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임두빈 작성일 : 2023-11-19 18:00:11 조회수 : 394
국가 : 대한민국 언어 : 한국어
출처 : 인문한국연구
발행일 : 2022.10.28
원문링크 : https://www.hknet.kr/news/articleView.html?idxno=310

'코로나19 시대' 해외지역을 연구한다는 것

심주형 I 인천대 중국·화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2019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신종 폐렴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출현이 보고되었을 때, 그 누구도 향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격리와 방역이 인류의 일상적 삶의 조건이 되리라 예측하지는 못했다. "중국적 질서와 표준의 재구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 '중화의 부흥’과 일대일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기반으로"라는 연구 아젠다를 통해, 인문한국플러스(HK+) 2유형 사업을 수행해 가던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도 그러한 예상치 못한 연구조건의 변화와 악화일로의 상황 전개로 인해 사업계획 추진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연구소는 10년간의 HK사업을 통해 국내외 유수의 연구기관, 특히 중국 현지 연구기관들과 함께 구축해 온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공동 현지조사를 통한 연구를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수행해 오던 터였다. HK+사업을 시작하며 연구 아젠다의 확장을 위해 새롭게 구성된 연구소 내 '동남아시아 화교연구클러스터'의 경우에도 정기세미나를 통해 축적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반도 화교사 연구의 비교연구 가능성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 화교 집거지에 대한 현지조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외 현지 연구기관과 조사 일정 협의를 마무리하고 항공권 구매만을 남겨두고 있던 현지조사 계획은 급속히 확산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으로 인해 계획 연기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국경봉쇄'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Wikimedia Commons

 

국경봉쇄 상황에 직면한 해외지역연구

 

냉전 질서의 그늘이 걷히기 시작하던 1980년대에 국내에서 본격화된 해외지역연구는 해외여행 자율화와 이념 장벽의 붕괴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해 왔다. 언어학 중심 그리고 제한된 자료 접근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초기 해외지역연구는 탈냉전 지구화의 역사적 전환과 함께 직접적인 현지조사를 수행하고 현지 연구자 및 연구기관들과 교류를 확대하며 공동연구와 성과축적으로 발전해 나아갔다. 이러한 해외지역연구의 환경변화와 활성화는 서구 중심적 국제질서의 해체 및 재편과 맞물려 아시아 사회·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과 성찰을 통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지난 40여 년 동안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해외지역연구가 한국 사회의 '초국적' 관점의 확대와 이해를 심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한국이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조응하며 스스로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지적 기반과 자산을 생산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장기간의 국경봉쇄 상황은 그간 해외지역 연구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구축하고 발전시켜왔던 연구 기반에 심각한 도전을 불러일으켰다. 지역과 인구는 격리와 방역의 기본단위로 재범주화 되었고, 이른바 '미·중 패권 경쟁'으로 표상되는 발흥하는 '신냉전'적 국제질서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했던 국경봉쇄의 벽을 상호 몰이해와 혐오의 정서로 켜켜이 쌓아 올렸다. 사람들의 이동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현지 상황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평가의 근거들을 획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사이 온라인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채 유통·확산 되는 정보들이 그나마 해외지역 연구 성과가 대중적 사유와 인식의 지평 위에서 공명하던 자리를 침식해가는 듯했다. 이처럼 지난 2년여 동안은 "무엇을 혹은 어떤 문제를 연구할 것인가?"라는 해외지역 연구자들의 일상적 고민과 함께 "어떻게 연구를 수행할 것인가?" 그리고 "연구의 지속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적 성찰이 무겁게 짓누르는 시기였다.

 

이주와 이민, 문화교류사를 통한 '코로나19 시대'의 성찰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지속이 현실이 된 2020년 12월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중국학술원과 공동으로 '코로나19와 동아시아의 차이나타운'을 주제로 국제 웨비나(Webinar)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국제 학술대회를 기획하고 개최하는 것은 모두에게 큰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던 시기였기에 웨비나에 참여한 아시아 각국 연구자들의 현지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심지어 웨비나 플랫폼과 화상회의 시스템에 채 익숙지 않은 해외 연구자들도 있었다. 각국의 참여 연구자들의 접속 환경을 점검하는 사전 예행연습을 진행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현지 보조원을 섭외하여 참가자의 프로그램 설치와 사용을 돕도록 하는 준비 조치를 통해 마침내 코로나19로 가로막힌 국경을 넘어 첫 국제 학술교류의 장을 열어낼 수 있었다.

