도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삶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2008년 에콰도르 신헌법은 수막 카우사이의 전망에서 ‘자연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자연은 인간이 상정하는 유용성이나 가치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를 지닌다. 인간, 동물, 식물이 없더라도 세상은 계속된다. 자연은 자체로 생명을 내포하고 있고, 이 가치는 인간의 인식, 관심, 인정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에콰도르 신헌법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 가치(valor inherente)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연도 그 자체로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원주민들은 인간중심적 관점이 아닌 생명과 생태중심의 관점에서 사유한다. 수막 카우사이를 말하는 학자들은 인간 중심적 권리인 인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권(혹은 생태권)도 존재하며,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것이 요청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자연권을 헌법에 명시한 나라가 됨으로써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었다.

안데스와 아마존 원주민들은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발전이나 진보 개념 자체를 의문시한다. 그 개념 자체가 갖는 전망뿐 아니라 그것이 남긴 결실 자체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남과 북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의존한 것으로 남반구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이 발전은 대부분 소비조장과 자원추출에 의존하는 것들이었다. 이제 지구 자체의 자생능력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새로운 삶의 형태뿐 아니라 다른 생산과 소비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다시 지구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생물종다양성의 고갈, 지구온난화, 핵산업과 핵무기의 위협, 사회적 폭력의 증가, 대량학살 등의 문제가 부상했다. 발전은 고사하고 인류의 생존조차 담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에 적용된 발전이론은 근본적으로 서구 발전이론과 그 모델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이 지역 현실에 맞춘다는 이유로 약간 수정한 것들이었다. 발전개념에서 근대화는 산업화로 연결되고 산업화는 경제성장과 동일시되었다. 경제성장은 단순히 생산성의 증대로 요약되었다. 여전히 발전은 국내 총생산(GDP)으로 측정되며, 산업 발전에 따라 근대화의 정도가 결정되고 있다. 사회적 조건이나 환경적 조건은 무시된다. 시장과 경제활동이 인간 삶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경제지상주의와 시장 신성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서구의 발전주의는 복지를 주장하며 삶의 질 문제는 경시한 채 물질적 소유 확대와 경제적 수입 증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즉, 발전 자체를 경제성장으로 축소하고 환원시켜버린 것이다.

수막 카우사이의 관점에서는 발전은 이제 순전히 양적인 목표만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과정이다. 발전은 부의 축적도 아니고, 산업화도 아니다. 발전은 자연과 인간, 공동체들 간의 조화로운 공생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 가능성을 위태롭게 함이 없이 현재의 필요에 부응하는 발전”을 의미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도 수막 카우사이의 시각에서 보면 아직도 발전을 경제 중심, 즉 성장이나 진보의 관점에서만 보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개념인 것이다. 서구의 직선적 시간관과 역사관을 탈피하지 못하고 아직도 끊임없는 진보나 과학의 무한한 진화에 대해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수막 카우사이는 정치무대에서 다민족국가 건설로 나타난다. 다민족성(Plurinacionalidad)은 다민족국가를 요구하는 근거이다. 안데스 원주민운동은 단일 국민국가(Estado uninacional)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민국가는 근대가 탄생시킨 국가모델로서 그 자체로 배제적, 동질적, 단일 문화적, 단일 언어적 특징을 갖는다. 단일문화에 의존한 국가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유일하고 패권적인 지배문화에 동화된 하나의 국민만을 인정한다. 이 모델에서는 다양한 문화, 다양한 언어, 다양한 주민을 국가 분열을 초래하는 장애물로 인식한다. 모든 차이는 헤게모니를 가진 문화에 동질화 과정을 통해 흡수되거나 포섭된다. 사회 지도층은 원주민과 흑인은 ‘백인화’되어야 문명화되는 것이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약자들의 언어와 문화는 무용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원주민이나 흑인들은 단일 국민국가 모델에서는 자신들이 제대로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시민으로서 대표성도 갖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원주민 지식인들은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민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고유영토와 고유문화, 고유한 종족성과 언어를 가진 또 다른 민족임을 인정하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 안에 다양한 민족이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들은 에콰도르가 다민족국가가 될 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인종적 위계성이나 문화적 불평등이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국민은 충만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이등 시민’이 존재하는 한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


수막 카우사이는 원주민 전통 세계관과 삶의 원리에서 출발했지만, 곧바로 다양한 현대 비판사상의 성과들이 결합되었고 안데스 사회변혁을 위한 담론이자 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수막 카우사이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볼리비아 MAS당과 에콰도르 ‘시민 혁명’ 정부의 실천전략이자 정책으로 구체화 되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특히 원주민들이 원하는 행복은 자신들의 전통과 단절되거나 문화와 분리된 삶이 아니라 그것들의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막 카우사이는 원주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와 자연과 같은 대상을 주체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배제된 원주민을 국민의 지위로 끌어올리고, 배제된 문화와 정체성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타자를 주체로 전환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안데스 원주민의 시각에서 보면 진정한 행복은 남보다 ‘더 잘살기’나 복지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파차마마로 대표되는 자연에 대한 존중과 다양한 인종, 문화적 가치가 존중받고 공존하는 세계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조영현 부산외국어대학교·중남미지역원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중남미지역학(정치사회학) 박사. 현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주요 저서로는 , <라틴아메리카 명저산책>(공저), <디코딩 라틴아메리카-20개 코드>(공저)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2012년 멕시코 대선과 트위터, 그리고 #Yosoy132운동과의 상관성 연구>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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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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