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40:39 조회수 : 1,650
국가 : 칠레


 

김순배(칠레대 박사과정)

  

  90°는 모자라다. 최소 180°, 360°를 담을 카메라 렌즈가 필요하다. 파노라마, 광활함, 대자연…. 어떤 표현으로 말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말라버린’ 대지가 끝없이 펼쳐진 그곳, 칠레 북쪽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사막이다.

  

  

  모두가 추천했을 때도 그 대자연을 가늠하지 못했다. 떠났다. 가는 길, 민둥산을 지나 비행기 창 너머 초록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 칼라마.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 가운데 하나라는 이곳에 발을 디뎠다. 모래가 바람에 날려 눈을 찔렀다. 줄지어 선 승합차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렸다. 다시 차로 40분,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에 이르렀다. 시내 북쪽의 황야에 호텔이 덜렁 자리를 잡았다.

  머리가 띵하니 어지럽다. 해발 고도 2400m. 말로만 듣던 고산병 증세다. 아내와 8살 딸은 멀쩡한데, 나만 비실댄다. 호텔 직원에게 뭔가 도움이 될 게 없나 물었더니, 뜨거운 물과 코카 잎을 잔뜩 가져왔다. 코카 차 덕인지, 한숨을 잔 덕인지, 머리는 두어 시간 뒤 훨씬 좋아졌다.

  뜨겁던 해가 졌다. 누워 하늘을 본다. 별이 하늘에 그득하다. 그렇다. 반짝, 반짝인다.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별로 가득 찬 하늘이다. 아내가 뿌옇게 보이는 게 은하수란다. 엄마가 딸에게 별자리를 한참 설명해준다. 별 세기는 이어진다. 보름이라 별 구경 투어가 취소됐다고 해서 가지 않았는데 그리 아쉽지 않다. 이 지역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천문연구 지대인 이유가 짐작이 간다. 낮은 기온이 30도를 넘는 것 같았건만, 새벽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잠을 깨웠다.

  걸어서 아타카마 시내를 둘러본다. 진흙에 건초 등을 섞은 어도비로 쌓아 올린 담장 길이 정겹다. 군데군데 벗겨진 흰색 칠이 더 잘 어울린다. 5m 폭이 될 듯한 담길 사이 관광객이 어슬렁댄다. 스페인어가 아닌 외국어도 많이 들린다. 양쪽으로 그들을 맞는 식당과 여행사,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섰다. 언젠가 갔던 벨리스의 어느 섬 마을의 그 아른거리는 풍경 같다.

  

  

  시내 광장 옆, 하얀 지붕의 산 페드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17세기 지어진 성당이 소박하다. 둥그렇게 생긴 성당 입구, 어도비 벽, 선인장 나무로 만들었다는 지붕,

  

  

  여러 성인의 작은 조각상이 놓인 제단이 익숙한 성당의 모습이 아니다. 낡은 성당 내부 한편에서 관광객의 기부금을 모금한다.

  

  

  건너편 골목 안 시장에 민예품 가게들이 빼곡하다.

  

  

  원주민 특유의 화려한 색깔과 무늬의 가방, 옷 등이 많다. 거기서 코카 사탕을 한 봉지 샀다. 녹차 사탕이랑 맛이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한나절의 투어를 여럿 예약했다. 시내에서 차로 30분을 벗어난다. 가이드를 따라 걷는 모래 언덕 길, 벌써 신발은 모래로 가득하다. 30분은 걸었을까? 눈 아래, 바짝 말라버린 드넓은 계곡이 펼쳐진다. 끝이 없다. 압권, 말의 한계를 느낀다. 그것은 몇 km, 몇 십 km나 될까? 달 표면을 닮았다는 달의 계곡은 그렇게 나를 압도했다. 아타카마 사막 전체의 면적은 105,000㎢에 이른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이런 것일까?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 그 말라버린 땅은 그렇게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5년, 길게는 20년에야 한번 1㎜가 넘는 비가 온다고 한다. 멀리 해발 5000~6000m 높이의 화산들이 그림처럼 보인다. 해가 진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 아! 다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벼랑 끝에 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아찔하지만 어찌 이 모습을 놓칠 수 있을까. 들어서는 모른다. 제 눈으로 봐야 안다. 견문이 좁아 비할 도리 없지만 말 그대로 절경이다. 세계적 여행전문지 ‘론리 플래닛’이 세계 자연 관광지 3위로 꼽았다. 아, 내가 지구 반대편에 있구나.