연구소가 개최한 사상 첫 국제 웨비나에서는 '코로나19 시대' 각국에서 확산되는 이주·이민자에 대한 혐오 담론들과 강력한 방역 정책에 직면한 한반도, 일본, 동남아시아의 차이나타운의 현황을 점검하고, 문화교류사 측면에서 위기 극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학문적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1년 가까이 지속된 아시아 각국의 강력한 방역정책과 특히 중국의 국경봉쇄는 서로 다른 이주·이민과 문화교류사를 지닌 각국의 차이나타운에 커다란 시련과 도전을 안겨주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으나, 동시에 화교 공동체들의 자구노력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각국의 차이나타운에 배태된 오랜 이주와 이민, 문화교류사는 방역과 봉쇄의 시대에 발흥하는 타자에 대한 혐오담론을 극복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해 나갈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이라는 공통의 인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와 동아시아의 차이나타운'을 주제로 개최되었던 첫 웨비나는 아시아 각국의 관련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봉쇄' 상황에서도 연구성과 교류를 지속하고, '코로나19 이후'의 국제 공동연구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발걸음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백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국경개방과 해외 현지조사 재개 가능성을 조심스레 예측하기도 했지만, 2021년에도 여전히 해외지역연구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과거 1931년에 발생했던 '만보산사건'의 90주년을 맞이하여 그 역사와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국제 웨비나를 기획해 개최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만보산사건'은 중국 만주의 창춘 만보산 인근 지역에서 수로 건설 공사 중에 있던 조선인 농민을 중국 관헌이 압박하고 몰아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만주사변의 직접적인 발생 원인으로 간주되며, 사건의 내용이 당시 조선 국내 신문에 과장 보도되면서 조선인의 국내 화교에 대한 혐오가 창궐하여 전국적인 조선화교배척사건과 심지어 약 200여명의 화교가 학살되는 참사까지 벌어진 슬픔과 아픔의 역사로 남아있다.

만보산사건과 조선화교배척사건은 이후 제1차 상해사변, 만주국 건국, 중일전쟁 등 동북아시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정치적 격변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픈 역사'를 넘어선 사건사적 의의를 무겁게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보산사건·화교배척 사건 90주년 국제웨비나'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학자들이 참가하여 지난 역사에 대한 회고와 동시에 동아시아 각국의 현재적인 이해와 해석의 관점을 공유하였다. 또한 웨비나를 통해 이주와 이민을 통해 형성된 동아시아의 상호교류사와 그 질곡을 회고하고, 더 나아가 이른바 '과장보도' 혹은 '가짜뉴스'가 지닌 사회적 파급력과 해악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성찰해 보는 인식의 지평을 펼쳐냈다는 점에서 시의성과 더불어 남다른 의의를 지닌 학술행사였다.

 

해외지역연구의 새로운 모색과 도약을 향하여

 

2022년은 한·중 수교와 한·베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코로나19의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국경개방'이 여전히 유예되고 있던 상황에서, 인천대학교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수교 30주년 한·중 한·베 국제학술회의: 이주와 이민으로 살펴보는 30년의 교류'를 주제로 한 웨비나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회의는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최된 국제 학술회의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탈냉전 지구화시대에 한국과 두 사회주의 국가-중국과 베트남-간의 교류사를 되돌아보고 상호 비교의 관점도 제시하는 학술 행사기획으로서 특별한 의의를 지녔다. 또한 정치·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상호관계에 대한 접근이 아닌 교류사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주와 이민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간의 경험과 연구성과를 공유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수교'기념 학술대회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코로나19 이후'의 이주·이민의 문제와 문화교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구체적 논의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장이기도 했다.

이제 세계 각국이(중국의 예외를 제외하면) 점차 국경봉쇄를 풀고 방역 정책을 완화하며 일상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도 지난 7월 말과 8월, 2년 반 이상의 시간 동안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해외 현지조사를 재개했다. 연구클러스터인 동남아화교연구회는 현지 연구자와 함께 베트남 호찌밍시의 화교 집거지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였고, 호찌밍시 소재 베트남 국가대학 인문사회과학대학과 학술교류 및 공동연구 추진을 협의하였다. 그러한 현지조사와 대면 협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는 상호 학술교류 양해 각서체결과 공동 학술대회를 준비 중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국경 봉쇄' 상황으로 해외지역연구는 예상치 못했던 큰 도전에 직면해야만 했다.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뿐만이 아니라, 해외지역연구를 수행하는 모든 연구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된다. 가까스로 재개한 해외 현지조사의 경험은 또 다른 고민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난 2년 반 이상의 시간 동안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해외 현지조사와 대면 학술교류가 단순히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으로 복원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그마저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국내 해외지역학 연구소들이 짧은 역사와 열악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 속에서 축적하고 확대해 온 학문성과들과 연구 네트워크들이 순식간에 낡은 것이 되고 속절없이 허물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무엇보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 진입하며 해외지역연구와 관련해 다시금 심각성을 드러내는 문제는 학문 후속세대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해외지역 연구를 누가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 사회가 응답하지 못한다면 해외지역학은 퇴보의 위기로 급속히 내몰릴 수 있다. 그러므로 장기간 해외 현지조사 혹은 연수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해외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크도 형성하기 어려웠던 해외지역학 분야 학문 후속세대 양성과 지원에 대한 학계의 진지한 고민과 발 빠른 대응이 절실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머지않아 예전처럼 이주와 이민, 그리고 문화교류가 전 지구적 현상이 되어간다면, 해외지역연구는 어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필요가 있다. 요동치는 국제질서와 자국 및 자민족 이해 중심성의 강화 경향 속에서 학문 지평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가라는 고민과 성찰은 해외지역연구의 미래를 판가름하는 교차로에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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