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07 16:21:02 | 조회수 : 2,709 |
국가 : 베네수엘라 | ||
장혜영 (부산외대 스페인어과 외래교수) 시쳇말로,라틴아메리카 음악이 대중 음악계를'접수'한지는 이미 오래다. 오죽했으면 2000년부터 '라틴 그래미 시상식' 이 다 생겼을까. 그에 반해 라틴아메리카 클래식 음악의 비약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는 아카데믹음악계에도 새로운 활력소를 주고 있다는 곳이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에이토르 빌라 보로스는'브라질 풍의 바하 5번'을 비롯해 현대 음악계의 가장 인기 있는 작곡가로 이미 자리 잡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20세기 작곡가 알베르토히네스테라의 곡들은 한국 연주자들에게도 익숙하다.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멕시코의 낭만파 곡들은 무거운 고전 음악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활력소를 주는 달콤한 작품들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20세기 초엽의 작곡가 마누엘폰세의 아름다운 성악곡 'Estrellita'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아르투로마르케스의 단손 (Danzón) 시리즈는 한국의 FM 클래식 방송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곡들이다. 바하, 모짜르트, 베토벤, 바그너 등등 이미 마르고 닳도록 들은 고전 레퍼토리 이외에 새로운 곡들이 절실했던 클래식 음악계에 뭔가 색깔이 다른 라틴아메리카의 클래식 음악들이 클래식 음악팬 확보에 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라틴 음악 붐은 클래식 음악을 만드는 연주자들의 세계에도 마찬가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멕시코 국립 음악원출신의 스페인 테너 플라시도도밍고,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이후 이스라엘 국적도 획득했던다니엘바렌보임, 칠레 출신으로 세기의 피아노 거장이었던 클라우디오아라우와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여류 피아니스트 마르타아르게리히 등 유럽과 본국을 오가며 음악 공부를 했던 세대를 거쳐 최근에는 멕시코의 테너 롤란도비야손 (Rolando Villazón), 우루과이 출신의 베이스 바리톤 에르윈슈로트 (Erwin Schrott) 등 라틴아메리카 자국 음악원 출신으로 이후 국제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예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점을 찍고 있는 것이 베네수엘라의 음악 무상 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 (el SistemaNacional de lasOrquestas Juveniles e Infantiles de Venezuela)' 가 낳은 젊은 천재 지휘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시몬볼리바르 청소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인 구스타보아돌포두다멜라미레스이다. 1981년 베네수엘라 라라주의 음악의 도시바르키시메토에서 태어난구스타보두다멜은밤에는 살사 밴드에서 트럼본을 연주하면서 낮에는 엘 시스테마 산하의 오케스트라 교육 센터에서 트럼본을 배우던 음악도 아버지 오스카르두다멜과 역시 엘 시스테마에서 합창을 공부하고 있던 어머니 솔랑헤라이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베네수엘라의 무상 음악 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가 1975년 호세 안토니오아브레우 박사에 의해 후안 호세 란다에타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어 각 지역에 음악 학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만큼 두다멜의 부모는 그 첫 수혜자들이었던 셈이었다. 결코 넉넉한 환경이 아니었던 만큼 좁은 아파트에서 살사 연주를 준비하는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 음악을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틈에서 자란두다멜은 태어나자마자 악기와 음악 속에 살았던 터, 처음으로 잡아본 악기는 베네수엘라 전통 악기인 네줄짜리 미니 기타 콰트로 (Cuatro) 였다 한다. 혼자서도 알아서 콰트로를치고 아버지와 친구들의 복잡한 살사 연주 리듬을 그자리에서 바로 따라하는 아기 두다멜을 보고 재능이 있음을 눈치챈 부모는 엘 시스테마의 지역 음악 교육 센터에 데려가 오디션을 받았고 물론 결과는 합격이었다. 두다멜은 먼저 바이얼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의 천재성은 곧 드러났다. 열세살이 되자 엘 시스테마의 선생들은 그에게 지휘와 작곡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본인으로서도 지휘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 여섯살 때 집안의 장난감들을 세워놓고 지휘하는 놀이를 했던 두다멜이었다. 열여섯살 때부터는 수도 카라카스로옮겨가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인 호세 안토니오아브레우 박사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게 되었고 열여덟살이 되었을 때 엘 시스테마 내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들로 이루어지는 시몬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지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화룡점정이 되었다. 열정과 순수함으로 뭉친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에다젊은 십대의 천재 지휘자, 두다멜과시몬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유럽의 여러 페스티발에서선세이션을 일으키며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다멜은백프로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산인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2004년 국제 말러 지휘 콩쿠르에 나가 우승을 차지해 말러의 손녀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겨우 스물세살 때의 일이었고 이후 그의 승승장구는 탄탄대로였다.세계적인 거장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사이먼래틀 등 몇몇 거장들은 그의 재능과 열정에 탄복해 가끔씩 지도를 해주기도 했다. 이듬해 클래식 음반계 최고의 레이블도이치그라모폰과전속 계약을 했고 유럽 유수의 유명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했으며스웨덴 예테보리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스물여덟살이 되었을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그를 음악 감독으로 모셔가겠다는 것이다. 주빈 메타 이후 가장 젊은 음악 감독의 부임이었고 물론 첫 라틴아메리칸 음악 감독의 부임이었다. LA 필의 음악 감독 역할을 흡족하게 해내고 있는 그는 2018년 현 음악 감독자 사이먼래틀의 사임으로 공석이 될 베를린 필하모닉의 차기 음악 감독으로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비록 클래식 음악계의 세계적인 스타 지휘자가 된 두다멜이지만 하늘이 그에게 준 사명은 엘 시스테마를 돕고 베네수엘라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음악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그는 베네수엘라 음악 무상 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의 간판이자 그 창시자인 아브레우 박사의 후계자 셈이다. 39년생으로 이미 고령의 나이에 접어든 아브레우 박사가 했던 일을 그가 이어 받아서 해야한다는 것을 스스로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베네수엘라로 돌아가 엘 시스테마의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엘 시스테마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은 항상 발 벗고 나선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행사에서도 지휘를 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던 미국의 언론에서'LA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인 두다멜이차베스주의자인 게 아니냐' 하고 퍼붓는 집요한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베네수엘라를 사랑하고 베네수엘라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라고 우회적으로 답변을 피해갔던 그는 우고 차베스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엘 시스테마와시몬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후원자" 였다며 조의를 표한 뒤 그의 장례식에 가 베네수엘라 국가(國歌)와 베네수엘라를 상징하는 노래들, "야노의 혼 (Alma llanera)" 과 "베네수엘라"를 열정적으로 지휘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주요 객원 지휘자로 이미 여러번 텔아비브에서 지휘를 했던 그는 올해 뜬금없이 이스라엘 정부에서 적대국 베네수엘라의 국적자라는 이유로 입국을 불허하고 공항에 억류하는 바람에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공식 항의를 하는 등 국제 정치 사안에서 백프로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다. 그럼에도 "나는 화합의 전문가인 지휘자" 라는 그의 일관된 주장처럼 미국과 베네수엘라, 두 적대적인 관계의 나라를 왕복하며 화합과 화해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클래식 음악계의 젊은 거장이자 베네수엘라의 새로운영웅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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