  이제 비포장 길에 익숙해졌건만, 유난히 더 버스가 털털거린다. 새벽이 가시기 전, 저 멀리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엘 타티오 간헐천이다. 물이 펄펄 끓어 튀어 오른다. 지름이 작게는 10㎝, 크게는 2m 됨직한 구멍에서 지구가 물을 내뿜는다. 해발 4200m, 추위가 살을 에는데, 저 멀리 눈 덮인 산들이 보이는데, 저 아래 용암이 펄펄 끓고 있다.

  

  

  아, 이것이 지구이구나. 신비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푸우푸우~치솟는 수증기는 삶은 계란 냄새 같다. 이것이 유황 냄새이던가…. 그 수증기 안에 갇혀 한참이나 그 냄새를 즐긴다. 따뜻하다. 가이드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손을 슬쩍 담갔다가 뜨거워 얼른 뗐다. 차로 다시 5분 남짓 갔을까. 그 옆으로 야외 온천이다. 김이 오른다.

  관광객들이 그곳에 뛰어든다. 그 옆으로 크고 작은 간헐천이 열 개는 돼 보인다. 그 신비함에 다시 사진을 찍어대다가, 추위가 싫어 서둘러 버스로 돌아섰다. 그 뜨겁던 물이 추위에 식어, 바닥이 미끌미끌 한쪽에는 살얼음이 깔렸다. 얼어버릴 듯한 손가락. 따뜻한 차에 햄을 끼운 딱딱한 빵이 버스에서 기다린다. 그 우유를 탄 차 한잔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버스는 우리를 소금 호수에 내려놓았다. 망망한 소금밭이다. 소금은 뽀얗기 보다는 흙 위에 눈이 내린 뒤 며칠이 지나 녹아내린 듯 조금 탁하다. 그 소금 호수 한편에서 플라밍고들이 노닌다. 모두 몇 마리나 될까? 셀 수가 없다.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내 손 위의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다. 소금 호수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다. 소금이 굳고 굳어 수정 위를 걷는 듯 미끄럽다. 한 조각 먹어본다. 짜다.

  버스는 다시 달린다. 먼지가 차창을 뿌옇게 만든다. 해발 4220m에 자리 잡은 미스칸티 호수가 펼쳐진다. 눈 덮인 산 아래 햇살에 빛나는 호수. 압권이다.

  

  

  그 옆으로 라마를 닮은 비쿠냐가 노닌다. 아, 자연이란 이런 것이다. 8살 딸아이는 춥다고 찡찡댄다. 체감은 영하 10도를 훨씬 밑돈다. 나는 이 대자연을 가족사진으로 담고 싶건만, 이 풍경이 아이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서둘러 버스를 탄다. 가끔 비쿠냐를 만나면 버스가 멈추고 그때마다 사진에 담는다. 비쿠냐가 가축으로 길러진 게 라마라는데, 기다란 목과 자그마한 얼굴에 튀어나온 주둥이…. 둘은 무척 닮았다.

  이 춥고 메마른 곳에서도 풀이 자라고 비쿠냐가 산다니…. 생명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곳에서 생명은 눈이 녹은 물로 버텨간다. 해발 5000m가 넘는 곳에서 1년 내내 조금씩 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니, 회색빛 민둥산 아래에 더러 초록색 풀이 자란다. 신기롭다.

