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10 09:42:14 | 조회수 : 1,906 |
국가 : 멕시코 | ||
노용석(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라틴아메리카에는 산크리스토발이라는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나에게 친숙한 지명은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이었다.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은 남부 치아파스 주에 위치한 고산지대로서 과거 스페인 식민시절의 도시 모습과 마야 문명이 어우러져 남아있는 곳이다. 아마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멕시코를 관광하며 산크리스토발을 방문했을 것이며, 여기서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담아갔을 것이다. 이 여행을 하기 전에, 산크리스토발은 나에게 치아파스에 속하는 한 지역이었고, 또한 치아파스는 사파티스타 무장투쟁이 발생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하여 여행을 하며 느낀 점은 사파티스타 무장투쟁이 오로지 시장가에서 팔고 있는 'EZLN' 티셔츠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과,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문화적 감흥과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행은 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하였다. 멕시코시티에서 뚝스뜰라(Tuxtla)까지 멕시코 저가항공인 Interjet을 이용하여 두 시간을 날아온 후, 다시 뚝스뜰라에서 약 한 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산크리스토발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도중 특히 눈에 띈 것은 산크리스토발로 가는 여정의 주변 광경이었다. 약 한 시간 이동하는 동안, 구름은 나의 머리 꼭대기에 위치하였으나,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구름은 나의 발밑에 떠다니고 있었다. 산크리스토발은 해발 2,200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높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주변에 떠다니는 구름의 위치가 어떻게 바뀌는 가를 관찰하면 되었다.
산크리스토발에 처음 도착하여 느낀 것은 스페인 식민시절의 모습을 상당히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산지대인 만큼 상당히 기온이 낮다는 것이었다. 버스 정류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볼 수 있었던 거리와 건물의 모습은 상당히 정감어린 고풍적인 모습이었다.
도심의 센트로를 지나 우리 일행은 한 여행사에 들어가 짧은 투어를 예약했다. 마야 원주민 마을을 가기 위함이었다. 산크리스토발의 정식 지명은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이다. 라스 카사스...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정복 당시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의 이름하에 죽어갔다. 누구도 이러한 세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때, 라스 카사스는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의 인권을 위해 헌신적으로 삶을 살아간 이었다. 이러한 라스 카사스의 정신이 살아 남아있어서 그러한 것일까? 산크리스토발 주변에는 아직까지 상당히 많은 마야 원주민 마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이들의 토속종교가 카톨릭과 융합되어 찾아오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마야 원주민 마을은 차물라(chamula)였으며, 카톨릭과 마야 토속신앙의 융합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 관광상품으로 변질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좀 더 아프게 하는 구석은 있었지만... 산크리스토발에서 차물라는 차로 약 20여 분 남짓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마치 마을의 명성을 이야기해주는 듯, 우리가 가는 길에 미국인 10여 명이 함께 동행 하고 있었다. 이들도 아마 어디선가 차물라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여행을 온 것이겠지? 차물라에 도착해 처음 본 것은 마을의 공동묘지였다. 이 묘지를 지나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라틴아메리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친숙한 풍경이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만 좀 다른 것이 있다면 거리에 늘어선 이들이 마야 원주민 복장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지나가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차물라 시장 바로 옆에 그 유명한 교회, 템플로 데 산 후안(Templo de San Juan)이 있었다. 교회의 건축양식이나 겉모습은 다른 지역의 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달리 내부에서 엄격하게 사진촬영과 동영상 녹화가 금지되어 있다. 교회를 처음 들어갔을 때,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교회 내부에 들어갔을 때 바닥에 깔려있던 솔잎과 주문 소리, 어두운 내부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촛불과 거울들, 그리고 갖가지 음료수 병들과 보자기에 싼 닭을 갖다놓고 무엇인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마야의 샤먼들이었다. 차물라 교회는 현재까지도 카톨릭 신앙과 토속 종교가 결합된 의식을 교회 내부에서 행할 수 있으며, 당시에도 산 닭을 죽여 피를 내는 의식이 교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이러한 의식은 상당부분 전 세계 각지에서 자신들을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해 준비된 경향이 없지 않아 보였지만, 하지만 명확한 것은 이 내부에서 종교의 엄격성과 교리의 획일적 해석 등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물라 교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앙의 공존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를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
이전글 | 길 위에서의 만남 - 멕시코 "구아나 후아또" 여행기 |
---|---|
다음글 | 마야 기록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