  대자연 사이사이, 그곳에 어울려 살았던 아타카메뇨의 흔적이 나를 붙잡았다. 수많은 호텔과 호스텔의 이름들, 식당과 민예품 가게의 이름은 그 뜻을 짐작할 수 없는 원주민 언어를 쓰고 있다. 시내 광장 옆 박물관. 관광객을 끌어 모으던 미라 ‘미스 칠레’ 는 없었다. 검은색 머리와 치아, 얼굴의 형태가 잘 보존됐다는 젊은 여성의 미라. 1977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도 찾았던 그 미라는 원주민들의 요구로 2007년 전시실에서 치워졌다. 고고학의 이름으로 전시된 2500년 됐다는 주검은 ‘우리의 조상을 존중하고 안식할 수 있게 하라’는 요구와 논란 뒤 멈췄다. 그 대신 그 미라를 치우기까지 있었던 토론 등을 보여주는 비디오가 흘러나왔다. 낡은 여행 책자를 읽고 “미라는 어디 있어요?”하며 우선 물었던 나는 얼마나 민망했는지…. 미라가 치워진 뒤 “입장료를 돌려 달라”며 항의를 하곤 했다는 다른 관광객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치워진 ‘미스 칠레’ 대신 오래 전 그 땅에 살았던 이들을 만났다. 원주민 요새 푸카라 데 키토르. 산 페드로 아타카마 시내에서 3km. 12세기 경 지어진 요새로, 16세기 중반 스페인에 정복당했다.

  

  

  요새라 하니 그런가 할 뿐, 1m 높이가 될 법한 흙벽돌이 곳곳에 집터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거센 바람이 몸을 절벽 아래로 위협했다. 메마른 대지는 광활하다. 그 정상, “나의 신이시여, 나의 신이시여, 왜 우리를 저버리셨나이까”라는 문구가 가슴을 찌른다.

  

  

  그들의 최후를 지켜봤을 저 마른 계곡은 말이 없다. 그들은 몸을 가누기 어렵게 만드는 이 거센 바람을 버티며 다가오는 적들을 지켜보고 싸우고 피 흘리며 쓰러졌으리라. 산 아래 나지막한 최고급 호텔만이 지금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해발 4000m, 시내에서 97㎞ 떨어진 원주민 마을 마추카에 버스가 멈췄다. 작은 집들 위로 작은 십자가들이 걸렸다. 그들 조상들의 삶을 앗아간 정복자가 전해준 예수다. 마을 언덕 뒤 성당은 산 페드로 아타카마 시내의 성당을 닮았다.

  마을 입구에서 원주민들이 파는 기름에 튀긴 엠파나다를 사먹는 기분이 묘하다.

  슬슬 배가 고프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작은 마을에 마지막으로 들른다. 어디선가 고기냄새가 난다. 막대에 고기와 양파, 고추 등을 끼워 굽는 안티쿠초였다. 배고픈 길에 얼른 하나를 먹었다. 고기가 좀 질겼다. 엠파나다도 판다 길래 물어봤다.

  

  “엠파나다 있어요?”

  “네, 있어요.”

  “뭘 넣은 게 있어요?”

  “라마고기를 넣은 것 밖에 없어요”

  “그것 밖에 없어요? 안 먹어봐서 먹기가….”

  “조금 전에 안티쿠초에 낀 라마고기 먹었잖아요?”

  “네?”

  

  시골 아낙들이 키드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라마고기를 맛봤다. 조금 질긴, 좀 뜯어야 되는 비계 없는 소고기, 그게 내가 맛본 라마고기였다. 그렇게, 산 페드로 아타카마, 그 낯설고 경이로운, 자연과 원주민들이 더불어 살았을 그 땅으로의 여행, 4박 5일에도 못 다한 여행은 끝나갔다. “관광지 입장료는 원주민들이 나누고 장례식 등 공동체를 위해서 써요.”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길, 승합차 기사의 말이 여행의 씁쓸함을 달랬다.

  

  

  글, 사진 김순배/칠레대 사회과학 박사과정 otromundo79@gmail.com

  *이 글은 2013년 9월 다녀온 여행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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